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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파리에서 청주까지, 방혜자의 색 [미술/전시]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림을 청주에서 다시 만났다

by 신수빈 에디터
2026.09.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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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보였다. 이런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니 어렸을 때 자주 하고 놀던 글라스 데코가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흔히 알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는 조금 달랐다. 뒷면에 굴곡진 유리를 덧대서 앞에서 봤을 때 질감이 더 살아나 있었다. 빛을 통과시키는 유리인데, 평평한 유리만 생각했던 나에게는 꽤 재미있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작품보다 조금 신경 쓰였던 게 하나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세워둔 단상이 마치 잘못 자른 것처럼 비정형적인 물방울 모양이었다. ‘이것도 작품의 일부인가?’ 싶었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니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 터널 아치도 비슷하게 비정형적인 형태였다. 의도한 것일까?

       

      그렇다고 단정하기에는 딱 두 군데만 그렇게 생겨 있어서 조금 애매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이것도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가?’ 하고 한 번씩 생각하게 됐으니까.다만 전시장 곳곳에서 작품을 평평한 벽에 걸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의 형태 자체를 작품과 함께 경험하게 하려는 시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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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하늘의 토지>의 설치가 그랬다. 작품은 평평한 벽이 아니라 곡선의 벽에 놓여 있었다. 벽이 안쪽으로 휘어져 있어 작품에 조금 더 깊이감이 생겼고,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작품을 정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함께 바라보게 된다. 작품의 색과 형태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공간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색으로 이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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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방혜자가 한국에 머물던 시기, 유학을 떠났던 시기,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후의 작업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시기별로 나뉜 공간을 따라가다 보니 작품의 변화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 눈에 남은 것은 색이었다. 한국화에서 자주 보았던 색감과는 조금 다른데도 그 안에는 분명 한국적인 미감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작가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도 색과 화면에서 한국의 정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한국화의 색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받아들인 것들이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낯선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색이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니 오랜만에 눈을 씻어낸 기분이 들었다.

       

      방혜자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한 작가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함께 보인다. 자신이 익숙하게 해오던 방식만 고집하기보다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재료와 형식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계속 확장해나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출발점까지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않았다.

       

       

       

      한복을 입고 전시장에 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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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혜자의 작업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당시 아시아 여성 작가로 활동하면서 개인전을 열 때마다 한복을 입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한복을 입는 것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어떤 옷을 입고 등장할 것인지는 결국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와 연결된다. 특히 유럽에서 활동하던 한국 여성 작가가 자신의 출신과 정체성을 굳이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방혜자의 작업을 ‘한국적인 작가’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 출발해 프랑스로 건너가 다른 문화와 작가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재료와 표현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가진 감각을 계속 가지고 갔다는 점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방혜자의 작품을 하나의 고정된 스타일로 보여주기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시기별로 나누어 놓은 전시 구성 덕분에 ‘방혜자의 그림은 이런 그림이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이 작가는 계속 변해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처음 만난 곳은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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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혜자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이번 전시가 아니다. 2025년 2월,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여행을 가기 전 퐁피두 센터가 다음 달부터 차차 휴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찾아갔다. 특별한 정보도 없이 들어간 전시장에서 한국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시장 한쪽에서 익숙한 색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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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봐도 동양화였고, 한국화였다.

       

      파리 한복판에 있는 미술관에서 한국의 그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주변에는 외국인 관람객들이 바글바글했고, 그들 사이에 한국인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반가웠다. 내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과 닮은 그림이 낯선 공간에 놓여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때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인터뷰 영상도 프랑스어로만 진행되고 있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결국 작품 앞에서 한참 색만 바라보다가 나왔다. 작품에 대한 정보보다 색이 먼저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1년 반쯤 지나 청주에서 다시 그 그림을 만났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야 그때 파리에서 보았던 작가가 방혜자였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당시 퐁피두에서 열렸던 전시가 방혜자의 첫 회고전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그림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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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는 그저 ‘한국화가 있네’ 하며 반가워했다면, 이번에는 그 그림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색이 좋아서 오래 보았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청주에서는 그 색을 만들어온 시간을 함께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시작해 프랑스로 건너가고, 다시 새로운 작업으로 확장해온 과정까지.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는 방혜자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나처럼 우연히 한 작품을 먼저 만났던 사람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그림을 청주에서 다시 만났다. 그 사이 내가 알게 된 것은 작품의 이름과 작가의 이력만은 아니었다. 한 작가의 그림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다른 장소와 사람, 재료와 시간을 지나며 계속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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