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가 끝나도 우리는 청춘이다
11월. 2027년도의 새로운 다이어리가 나오는 달.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올해의 기록을 뒤로한 채로 내년의 빈 페이지를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계절을 맞았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무엇을 이뤘고, 무엇을 놓쳤으며, 어떤 순간에 행복했고 또 어떤 순간에 불행했는지. 그렇게 꺼내어진 기억들에 다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시작해 보려 할 것이다. 우리에겐 끝내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설명하기 힘든 감정도, 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남아 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이 뜨거웠든 미지근했든 우리는 모두 청춘을 살아가는 중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종수는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좀처럼 명확해지지 않는다. 자신의 현실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자신을 둘러싼 일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종수. 그가 겪는 사건은 극단적이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불확실함과 무력감은 우리가 살아가며 한 번쯤 느꼈을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닝은 한 해의 끝에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영화이다. 청춘의 한가운데인 당신께,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예측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버닝」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을 만나기 전, 그의 지난 작품을 다시 꺼내 보는 것 또한 좋겠다.
우리는 모두 벤을 꿈꾸는가

영화 「버닝」에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청년이 등장한다. 벤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며 경제적인 어려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간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는 어딘가 여유가 넘친다. 그런 점에서 벤은 우리가 막연히 꿈꾸는 성공한 삶의 형상과도 닮아 있는 인물이다.
반면 종수는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소설가를 꿈꾸지만 뚜렷한 미래는 보이지 않고, 가족의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종수에게 벤은 단순히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존재만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상대방이 나를 평가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며 끝내 자신을 작아지게 만든다. 영화 속 벤 또한 종수가 갖지 못한 것들을 너무도 당연히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종수가 원하는 관계 안에도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종수는 해미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만 벤과 해미가 함께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종수의 시선에서 벤은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청춘은 무엇이든 시도할 가능성의 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력한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에게서 익숙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곤 하는데.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도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나 비교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작아지는 마음까지. 우리는 종수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며 묘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영화가 주는 위로란, 외면하고 싶었던 자기 모습을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끝내 우리는 벤의 삶을 꿈꾸면서도, 정작 종수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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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에는
영화 「버닝」의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끝내 확인 할 수 없었던 것들
영화 속에서 해미는 종수와 벤에게 아프리카에서 배운 춤에 관해 이야기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을 뜻하는 ‘리틀 헝거(Little Hunger)’와 삶의 의미를 갈망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 노을 앞에서 그레이트 헝거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는 해미의 모습은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일전에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도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삶의 의미를 갈망하며 춤을 추는 모습과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두 마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해미의 춤은 그런 청춘의 모순적인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종수는 해미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미는 그의 삶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해미의 갑작스러운 실종 이후 벤의 수상한 언행과 주변의 단서들은 종수의 의심을 증폭시키지만 그 어느 것도 벤이 해미를 죽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종수는 벤을 죽인다. 결국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행동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진실을 밝혀내기보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종수는 스스로 하나의 결말을 내렸지만 그가 그토록 답을 찾아 헤매던 질문들은 끝내 풀리지 않은 채 남는다.
그 극단적 선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꿈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이 돌아올지는 확신할 수 없다. 때로는 최선이라고 믿었던 선택이 예상과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어떠한 의미를 깨닫기도 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마다의 결론을 내리려 한다. 올해의 어떤 선택들이 성공이었고 어떤 선택이 실패였는지. 그러나 결론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선택의 의미가 명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순간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지만, 종수 역시 사계절의 가장 마지막에 놓인 한겨울에 벤을 죽임으로써 그동안의 질문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종수와 달리 우리에게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을 품고 살아갈 시간이 남아 있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확실함을 없애려는 마음보다 그 불확실함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그리고 이다음 해가 끝나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 그 질문들을 품은 채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해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