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조금 낯선 책을 펼쳤다.
익숙한 독서에서 벗어나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희곡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책장을 넘기면 시작되는 연극
얼마 전 배삼식 작가의 「배삼식 희곡집」 을 통해 처음으로 희곡을 접했다.
평소 소설과 에세이를 즐겨 읽었지만 희곡은 왠지 연극을 공부하는 사람들만 읽는 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인물의 대사가 번갈아 등장하고 그 사이로 이따금 길고 짧은 행동 지시가 이어지는데.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달리 누군가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듯한 생생함이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희곡은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와 꽤 닮아 있다. 생각해 보면 실제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감정이나 속마음을 누군가가 하나하나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인물의 대사와 가끔 나오는 행동 지문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읽을 때보다 좀 더 더듬더듬 읽어나가게 된다.
대사 하나를 읽고 잠시 멈춰서 상상해보기도 하고 앞의 대화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오히려 재미있다.
누군가의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작가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내 상상으로 꽉 채워 넣는 즐거움이 있었다.
책을 읽고 있지만 동시에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듯한 기분. 그것이 내가 처음 발견한 희곡의 매력이었다.
배삼식 희곡집
이번에 소개할 책은 민음사에서 출간한 배삼식 희곡집이다. 「3월의 눈」, 「벽 속의 요정」, 「열하일기 만보」 등 여덟 편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고,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의 강연록도 실려 있다. 작품을 읽은 뒤 작가가 극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이 희곡집의 매력이다.
강연록에서는 '극'과 '드라마'에 대한 작가의 관점부터 창작과 각색에 관한 생각까지 살펴볼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극작가가 이야기를 바라보고 만들어 가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희곡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유독 마음에 남았던 두 편, 「먼데서 오는 여자」와 「하얀 앵두」를 소개하려 한다.
먼 데서 오는 여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먼 곳으로 떠나는 일
먼 데서 오는 여자 >> 「먼 데서 오는 여자」의 실제 공연 장면. 희곡을 먼저 읽고 감상한다면 상상했던 장면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먼 데서 오는 여자」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 기억을 붙잡으려는 남자의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사람의 삶과 상실의 아픔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기억의 상실이 마치 어딘가로 떠나는 여정처럼 표현된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기억을 잃는 일은 견디기 힘들었던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남자는 여자가 겪어온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가 자신이 알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쉽게 붙잡지 못한다.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면서도, 그 기억 속에 담긴 아픔까지 다시 마주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알고 나면 작품의 제목인 「먼 데서 오는 여자」도 조금 다르게 읽힌다. 여기서 '먼 데'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리적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억을 잃어가며 도달하는 낯선 세계이자, 더 이상 과거의 고통이 닿지 않는 곳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극의 마지막, 여자는 【"그러니까 그만 따라와요. 난 갈 거야. 멀고 먼 데로 가서 훌훌 털고 깨끗이 잊을 거야. 멀고 먼 데서." _p.188 】 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잊고 멀고 먼 곳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독일어 대사는 젊은 시절 독일로 떠나 간호 일을 하려 했던 기억과 맞물리며, 그녀가 향하는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실제로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기억 속에서는 이미 먼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잊는다는 것은 상실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이 잊어야만 견딜 수 있는 기억이 우리 사회에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기도 하다. 「먼 데서 오는 여자」는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역설을 인물의 대사와 극의 전개 속에 담아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하얀 앵두
사라진 것들은 어디에 남는가
하얀 앵두 >> 「하얀 앵두」의 실제 공연 장면. 희곡을 먼저 읽고 감상한다면 상상했던 장면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하얀 앵두」는 요양을 위해 강원도 영월의 전원주택에 머물게 된 소설가 반아산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반아산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황량한 정원을 가꾸려 하고,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과 고민을 나눈다.
이 작품은 하나의 극적인 사건보다 여러 인물이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에 집중한다. 배삼식 작가는 「하얀 앵두」를 집필하며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극작 방식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체호프가 익숙한 연극 형식 안에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냈듯, 「하얀 앵두」 역시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과 대화를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정원과 하얀 앵두나무, 수억 년 전의 삼엽충 화석 등 서로 다른 시간을 품은 소재들 역시 작품의 중요한 요소다.
그 중 반아산의 후배인 지질학자 권오평의 대사는 눈여겨볼 만하다. 아내를 잃은 그는 세상이 거대한 시체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는다. 오랜 세월을 견딘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상실의 감정을 떨쳐내지 못한다.
【"야외 채집 나가서 지층에 박힌 화석을 보다 보면 섬뜩해. 아 셀 수도 없는, 거대한 시체 더미 위에 내가 서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한 발짝도 못 떼겠어. 왜? 거기 또 다른 시체가 있으니까. 발 디딜 곳이 없는 거야.” _ p.545】
수억 년 전 생명체의 흔적을 연구하는 지질학자에게 세상은 죽음이 켜켜이 쌓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아내를 잃은 뒤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화석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인간의 상실감으로 이어진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하얀 앵두」에는 이처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상실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자연의 흔적과 찰나에 지나가는 인간의 삶을 나란히 놓으며,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설명되지 않은 마음을 읽는 일
「하얀 앵두」를 읽으며 유독 눈길이 머물렀던 장면이 있다. 인물의 감정이나 생각에 관한 설명 없이 오직 행동 지문으로만 이루어진 장면이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반지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꺼 버린다. 반지연, 주머니에서 사과 한 알을 더 꺼내 들고 한입 베어 문다.반지연, 입안 가득 사과를 씹다가 문득 고개를 숙이고 꼼짝하지 않는다.정적. 바람이 마른 잎들에 부딪치는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긴 사이. 이윽고 반지연, 고개를 들고 다시 사과를 씹어 삼키기 시작한다. _ p.506】
반지연은 왜 전화를 받지 않았을까? 사과를 먹다가 문득 고개를 숙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품은 그 이유를 곧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반지연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앞서 읽었던 행동에도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이처럼 희곡은 인물의 감정을 모두 설명하는 대신 독자가 짧은 대사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짐작할 여지를 남긴다. 같은 장면이라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표정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희곡집을 읽은 뒤 실제로 공연된 작품의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장면이 무대 위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배우들은 같은 대사와 행동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독자가 상상으로 인물을 완성했다면 무대 위에서는 배우와 연출가가 자신만의 해석으로 인물을 완성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시선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희곡을 읽고 나서야 발견하게 된 새로운 독서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