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화법의 변화마다 전시실을 구분하여 총 4개의 챕터(상흔-현상-물방울-회귀)로 나뉘어져 있는 이번 전시는, 김창열 화백의 전 인생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의 회화는 그의 굴곡진 인생만큼이나 다채롭게 변화해 왔었던 듯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은 그를 '물방울 화가'로 칭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단지 '물방울'로만 정의 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예술세계의 종착지이자, 그가 꽃피운 것은 '물방울'이 맞지만, 물방울이 태동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 온 그만의 '엥포르멜 회화'들이 놓여있었다.
물방울 '이전'
그의 그림은 한국전쟁의 충격 속에서 시작된다.
1949년 석고데생 시험을 통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해 큰 꿈을 품었을 청년 김창열은, 1950년 6.25전쟁의 발발로 인해 학업이 중단되고 만다. 이 이후 그는 경찰전문학교에 들어가기도 하고, 미술 교사로 근무하는 등 다양한 길을 전전했다. 그러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그의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생이 막을 열었다.
당시에 그가 그린 초기 그림들은 표현적이고 비정형적인 '엥포르멜' 추상화였다. '엥포르멜'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를 품은 프랑스 예술가들이 그들의 서정적이고 강렬한 고통의 감정을 표현한 예술이었는데, 1950~1960년대의 김창열은 뉴욕과 파리에서 활동하며 '한국전쟁'의 아픔을 표현하는 '한국식 엥포르멜 회화'를 펼쳐냈다.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이 시기 감창열 화백은 「제사」라는 제목의 그림들을 그려낸다. 겹쳐진 여러 개의 가로 선들은 '제단'같기도하고, '탱크의 바퀴 자국' 같기도 하다.
전시의 초반부, 「제사」가 있는<상흔>챕터를 지나 <현상> 챕터에 오면, 비로소 점액질의 액체가 흘러내리는 듯한 형상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물방울은 아니지만, 그 전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죽어 나간 수많은 이들의 몸에 난 총탄의 구멍들, 그 상흔들에서 흘러나오는 점액질의 육체 속의 액체들, 그것이 물방울의 원형이었다.
물방울이 시작되다
궁핍한 파리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김창열은 마구간을 공방으로 쓰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캔버스 뒷면에 물이 뿌려지자, 캔버스에 물방울들이 맺혔다. 그때 그 모습은 영롱하게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였다. 김창열 화백은 이때의 경험을 회상하며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1970~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물방울들이 그의 캔버스의 주인공이 된다. 물방울들은 투명한 형상으로 시작해서, 다채로운 색이 있는 물방울, 마포 위에 그린 물방울, 신문지 위에 그린 물방울 등 점점 다양해졌다.
물방울의 다채로운 변모
1990~2000년대에 들어서자, 물방울은 점차 더 다양한 배경 속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천자문을 활용하는데, 이 천자문을 조형의 요소처럼 사용하기도 하지만, 천자문을 빽빽하게 모든 배경에 채워넣기도 하고, 단조로운 흑의 색만 사용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색채까지 사용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시기의 작품들이 모여있던 <회귀> 전시실이 필자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동양적인 천자문과, 영롱한 물방울들, 그리고 배경의 색채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강렬함을 뽐냈다. 천자문 또한 직접 그려 넣을 때도 있었지만, 배경을 칠하고 글씨에 해당하는 부분만 떼어낸 형태도 있어 다양한 기법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거장,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은 2016년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의 건립을 직접 보시며 감격을 표하셨다. 그에게 제주도는 6.25 이후부터 머문 곳으로, 제2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2021년, 김창열 화백은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김창열 화백의 일생이 담긴 그림들을 관람하고 싶다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25-08-22 ~ 2025-12-21까지 열리는 회고전을 꼭 감상해 보시기를 권장한다.
맑은 물방울 속에 맺힌 한국의 아픈 역사와 상흔을 느끼며, 김창열 화백의 작품세계로 빠져보실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