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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우주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 그런데.. [만화]

가족 상담에 가느니 피클이 되련다

by 곽한별 에디터
2026.08.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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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애니메이션을 꼽자면 단연 <릭 앤 모티> 일 것이다. 모든 에피소드를 거짓말 않고 열 번씩은 보았다. 

     

    <릭 앤 모티>를 처음 보면 당연히 릭에게 눈이 간다. 술병을 들고 다니며 온갖 것을 비웃는 노인. 세상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 헤매는 진리와 온갖 과학 공식을 이미 알고 있어서 이제는 아무것도 신기하지 않은 사람.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차원)은 그냥 떠나버릴 수도 있는 사람. 정확히 얼마나 똑똑한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똑똑하다. 차원을 이동하는 초록색 포털건을 만들고, 다른 우주의 자신을 만나고(정확히는 다 죽여버리고), 외계 문명을 무너뜨리고, 신과 싸운다. 죽어도 어떻게든 살아 돌아온다. 우주에서 릭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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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그 옆에는 14살 손자 모티가 있다. 겁이 많고, 찌질하고, 말을 더듬는다. 할아버지가 포털을 열 때마다 싫다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결국 질질 끌려서 따라간다. 그리고 거의 매번 울고, 다치고, 상처받는다. 그런데 이 이상한 애니메이션을 오래 보다 보면 둘의 위치가 조금씩 이상해진다.

     

    모티는 다른 차원에서 죽어버린 자기 시체를 직접 묻는다. 자신이 살던 세계를 버리고, 자신이 죽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 그곳의 '모티' 대신 살아간다. 가족이 바뀌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몇 번이고 세계의 끝을 본다. 처음의 모티라면 감당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모티는 상처받고, 조금씩 변한다. (‘이블 모티’ 에피소드는 여기에 차마 다 담지는 못하겠다. 얘기가 너무 길어진다.)

     

    모티가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릭 앤 모티>는 그렇게 친절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티 역시 점점 냉소적이 되고, 때로는 잔인해지고, 릭을 닮아간다. 다만 모티에게는 한 가지 변화가 생긴다. 세상은 원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반면 릭은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세계를 바꿔버릴 수 있다.

     

    술을 마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친다. 딸 베스와 싸운다(심지어 그녀를 복제해놓고 그것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베스트 프렌드 버드퍼슨을 잃고도 그 상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니티(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외계인)를 사랑하면서도 결국 관계를 망친다. 우주의 비밀은 전부 아는 사람이 자기 마음 하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나는 이게 <릭 앤 모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주 유능한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않는가? 많이 아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어려운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그 사람이 삶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삶을 살아가는 능력은 꼭 같은 것이 아니다. 릭은 전자의 극단에 있는 사람이다.

     

    릭은 어느 날에는 자기 자신을 피클로 만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족 상담(Therapy)에 가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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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 3의 「피클 릭」은 <릭 앤 모티>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가족 상담을 가야 하는 날, 릭은 자기 몸을 피클로 바꿔버린다. 가족들은 어이가 없다. 릭은 상담을 피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모티는 곧바로 수상한 장치를 발견한다. 가족들이 떠나면 자동으로 릭을 인간으로 되돌려놓을, 액체가 담긴 교묘한 주사기다. 딸인 베스는 그 주사기를 가방에 넣고 상담실로 떠난다. 그리고 우주 최고의 천재는 피클이 된 채 혼자 남는다. 이후 벌어지는 일은 황당할 정도로 거창하다.

     

    고양이에게 공격당하고, 빗물에 휩쓸려 하수구로 떨어지고, 바퀴벌레의 몸을 이빨로 뜯고 이용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궁쥐의 사체로 외골격을 만들고, 수많은 쥐를 죽이고, 하수구를 탈출한다. 그러다 정체불명의 기관에 들어가 요원들과 싸우고, 재규어라는 전사와 결투하고, 건물을 폭파한다. (이 과정은 가히 장관이니 꼭 보시길.)

     

    그리고 피와 오물을 뒤집어쓴 채 가족 상담실에 도착한다. 가족 상담 한 번 안 받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상담사 웡 박사는 그런 릭에게 꽤 잔인한 말을 한다.

     

    당신은 자기 정신을 통제할 수 없는 저주처럼 말하지만 사실 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여기까지 온 것도, 상담사를 비웃은 것도, 피클이 된 것도 당신의 선택이라고. 

    그리고 릭이 가장 싫어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 회복하고 유지하고 청소하는 일은 모험이 아니라고. 양치질을 하고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하는 것처럼 지루한 일이라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짜릿한 방법 같은 것은 없으며,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릭은 아무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욕을 뱉는다.

     

    내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이 릭의 지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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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릭에게는 사실 지루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모든 것이 지루하다.

     

    정원을 가꾸는 대신 몇 초 만에 완성된 정원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매일 물을 줄 이유가 없다. 관계가 망가졌을 때 다른 우주로 떠날 수 있다면 굳이 사과하고, 기다리고, 다시 대화할 이유도 없다. 릭에게 세상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갈아 끼울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가족은 그렇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하고, 화해했다가 또 싸우고, 그래도 다음 날 다시 말을 거는 수밖에 없다. 그중 대부분에는 배경음악도 없고 폭발도 없다. 릭은 우주를 몇 번이고 구하지만 이런 일에는 번번이 실패한다. 그래서 우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자꾸만 가장 무력해 보인다.


    반대로 모티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포털건도 없고 천재적인 두뇌도 없다. 할아버지가 벌여놓은 일을 수습할 능력도 없다. 대부분의 경우 모티가 할 수 있는 일은 벌어진 일을 어떻게든 겪는 것뿐이다. (선물로 받은 스타워즈 총을 “완벽히 수직으로” 떨어뜨린다던지 그 외 기상천외한, 10대 소년이라기엔 좀 거대한 사고를 치긴 하지만..)

     

    모티는 상처받고, 조금씩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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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것을 반드시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모티가 겪는 일들은 성장이라는 예쁜 단어로 묶기에는 지나치게 끔찍하고, 그 결과 모티가 언제나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모티는 계속해서 세계와 부딪힌다. 반면 릭은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세계를 바꿔버릴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릭에게 주어진 가장 큰 능력이자 가장 큰 함정인지도 모른다.

     

    도망칠 수 없는 사람은 언젠가 자기 앞에 놓인 것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우주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치고, 딸에게 상처를 주고, 가족 상담에 가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피클로 만든다.


    어렸을 적 나는 어른이 되면 삶을 잘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괜찮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릭 산체스는 여든이 넘었다. 우주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실패한다.

     

    나이를 먹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거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포털건으로 차원을 넘어 훌쩍 건너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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