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구절이 담긴 파피루스 파편, 메트로폴리탄 사이트 (위) / 그리스에서 발견된 ‘오디세이’ 기록 점토판, 사진=EPA (아래)
고전 문학의 정수 '오디세이아'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Ὀδύσσεια으로, 여정과 여행을 뜻하는 단어 Odyssey가 유래하였다. 오랜 시간동안 오디세이의 어원은 모험, 탐험, 방랑, 귀환 등의 상징이 되어서 문학·예술의 원형이 되었다. 또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한 인물의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인류의 보편적인 서사 구조를 확립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이렌과 아킬레스건, 멘토 등과 인물의 이름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에 영향을 미쳤다.
《오디세이아》는 문학사적으로 서사시(Epic Poetry)에 속한다. 서사시란 영웅의 모험이나 신화, 민족의 역사 등 운율이 있는 운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음유시인들의 입에서 전해지던 구전(운문 형태)은 점차 문자로 기록되었다. 원작자로 알려진 호메로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여전히 비밀에 둘러싸여 있다. 실재한 인물인지, 서사시인의 총체를 의미하는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가 동일한 인물인지에 한 질문은 여전히 물음표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발견된 파피루스의 파편과 점토판, 책 형태의 양피지 필사본은 오디세이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기록물로 남겨졌다. 이를 찾아보는 여정은 책 속에서의 오디세우스처럼 신비로운 모험을 항해하는 듯 펼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이아》를 읽는 것은 고전 문학의 정수라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일이다. 바로 그리스 신화와 문화, 고전 문학, 인간과 신, 서사와 이야기,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호메로스 원작, 아우구스테 레히너 풀어지음, 김은애 옮김의 《오디세이아》는 시계열적 구성과 3인칭 서술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회상의 형식과 시간의 교차라는 서술 구조의 완역본과 달리 산문체의 접근으로, 다소 두꺼운 책의 두께를 상쇄하는 몰입도를 제공한다. 고전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그리고 고전은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입문자에게 독서의 진입장벽을 낮춰준다.
독서의 재미를 더해줄 요소는 트로이 전쟁 이후의 이야기라는 점과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여러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이와 연관된 인물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신들의 등장과도 연결된다. 전쟁은 인간 사이의 갈등과 질서(시스템)의 균열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신화적·인류학적 흐름에서 신의 노여움을 보여준다. 또한 당대의 관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사의 현상, 재난, 고난, 고통 등도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고난과 역경은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여겼다. 고난 끝에 기쁨이 온다는 믿음은 오랜 세월을 거쳐서 고통을 이겨내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다.
책에서 등장하는 제우스(하늘과 번개), 포세이돈(바다, 지진, 돌풍), 아테나(지혜와 전쟁, 문명 주관), 헤르메스(여행자, 상업, 발명 등 주관 또한 전령 역할)라는 이름과 신들이 어떤 영역을 주관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독자라면, 《오디세이아》 속 세계관에 더 깊이 있게 몰입할 수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바다, 그것도 추정 지역을 살펴보면 현대의 튀르키예, 그리스, 튀니지, 이탈리아, 몰타를 거치는 지중해 전역을 아우르기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운명'은 정해진 것을까, 발견하는 것일까?
흔히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 또는 초인간적인 힘을 의미한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와 같은 말도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정말 운명은 거스를 수 없고 정해진 것일까?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귀향하기 전의 모험에서 신의 딸과 아들, 괴물, 요정, 예언자를 만났고 심지어 그의 귀향을 돕거나 방해하는 신이 있었다. 또한 그의 동료 병사들의 생각과 행동은 한 인간으로서는 예측하기 힘든 가장 큰 변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디세우스의 내면, 즉 고뇌하는 인간은 너무도 친숙하다. 그 길은 직접 가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나아가지 않으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기 힘들다.
동료들에게 예언에 대해서 알려줘야 할지 고민하거나, 각각의 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또는 계속해서 귀환을 위한 모험을 이어갈지에 대한 모든 것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신이 인도하면 그들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일까? 때때로 염원하고,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운명에 기대고 싶다. 이를 확인받을 수 있는 증표는 바로 현실 속 이상향을 그려보는 것이다. 신의 부름은 의지를 가진 자, 즉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들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운명을 받아들인 자는 또 다른 운명도 만들어낼 수 있다.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의 영웅적인 면모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인간의 고뇌와 신의 부름의 경계에 선 자. 선택받은 자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자, 생각하는 인간, 그리고 행동하는 인간이다. 이것의 총체는 잠시 표류하는 순간마저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또다시 힘들어지면 나아갈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다가올 운명을 맞이한다. 그렇게 운명은 지속적으로 발견될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고전은 클래식이다. 고전을 찾고, 다시금 읽어내는 행위는 그 안에서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 나침반을 꺼내는 것)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은 거듭하여 발생한다. 그때마다 고전은 위로와 안녕을 건넨다. 인류라는 공통된 존재에게 듣는 이야기는 동질성이 있다. 그때도 역시 고뇌하고, 신적인 존재를 찾고, 운명을 발견하며 살았다는 흔적이다. 이야기는 더해질수록 재미있다. 많은 이야기가 엮어서 오늘을 만들어낸 것처럼 - 오디세이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