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우리는 셔터를 누를 때 눈으로 보는 풍경과 얼마나 다른 그림을 볼 수 있을지 기대한다. 대체로 우리의 눈이 가장 훌륭한 렌즈지만, 운이 좋다면 육안으로 보던 것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쉴 새 없이 일렁이고 반사되는 빛의 한 조각을 시간의 틈에서 빼내는 데 성공한 듯한 기분이 든다.
몇 년 전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을 때, 사진을 찍는 것은 곧 과거의 편린을 영원히 소유하는 행위라고 느껴졌다. 수많은 실망과 환희의 순간을 거쳐, 지금은 그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카메라 안으로 빛을 들여보내는 순간 빛은 이미 왜곡되기 시작한다. 완전하고 완벽한 형태의 한 순간을 갖는 게 이미 불가능한 꿈인데, 한 순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사진 예술을 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듯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로써 사진의 여러 가능성을 발견한다. 사진과 사진에 관한 비평을 싣는 사진 잡지 <보스토크(Vostok) 51> 호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이와 맞닿아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빛과 만나고 재현하고 있는 작가들의 사진, 빛에 관한 에세이와 비평을 읽다 보면 하루를 구성하는 빛들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51호의 특집 주제이기도 한 하루치의 빛, 그 다양한 색과 형상의 파노라마 속에서 발견한 것은 수많은 빛의 궤적 속 우리가 만나고 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진이 말을 걸 때, 빛의 기억과 만나기
보스토크 잡지는 크게 사진을 감상하는 구간과 여러 비평 및 에세이,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구간으로 구성된다. 표지를 넘기면 보스토크가 소개하는 사진들과 바로 만나게 된다. 해당 부분에서는 사진집의 레이아웃에 충실한 편집 덕에 사진 감상에 전념할 수 있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상당히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기에 가능한 몰입의 경험이다.
사진집을 펼쳐 텍스트 없이 사진을 감상하다 보면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종이를 쓰다듬으며 그 질감을 느껴보려 하거나 사진에 담긴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려 집중하게 된다. 사실 작가노트나 해설과 함께 읽더라도 어떤 사진들은 지극히 고요하기도 하다. 다만 보스토크 잡지를 넘기며 기법의 문제가 아닌 의도된 침묵으로 시각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듯한 각각의 빛을 담은 사진들을 볼 때는, 사진들이 그 색과 저마다의 밝기로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빛은 따뜻하게, 어떤 빛은 대담하게, 또 어떤 빛은 고요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사진을 빛으로 되돌리기'는 선명하고 따뜻한 빛으로 다정하게 말을 건다. 4X5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중 빛이 들어간 사고를 계기로 작품을 탄생시킨 키도 타모츠는 작가 노트를 빌려 우리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잘못된 사용법이 또 다른 표현의 가능성이 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작가 노트에 적은 그는, 사진이 곧 빛의 산물이기에 필름의 일부가 탄 것을 곧 빛으로 환원되는 일로 해석한다. 필름 카메라 사용 중 사고로 여겨지는 일을 표현 기법으로 포용한 것이다.
엔도 아야카의 '카무이 모시르(Kamui Mosir)'는 몽환적인 빛의 반사를 통해 자연과 인간, 사물의 영적인 부분을 재발견한다. 맨눈으로 보면 사뭇 평범한 감상만을 줄 풍경과 가축도 그의 사진 속에서는 신성한 형상을 하고 있다. 카무이 모시르가 표현하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 앞에서, 영적인 체험이 주는 치유력을 오랜만에 느끼기도 했다. 이러한 사진들 속의 빛을 보고 있으면, 같은 광원에서 내리쬐는 빛이더라도 그것의 무수한 가능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사진 속에서 깃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사진들을 보며 빛과 연결된 듯한 감각을 선명하게 느낄 수도 있다.
각 작품에 대한 짧은 해설을 넘기고 나면 작가들의 에세이를 이어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진들이 주는 감상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나 이러한 사진 해설 노트를 쭉 읽고 나서 등장하는 다섯 편의 에세이가 집중력을 붙들어준 일에 무엇보다 놀랐다. 잡지라 하면 세련된 몇몇 이미지로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선택적으로 붙잡는 매체라는 개인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일까.
분명 잡지를 다 읽도록 해준 힘은 예상치 못한 에세이의 등장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은 숨기려면 어디까지나 숨길 수 있지만, 놀랄 정도로 솔직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빛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는 사진들이 그러하듯 얼마나 다른 빛을 띠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특히 잡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게 만든 김애란 작가의 '세 개의 빛'과, 읽는 내내 천진한 시절의 어슴푸레한 빛을 보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준 고명준 작가의 '반짝반짝 주머니'는 은은한 온기로 여운을 남겼다.
김애란 작가는 그 특유의 솔직하고도 마음을 울리는 문체로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인지 장애가 생긴 아버지를 간병할 때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고, AI가 건네는 위로에 감동했다가, 다시 AI 특유의 미묘한 인간답지 않은 부분에 마음이 식어가며 느꼈던 감정들을 그는 나눈다. 우리는 이제 길을 걸을 때도, 이동할 때도, 심지어는 함께 있을 때도 액정 속을 바라본다. 우리가 살아가며 자연히 갖게 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찬란한 기술에게 요구하겠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빛은 액정 밖에 있는 빛이라고 김애란 작가는 분명히 전했다. AI 시대, 우리는 순간을 스치는 빛을 관찰하고 가슴 깊이 새기는, '빛을 보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소박한 순간의 반짝임을 반추하려 애쓰며 고명준 작가의 에세이를 이어 읽었다. 짧은 글의 뭉치로 이루어진 그의 에세이는 한낮의 윤슬처럼 작은 빛들이 모여 반짝이는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글을 통해 소박한 일상의 조각이 형형색색의 빛으로 빛나는 것을 포착한다. '목록들'의 까마귀처럼 보석이든 유리 조각이든 빛이 난다면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조미료'는 비싸고 귀한 것이 아닌 빛이며, '사진의 기술'에서 "당신이 보인다면 빛난다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시선은 사실 그 자체로 빛이 났다. 빛이 우리를 비추고 경유하고 반사되는 방식은 이토록 많고, 또한 귀했다.
<보스토크 51>호는 따뜻한 빛을 머금고 있다. 내가 본 이미지를 타인에게도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 내가 느꼈던 그 빛을 타인의 마음으로 옮겨주려는 움직임, 사진과 빛의 관계 속에서 그 마음을 읽어낸 편집장의 마음은 독자에게도 충분히 옮겨 오고 있다.
덧붙여, 박지수 편집장은 <보스토크 51>호의 전명은 작가와 이민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사진에서 촉발되는 어떤 감흥이 결국 내 안의 잠재된 무언가를 흔들어 깨울 때 이미지가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지된 이미지가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은 결국 사진과 내가 대화를 하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순간이 감광지 속에서 고유의 빛으로 빛나고 그것이 눈동자에 비치면, 의도를 알 수 없는 낯선 시야에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진들을 볼 때는 그 갑작스러운 침범이 두렵거나 불쾌하지 않다. 빛의 아카이브, 그것을 통해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우리가 비로소 만나 '우리'가 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