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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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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다닌 스터디카페가 있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등록해서 다니는데,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몇 년째 걷고 있는 이 길은 너무나 익숙해서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묘하게도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그날의 날씨, 내 기분, 계절에 따라 같은 길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오곤 한다.


계절이 알려주는 시간의 흐름 - 봄에는 길가의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능소화가 주황빛으로 담벼락을 물들인다. 가을이면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어 바닥에 깔리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눈이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분다.

 

특별한 관광지도 아닌 그저 평범한 동네 길이지만, 계절은 매번 새로운 선물을 준비해 두고 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지난달과 이번 달이 다르다는 것을 이 길은 가르쳐준다.


창문 너머 핀 목련이 준 위안 - 어느 해 3월,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다. 꽃구경은 물론이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며 오직 스터디카페와 집만 오갔다.

 

그런데 어느 날 화장실 창문 너머로 목련이 활짝 피어 있는 게 보였다. 순백의 꽃잎이 햇살을 받아 빛나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그 순간만큼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봄이 왔다는 걸, 내가 책상에만 앉아 있어도 계절은 변하고 있다는 걸 목련이 알려주었다.


여름을 상징하는 능소화 - 스터디카페 가는 길에 능소화가 핀다. 길가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능소화는 여름이 되면 주황빛 꽃을 무성하게 피워내는데, 그게 참 예쁘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피어난 능소화는 그 자체로 여름의 상징 같다. 땀을 흘리며 걷다가 그 꽃을 발견하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된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능소화가 피어 있는 여름 길은 다른 계절과는 또 다른 기분을 준다.


이어폰 속 흐르는 장면 - 스터디카페로 향하는 길에는 주로 힘 나는 음악을 듣는다. 이무진의 '청춘만화' 같은 노래가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면, 내가 걷는 이 평범한 길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노래 가사와 지금 보이는 풍경, 그리고 내 감정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들. 같은 노래도 봄에 듣는 것과 여름에 듣는 것이 다르고, 맑은 날 듣는 것과 흐린 날 듣는 것이 다르다. 음악은 익숙한 길을 매번 새로운 경험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장치다.


반복 속에서 발견하는 특별함 -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공간에 앉지만, 어느 하나 똑같은 날은 없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달라지고, 내 기분이 변하고, 듣는 음악이 다르다. 익숙함 속에서도 매번 새로운 발견이 있고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특별한 순간들이 숨어 있다.

 

이 15분의 길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준다.

 

똑같아 보이는 일상도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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