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은 SF라는 외피를 두른 추리 및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주 장르인 만큼 SF 장르의 사건 전개를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인』의 로그라인은 ‘주인공이 누군가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다소 추리 소설과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추리와 성장드라마가 SF 요소를 만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했다.
『나인』은 주인공 ‘나인’이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식물처럼 피어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식물처럼 땅에서 자라는 종족 ‘누브’였고, 행성의 멸망을 막지 못하고 지구로 이주해 온 누브족의 후손이었다. 나인은 근래 지구에서 피어난 둘 중 한 명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른 채 인간으로 자랐다. 손가락에서 싹이 자라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게 되면서 본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해당 능력으로 박원우의 죽음을 알게 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추리 요소가 드러난다.
모두가 실종 상태로 알고 있는 박원우의 행방을 나인이 식물로부터 전해 듣게 된다. 그것을 기점으로 나인은 이 년 전 사건에 대하여 파헤치기 시작하지만, 진실은 쉽게 밝혀질 수 없었다. 원우의 죽음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선 나인의 정체를 함께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동갑 남자아이 ‘해승택’을 만나게 된다. 승택은 나인과 같은 해에 피어난 나머지 한 명의 누브족으로, 나인에게 누브족과 관련된 것들을 알려주고 나인이 본인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활용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가장 가까운 친구인 미래와 현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사실을 승택에게 공유하며 추리를 이어간다. 그렇게 미래와 현재, 누브족과 원우, 그리고 도현의 서사가 종합적으로 전개되며 진실과 문제해결에 다가간다.
1. 너와 나의 ‘다름’
‘외계인을 보았다’, ‘내가 외계인이다’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보통은 농담을 들은 듯 장난스레 웃으며 넘어갈 것이다.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긍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계인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고 외계인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권도현이 순식간에 박원우를 멀리했던 것은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원우가 해주던 미스터리 이야기를 좋아했던 도현이, 원우를 따라 태권도 학원에 등록할 정도로 그와 친했던 도현이 주변의 시선과 말에 흔들렸다. 원우를 한심하게 생각했고, 그의 아버지인 원승을 책임감 없는 어른이라고 판단했다.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는 도현의 행동을 원우는 받아치지 않고 받아들이기를 택했다. 도현은 그 행동을 일종의 무시로 받아들였고 그들의 관계는 분노와 멸시 같은 부정적인 단어로 재정립되어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홧김에 밀친 것이 죽음으로 이어질 것을 알았다면 도현은 그 분노를 다스릴 수 있었을까? 결과론적이라고 따지기 전에, 만약 그가 원우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정말 무언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물론 원우가 죽지 않고 귀가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관계가 회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현은 들려오는 소리를 막을 수 없었고 서서히 주변에 물들어갔으리라. 도현이 원우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두 사람의 관계에는 마침표가 찍혔을 것이다.
반면 미래와 현재는 달랐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나인에게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간 심각하게 고민했던 나인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말을 쉽게 받아들였다. 나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굴었다. 누군가를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미래와 현재는 나인을 믿었다. 마치 쌍꺼풀의 유무를 비교하는 것과 같이 그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었다. 나인은 그저 탄생 과정이 다른 존재일 뿐이었고 그가 미래와 현재의 친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듯 ‘다름’을 인정하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만일 도현이 원우의 ‘다름’을 인정했더라면, 미래와 현재 같은 친구였다면 권도현과 박원우의 관계는 여전했을 것이다.
사실 이 세상의 모두가 ‘나’와는 다르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이가 타인이며 각자 다른 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외계인을 믿는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에서 제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많은 이의 수군거림을 감내해야만 하는 이유가 될까?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함부로 내칠 수 없다. 특정한 사람이 만들어낸 표준, 보통, 정상성의 범주와 잣대는 쉽게 인용될 수 없다. 그러니 권도현의 부모가 박원우를 대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쉽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 평가의 잣대가 결국 피를 냈고, 비극을 만들었다. 그렇게 도현은 사람을 죽인 죄를 짓고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다름’을 인정하거나 부정하는 모습, 그리고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되기 위해서 모두가 조금씩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 시행착오가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타인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2. 미성숙한 어른과 아이
아이, 나이가 어린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도현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아이’일 수 있는 나이다. 그만큼 미성숙하고 사회를 경험해 보지 못한 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도현에게 부모는 어떠한 울타리였을지도 모른다.
어른은 아이의 지향점 혹은 본보기, 거울일 수 있다. 그 어떤 단어로도 과하지 않다. 그렇다면 도현의 부모를 과연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현이 주변에 물들어가고 소문에 휘둘릴 때 그를 붙잡을 누군가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앞으로 아이가 걸어갈 시간을 이미 지나온 사람이 ‘어른’이다. 그러니 아이가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고 후회할 상황에 휘말릴 때 바로잡아줄 이가 바로 ‘어른’이지 않을까.
하지만 도현의 곁에 그러한 어른은 부재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죄를 짓지 않아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 상황, 진정한 친구를 찾아 건강하게 자랄 미래를 앗아갔다. 적어도 도현의 모친이 거주지의 급을 나누지 않고 험담하지 않으며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이를 순수하게 봐 주는 어른이었다면 도현과 원우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원우를 ‘5등급에 사는 아이’가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는 친구’로 여겼다면 도현이 소문에 휩쓸릴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에게 기댈 곳에 생겼을 것이다. 도현이 모친의 호오와 자신은 무관하다고 여길 때, 지나가던 이들의 쑥덕거리는 소리에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훗날 자연스럽게 멀어졌을지언정 서로의 상처가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원우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죽더라도 도현이 그 즉시 죄를 인정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으리라. 도현이 원우를 밀치고 연락한 사람은 그의 부친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우를 묻기를 택했다. 이 선택으로 인해 도현의 죄도 함께 묻히게 된 것이었다. 그의 발산할 수 없는 죄책감도, 그로 인해 증폭하는 죄까지도 모두 한순간의 선택으로 생겨났다.
“성질이 다른 두 원의 경계야. 마음에 두 원이 있거든. 간단하게 청과 적이라고 하자. 태곳적에는 모두 청에 머물러 있었지만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이 경계를 넘어 적으로 가기도 해. 한번 넘어가면 다시는 청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는 거지. 그 영역의 경계가 점이 지대야. 나는 이 점이 지대를 넘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pp.339-340
권도현은 점이 지대에 있었다. 도현은 환영을 보기 시작했고, 그에게 머물러 천천히 불어가는 죄책감에 잠식해 갔다. 예민해졌고 우준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동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우준이 죽는 것을 생각한다. 권도현은 점이 지대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자신이 밟고 있는 붉은 땅이 피로 물든 줄도 모르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뒤틀린 어른이 만든 뒤틀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이후 도현은 나인을 통해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 외계인은 존재한다는 사실과 원우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진실을 듣는다. 그렇게 매 순간이 고통스러울 점이 지대로 돌아와 자수하게 된다.
아이처럼 악을 쓰며 우는 소리가 오랫동안 경찰서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p.401
원우의 부친인 원승은 무릎 꿇고 사죄하는 도현에게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제 아들을 죽인 살인자’ 이전에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임을 기억하는 원승의 말에 도현은 비로소 아이가 되었다. 혹자는 원승의 답변이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반응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태도가 어쩌면 온전한 어른이 아닐까 싶었다. 작가가 논한 ‘뒤틀린 어른이 뒤틀린 아이를 만드는 것’, 그 굴레가 끊기는 순간인 듯했다. 도현의 죄에 대한 용서와 구원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굴레를 끊었다는 것에 대한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현이 점이 지대로 돌아와 스스로 남은 생을 지옥 속에서 살아갈 것을 택한 마음을, 아들을 죽인 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 원승의 마음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것이 이 이야기를 대하는 알맞은 태도일 듯하다. 용기나 다정함 따위로 쉽게 형용할 수 없는 그 마음이 따듯한 세상을 만들 것이다. 온전한 어른이 존재하고,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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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나인』은 식물처럼 피어난 소녀 나인이 원우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SF, 추리, 성장 등 여러 키워드를 지닌 만큼 복합적이고 그 속에는 세상의 따뜻함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을 담아내고 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다정할 수 있도록 용기 내야 한다고 전한다. 용기 내어 누군가를 믿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마음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