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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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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능을 치러 가는 날에도 언니는 큼지막한 링 귀걸이를 꼈다. 얼룩덜룩 셀프 탈색한 머리카락은 질끈 묶었으나 검은 뿌리는 감춰지지 않았다. 언니는 휘적휘적 시험장을 향했다. 언니가 외쳤다.

 

“그만 가. 하던 대로 보고 올게. 간다.”

언니 말에 엄마도 질세라 당부했다.

 

“정신 잘 잡고. 잘 보고 와. 엄마 기다리고 있을게.”

아빠도 한마디 덧붙였다.

 

“이따 데리러 갈 거니까 폰 받으면 바로 전화해.”

“어, 들어가.”

 

멀어져 가는 언니의 머리통에서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 금색 링 귀걸이가 흐려지다가 다시 보였다. 달랑달랑 흔들리는 귀걸이를 보며 나는 1년 전 수능날을 상기했다.

 

언니는 첫 수능이 끝나고 바로 귓불을 뚫었다. 그러고는 집에 붙어있을 틈 없이 신나게 놀러 다녔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크고 작은 사고를 쳤다. 취해서 폰이며 지갑까지 다 잃어버리고 겨우 집에 들어오곤 했다. 한번은 길에서 자다가 누군가 신고했는지 강남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전화를 받고 새벽 두 시에 데리러 간 적도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잠들어서 종점까지 가는 일도 잦았다.

 

화려한 걸 좋아하던 언니는 묵직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귀걸이를 애용했다. 무거운 귀걸이를 끼다 보니 귀에 난 구멍이 아래로 쏠렸다. 중력을 따라 세로로 길고 가늘게, 팽팽하게 늘어지던 그 귓불은 매일 밖으로 나다니던 언니의 성정을 못 견디고 찢어지기 직전까지 갔다. 언니는 지방대학교에 가네마네 부모님과 언쟁을 벌이다 결국 재수종합학원에 입소했다. 인생은 되는 대로, 큰 욕심 없이 사는 게 목표였던 언니는 유독 어려웠던 그해 수능을 망치고 수긍하려 했으나 부모님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언니를 들들 볶았다. 언니가 술을 잔뜩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붙잡고 안방에서 긴 대화를 나누었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잦았다. 언니도 그 성화에 못 이겨 재수를 선언했다. 고작 그 대학에 가서 뭐 해 먹고 살 거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은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언니는 강제로 다니게 된 학원에 매일 가장 일찍 들어가서 가장 늦게 나왔다. 그럼에도 귀걸이는 빼먹지 않고 차고 다녔다. 찢어진 귀가 거의 아물 때쯤에 더 무거운 귀걸이를 차고 또 귀를 혹사했다. 언니를 충분히 관찰할 정도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새살이 돋다가도 다시 상처가 생겨 염증을 달고 다니는 언니의 귀만큼은 자꾸 신경 쓰였다. 점점 조용해지는 언니와 다르게 무거워지는 귀걸이. 귓바퀴에 몇 개나 뚫었던 피어싱이 모두 막혀도 귓불은 울긋불긋, 아슬아슬하게 그걸 매달고 다녔다.

 

“너, 귀 안 아파? 걱정되지 않아? 네 귀인데 왜 신경을 안 써?”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좀. 신경 쓰지 마.”

“귀가 난리가 났는데 말을 왜 그렇게 해? 엄마가 돼서 이런 말도 못해?”

“내 귀가 찢어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나 나가야 해. 간다.”

 

그동안 언니를 지켜보며 나도 나대로 입시를 준비하느라 바빠 언니의 마음을 헤아릴 틈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억울한 부분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과외에 학원까지 모든 지원을 쏟아부은 언니를 재수학원까지 보내고 아등바등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부모님이 내게는 투자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수학학원 하나만 다니면서 홀로 학교 시험은 물론 생활기록부를 챙기기에도 벅찼다. 언니가 재수해도 내가 원서를 쓸 수 있는 학교보다 훨씬 낮은 대학에 갈 게 뻔하기도 했다.

 

언니의 두 번째 수능이 끝나고, 내 예상과 달리 언니는 이전처럼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집에만 있었다. 염색한 머리도 검은색으로 돌아왔고 집에서 노트북만 들여다봤다. 귀걸이도 전부 빼버리고 대신 이어폰을 꽂았다. 성적이 궁금하지도 않은지 가채점표를 꺼내지도 않고 부모님이 속 터져 죽으려고 할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결국 수능 성적표를 받을 때까지 집에만 있던 언니는 적당히 컨설팅을 받고 서울 하위권 대학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실망한 티를 내지 않으려 잠잠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도 자주 했다. 

 

언니의 입시가 끝나자마자 내 입시가 시작됐다. 여태까지 해오던 대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압박이 내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지지와 기대를 저버리고 한심하게만 구는 것 같던 언니가 이런 걸 견뎌내고 있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못 보고 있었던 거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집에 와서 바로 채점을 한 후 아버지에게 가채점 성적을 보여주고, 오답 노트를 작성하고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버지의 기준에서 쉬운 걸 틀리면 왜 틀렸는지 단둘이 간 외식 자리에서 일일이 해명했다. 아버지의 한숨이 짙어질수록 어깨가 무거워졌다. 너 대학은 갈 거니. 네 언니처럼 재수라도 할 생각이니.

 

내 수능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 성적을 공개하는 날에도 그랬다. 말을 하려다가도, 말해봤자 아버지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나를 꾸짖을 걸 아니 말이 안 나왔다. 듣기만 했다. 귀가 간지러웠다. 듣고 싶지 않은 말들로 꽉 막혀버린 것 같았다. 아버지 앞에서 귀를 마구 후비고 귓구멍을 뒤집어 까서 안에 있는 부스러기들을 탈탈 털어내고 싶었다. 참지 못하고 귓불을 잡아당겼다. 조금 시원해졌다. 집에 와서도 계속 잡아당겼다. 아래로 끌어내렸다. 뭔가 무거운 걸 매달고 싶었다. 추를 매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귓속에 맺힌 묵은 때가 똘똘 뭉쳐져서 저절로 굴러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수능이 끝났다. 시원찮았다. 부모님의 얼굴을 볼 낯이 서지 않았다. 수험장에서 집까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뒤 부모님의 차를 피한 채 뒷문으로 홀로 나왔다. 곧바로 근처 피어싱 샵으로 향했다. 수험표를 보여주니 이렇게 빨리 수험표 할인 받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사장님이 수고했다며 웃어 주었다. 어떤 귀걸이로 귀를 뚫을지 고르라며 작고 예쁜 귀걸이들이 진열되어 있는 서랍으로 날 이끌었다. 뒤를 돌아 벽에 걸린 큰 원형 귀걸이를 골랐다. 이거로 뚫어도 되나요. 안 될 건 없지만 귀가 좀 아플 수도 있다고 사장님이 몇 번이고 말리는 기색을 보였다. 제가 원하던 게 그거였던 것 같아요, 생각하며 강경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어깨와 뒷목이 긴장으로 굳었다. 살살 등을 쓸어주며 귀를 아프게 주무르고 사장님이 말했다. 따끔해요.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보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는데 귀에 그런 거나 달고 이제 돌아왔냐며 할 말을 참는 듯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언니의 방으로 갔다. 언니는 침대에 누워있다가 내 귀를 보고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천천히 내 옆을 스치는 듯 화장대로 가 서랍을 열었다.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귀걸이가 서랍 가득 줄 서 있었다. 너 가져. 난 이제 괜찮아. 언니가 말했다.

 

귀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언니의 귀로 시선을 향했다. 아래로 늘어진 언니의 귀. 막히는 속을 뚫으려고 잔뜩 학대한 흔적이 남은 피어싱 자국들. 부처는 중생들의 고통을 듣기 위해 귀가 커졌다는데. 언니의 귀는 누구의 명령으로, 누구의 한을 풀기 위해 그토록 너덜너덜해졌나. 작은 마름모꼴로 구멍이 난 언니의 귓불 사이로 누군가의 한숨이 새어나오는 듯했다. 밖에서 부모님이 불렀다. 나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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