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이상이 내가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세계라면, 현실은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리다.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는 모습을 이상이라고 부른다. 꿈꾼다는 것은 엄연히 현재 서 있는 자리보다 나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 이상을 몸소 겪어본 적이 없음에도 어떻게 현실보다 낫다고 자부하며 동결할까 하는 것이다.
10월 8일부터 대학로 스튜디오블루에서 상연되고 있는 <몬스터 허균>은 우리 역사 속 인물인 허균의 이상을 보여준다. 현대 사람들에게는 <홍길동전>의 작가이자 허난설헌의 동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연극은 허균이 역모죄로 인해 처형당하기 전날 밤이 모습을 그린다. 당시 왕이자 과거 허균의 제자였던 광해군이 그를 불러냈고, 그 자리에는 광해군의 신하이면서 허균의 벗이었던 이이첨도 함께였다. 셋은 술을 나눠 마시며 허균의 과거를 헤집는다.
허균은 광해군과 이이첨의 벗이면서 뜻을 함께 하던 사람이었다. 뜻을 같이 했다는 것이 뜻이 같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광해군이 왕권을 강화하고 왜의 침략에 맞서던 시절 그도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 허균의 승진은 고공 횡진했지만 그럴수록 허균은 마음 한편이 시림을 느꼈다.
왕의 옆에서 총애를 받은 허균의 죄명은 역모죄였고, 역모죄의 배경은 홍길동전이었다. 서자인 인물이 전국에 도술을 부리며 나타나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데 나눠주고, 차별이 만연한 나라를 뒤엎는 데 나선다는 내용, 향후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받고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나라는 세운다는 소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왕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가 아니라 저잣거리의 이야기나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연극에서 느낀 이상에 관한 그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하나는 허균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다. 허균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는 나라를 꿈꿨다. 백성들이 굶어죽지 않고 등 따듯하게 잘 수 있는 나라를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점점 평등과는 멀어져 더더욱 강한 권력을 쥔 위치까지 올라섰다. 꿈 꾸는 나라와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의 괴리, 그 이상과 현실에 주목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 허균이 자신이 바라던 것은 왕의 자리가 아니라 체제 전복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체제 전복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괴리를 줄이거나 현실에 순응하지도 않은 허균의 절규와 허탈함이 잘 묻어난 작품이다.
또 하나는 완전한 이상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홍길동전은 홍길동이 율도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점에서 끝나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한다. <몬스터 허균>은 홍길동의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을 품고 있다. 허균의 이야기지만 홍길동도 하나의 실존하는 인물처럼 나타나 살아숨쉬고 허균과 대면한다.
율도로 떠난 홍길동의 모습이 행복해보였는가. 내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이 든 홍길동의 자리를 첫째에게 물려줄지 둘째에게 물려줄지를 두고 두 집안이 다퉜고, 기존 나라의 전통을 일부 따를지 완전히 새로운 전통을 만들지도 관건이었다. 백성들이 행복할 수 있는, 전과 다른 나라를 꿈 꿨지만 그곳의 모습은 조선과 닮아 있었다.
현실을 타개한 완전한 이상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율도국만의 새로운 전통(국가의 운영 같은 것)을 만들 거라면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기존의 전통을 계승한다면 율도가 조선과 무엇이 다르다 할 수 있는지.
체제 전복을 바랐던 허균과 그 허균의 소망을 담긴 홍길동(과 그가 맞은 결말)이 겹쳐지면서, 이상과 현실이 또 뒤틀리는 것도 같아서 작품의 무게를 더하는 듯 느껴졌다.
그럼 이상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허균도 사실 그 대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다. 작품 끝에서 허균을 살리고 싶었던 광해군은 애써 그의 행적이나 발언들을 덮고 대변해보려 하지만 허균은 자신이 꿈 꿨던 나라의 모습에 대해 더욱 힘을 실어 말한다. 더는 그 꿈이나 괴리를 외면하며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허균의 방향성에 잘못된 것은 없지만 조선시대 때 그의 방향성은 역모였고, 그는 형벌을 받아들인다.
단순 허균의 신념이나 일생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과 허균의 이상이 얼마나 달랐는지, 허균이 왜 이상을 외면하고 현실에 순응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뮤지컬처럼 음악의 활용도 다양하고, 악사나 산이, 받이 등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며 흘러가는 흐름도 새로웠다.
작품이나 현실을 종합해서 허균은 자유분방하고 출신 상관없이 사람들을 가까이 해 시대의 이단아, 괴물로 칭해졌다고 한다. 그 괴물 같은 허균의 꿈을 마주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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