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 홍길동.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로 태어나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그의 탄생에는 허균이라는 사대부, 조선의 양반이 있었다.
본디 양반으로 태어난 허균은 장관급에 해당하는 높은 관직에 올랐음에도, 백성을 위한 정치를 꿈꿨던 시대의 이단아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바꾸겠노라는 어마 무시한 꿈을 꾸었던 사내. 그런 허균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 오는 11월 1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 블루에서 상연된다.
한때 광해군의 벗이자 스승이었던 허균. 그런 그가 역모죄로 처형을 당하기 하루 전이, 바로 연극 <몬스터 허균>의 배경이다. 역모죄의 발단에는 그가 쓴 소설 <홍길동전>이 있다. 소설 속에서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감히 허균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광해군과 충신 이이첨.
연극 <몬스터 허균>은 죽음을 앞둔 허균과 광해군, 그리고 이이첨의 마지막 대화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허균이 꿈꾸는 나라는 백성들이 우선이 되는 나라였다. 나라의 근간은 백성이라 생각했던 그는 왕실의 배만 불리는 조선의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왕 밑에서 벼슬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던 그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신념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의 바람은 쉬이 잠들지 않고 소설이 되어 조선 땅에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광해군은 자신의 스승이자 벗이었던 허균을 죽이고 싶지 않다.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빌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노라 손을 내밀지만, 허균은 끝내 그 손을 거부한다.

이렇듯 연극 <몬스터 허균>의 전체 줄거리는 단순하다.
하지만 연극은 당시 <홍길동전>이 저잣거리에서 마당극으로 소비되었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다채로운 볼거리들로 무장하였다. 노래와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꼭두각시놀음을 활용해 배우들이 인형과 대화를 나누거나, 전통 연희의 '산받이' 형식을 차용해 배우와 관객이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중심 스토리 안에 <홍길동전>의 주요 내용을 액자식으로 끼워 넣어 관객들의 이해를 도운 것은 물론 조선에서 사용되던 한자어의 경우, 무대 뒤 스크린에 해설을 띄워 설명해 주는 덕분에 수월하게 극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의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연극이다.
극 중 메인으로 불리는 노래도 '술 마시기 좋은 때'라는, 한 번 들으면 뇌리에 박히는 가사와 입에 착 붙는 중독적인 멜로디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공연이 끝난 후 극장을 나서며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극 <홍길동전>의 여러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욕'을 하는 상황에 대해 극 중 인물들이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신분이나 가난 등 사회적인 제약 조건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에서 유일하게 속을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이 욕이라 설명한다. 심지어 욕을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쁜 일이냐며 반문하는데, 그 질문이 2026년 현대 사회에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천하의 괴물'이라고 기록되었다는 허균. 당시 그의 바람은 헛된 소망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신분제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어떨까? 우리는 정녕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연극 <몬스터 허균>이 남긴 질문을 곱씹어 보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이 땅을 바꾸고 싶어 했던 허균. 그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