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을 통해 에디터 활동을 시작했다. 계기는 꿈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직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영화 평론가였다. 영화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고 그 감상을 직접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트인사이트 활동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얻어 지금까지 즐겁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어느덧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한 에디터 활동. 오늘은 그 활동의 일환으로 아주 특별한 전시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아트인사이트 내부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 합심하며 만든 전시회로, 4월 14일까지 성수역 전시 공간 맷멀(MatMul)에서 진행된다.
전시회의 이름은 <틔움>. 총 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다섯 작가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마다의 작품 스타일이 모두 달라서, 각자의 눈을 사로잡는 작품 역시 다를 것이라 예상한다. 나 또한 내 마음에 찾아온 작품들이 몇 점 있었고, 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작가 - 나른
위 그림은 일러스트와 글을 통해 내면 깊은 곳의 감정, 그중에서도 사랑이라는 테마를 진솔하고도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작가 나른의 작품 두 점이다. 그림 속에는 다소 슬퍼 보이는 여성이 존재한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는 모습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작가는 사랑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고 하니, 사랑에서 실연을 겪은 것일까? 혹은 지루한 연애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바람을 피우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두 작품의 우측에 적혀 있는 설명 문구를 읽어 보았다.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감정을 뒤늦게 꺼내 보았을 때, 비로소 지나간 한때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미묘한 마음들'을 담았다고 한다. 그녀들의 슬픔이 어디서부터 귀인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그림 속 모습은 감정의 폭동을 겪고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감정들이 찾아올 때가 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감정들에 휘둘린다. 그럴 때는 사리분별이 쉽지 않다. 무엇이 문제이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저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나부낄 뿐이다. 혹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대상으로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
감정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그때는 그랬지'라며 곱씹어 보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제야 그때의 내 모습과 마주할 수 있는 것 같다.
작가 - 은유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희망찬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거대한 선인장이 가려주고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순간에도, 기꺼이 당신의 그늘이 되어 줄 존재가 있다는 의미라고도 보았다.
하지만 작가가 그림과 함께 쓴 에세이를 보니, 내 예상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작가는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의미로 선인장을 그렸다고 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뾰족한 가시로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선인장의 모습을 생각하며 다시 그림을 보니, 그런 방향으로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언제나, 어느 순간이나 희망은 있다고 믿고자 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작품에서 의식적으로 희망의 상징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 그림에서도 나는 그림 속 인물이 선인장을 바라보고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인장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물이 서 있는 방향을 어떻게 인지함에 따라, 그림 속 상황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작가와 감상자가 그림을 이해하는 방향은 충분히 상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작품을 바라보는 당사자의 상황이 그림 해석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작가 - 대성
대성은 회화나 일러스트,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개인적 관심사에 맞닿는 사회 이슈에 유머러스하게 접근하는 작가이다. 유머와 위트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작품들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위 작품들의 제목은 모두 한 단어이다. 작가는 몇 가지 단어를 선정하고 그 단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그림을 보고 제목을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공감이 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는 '믿음'이라는 작품이 가장 와닿았다. 칼로 연필을 깎고 있는 그림인데, 연필의 깎이면서 꽃을 피운다. 자신이 깎여 나가는 과정을 지내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믿음을 너무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무척 아름답게.
반면, 위 작품의 주인공은 장미꽃이다. 장미꽃은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온실 속의 화초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하나의 그림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실제 꿈은 달랐다. 다른 꽃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림이 된 장미꽃은 훨씬 아름답고, 훨씬 가치가 있다. 하지만 장미꽃이 과연 행복했을까? 그 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틔움> 전은 4월 14일까지, 성수역 인근의 전시공간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공간 속에 아기자기하게 피어오른 꽃송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작가들이 만나 함께 개최한 연합 전시인 만큼, 다양한 개성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어 전혀 심심하지 않다.
더불어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구매할 수 있으며, 입찰의 방식을 통한다고 한다. 작가들이 직접 만든 굿즈를 판매하는 섹션도 마련되어 있으며, 작가들에게 작품 감상을 남길 수 있는 오픈 채팅방도 운영 중이다.
성수역 인근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다채로운 성수의 풍경에서 잠시 사색의 순간이 필요할 때,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