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개봉한 <귀멸의 칼날>의 극장판도 관객 수 500만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실로 영화 시장이 무척 어렵다는 뉴스와 상반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이런 현상을 보면 진정 '취향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자유롭게 표현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자신의 취향을 이제는 누구나 당당하게 드러내 보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 오타쿠라는 시선은 이제 한물 간 편견인 듯하다. 그간 다들 어떻게 숨겼나 몰라?
나 또한 이런 흐름에 편승하고자, 대놓고 애니메이션을 위한 축제에 다녀왔다. 이것은 CGV 연남에서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5 방문 후기이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5는 동동이라는 슬로건 아래 CGV 연남에서 총 6일간 진행되는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독립 애니메이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이자, 애니메이션으로 모여 애니메이션으로 확장되는 축제로서 영화 상영 및 GV, 세미나 등을 함께 제공하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동동!
발을 구르며, 오늘도 신나게 동화를 쳐내자!
동동!
아침 해가 빛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한다!
동동!
작은북을 울려라, 모두 모여 신나게 놀아보자!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5 슬로건이다. 관객들은 개막작 <레즈우주공주>를 비롯하여 <독립보행>, <새벽비행>, <랜선비행>, <아시아로> 등 중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고를 수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대부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되어 있어 짧은 시간에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본 페스타의 주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중 2개의 프로그램을 감상하였다. 바로 독립보행3과 아시아로3이 그 주인공이다.
독립보행3은 국내 단편 인디 애니메이션 모음집이다. 국내 신진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파라노이드 키드>, <타이니리틀져니> 등 총 6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중 기억에 남는 작품인 <우리 꼭 다시 만나>에 대해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애니메이션 <우리 꼭 다시 만나>는, 서로를 사랑하는 다섯 개의 원자가 지구에서 꼭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지만 지구에서 서로를 잊고 만다 라는 시놉시스를 가지고 있는 2D 애니메이션으로 빨강, 파랑, 노랑, 주황과 보라색의 원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나,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각자 다른 모습으로 지구별에 태어난다.
지구별로 내려가기 전, 이들은 꼭 서로를 다시 알아보자고 약속한다. 그리고 각자 다른 모습으로 지구의 구성물이 되어 살아간다. 어떤 원자는 사람, 또 다른 원자는 꽃, 원숭이 그리고 돌고래로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중, 우연히 서로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서로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서로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동물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지만, 인간은 끝내 알아보지 못한다. 꽃은 아무런 말이 없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는 듯, 알아보지 못한 채로 그들은 다시 원자의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처음에는 '사랑해'를 남발하던 원자들 사이에서 욕설이 나오며 애니메이션은 끝이 난다.
작품이 끝나고,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감독의 말을 찾아보니,
지구 위에 있는 우리는 모두 동등한 존재이며,
서로의 존재를 존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작한 작품
이라고 한다. 감독의 말을 읽은 후 다시금 작품의 내용을 곱씹어 보니, 원소가 지구별에 무엇으로 태어났는가에 따라 그들 사이에 나름의 위계질서가 생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배경은 동물원. 따라서 인간은 동물을 관람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동물원은 인간과 동물의 위계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일 것이다. 동물은 관람의 대상이고, 인간은 관람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숭이가 된 원자가 자신을 알아 보라며 소리를 질러도, 인간이 된 원자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분명 서로를 꼭 알아보자고 다짐했던 원자들인데, 위치가 달라지니 마음도 변한 것일까?
새삼스럽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도 생각이 났다.
아시아로3은 국내를 제외한 아시아 감독들의 애니메이션을 모아놓은 프로그램이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하여 다양한 아시아 국가 감독들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다. 총 7편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침몰>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침몰>은 안개가 덮인 호숫가를 배경으로 한다. 속설에 이렇게 안개가 낀 호숫가에는 유령이 나타난다, 수괴가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두 명의 낚시꾼이 안줏거리 삼아 떠드는 말에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문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때 순간 날아오른 새 떼에 놀란 한 남성이 호숫가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소문이 사실이라며, 안개 낀 호숫가를 서성이면 화를 입는다고 한 마디씩 하며 자리를 뜬다. 호숫가로 떨어진 남성을 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침몰>이라는 작품이 끝난 후 뭔지 모를 기분이 올라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안개 낀 호숫가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러나 막상 실제 위험 상황이 생기자 아무도 그 상황에 대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관망하며 떠나버린다는 것이 굉장히 모순적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놉시스에 따르면 본 작품은,
모호한 상황 속 군중 심리를 탐구한다.
집단 속 개인의 관점을 통해, 궁극적으로 비이성적인 판단의 집단이라는 주제를 보여준다.
집단은 자신들이 보는 사건을 왜곡하고, 결국 집단의 비이성적인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고 한다. 작품을 보고 나니, 집단의 비이성적인 움직임이라는 말이 무척 와닿았다. 말과 행동이 상이한 그들의 모습은 진정으로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떠도는 소문과 루머에 민감해 보이면서도 막상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굉장히 기이하고도 기괴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의 밑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2025에 방문한다면, 이처럼 다채로운 국내외 인디 애니메이션들을 감상할 수 있다. 대중적인 작품은 아닌지라 다소 생소한 감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어 오히려 생각을 깊게 만들어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작품 상영이 끝난 후 GV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작품에 대한 더욱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분이라면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어, 더욱 특별했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