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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대학 학부 시절, 다양한 전공 과목 중에서 유독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이 바로 '언어 심리학'이었다.

 

교수님께서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언어'라는 이야기를 해주신 그 순간부터 이 과목에 푹 빠져들었던 것 같다. 너무 매력적인 말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언어의 구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가 사과를 보고 '사과'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연필은 왜 연필일까? 지우개는 왜 지우개일까? 궁금했지만,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비로소 대학에 가서야 그 대답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퍽 즐거웠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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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혼 없는 작가>는 다와다 요코라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이다. 저자는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방인으로서 하나의 언어에 스며들어가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낱낱이 파고 들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감각이 꽤나 낯설다.

 

책은 여러 단편의 에세이 모음집인데, 첫 번째 에세이가 유독 힘들었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과연 내가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고백하건대, 지금도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진 못한 것 같다. 조금 건너뛰기도 했다. 아무렴 어때! 단편 모음집의 장점은 언제든지 이야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장을 넘어가자,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났으니 만족한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엄마말에서 말엄마로'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이 에세이에서 저자는 독일어에 적응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일본어와 달리 남성형, 여성형이 존재하는 독일어의 생경함을 극복하기 위해 실제 사물을 바라볼 때 남성 명사는 남성적인 특징을 찾아내고자 했고, 여성 명사는 여성적인 특징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런 시도가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는데, 나도 단어에 성별이 존재하는 언어를 배워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역시 학부 시절이었다. 교양으로 프랑스어 입문을 들어야 했는데, 도통 입에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특히 단어에 여성과 남성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어색해서 힘들었다. 그냥 단어를 통으로 암기하려고 해도 외워지지 않아서 결국은 시험 전 벼락치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만일 그때 나도 저자와 같은 연상법을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쉽게, 좀 더 재미있게 프랑스어와 친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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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독일어에 존재하는 특별한 언어들에 대해 곱씹는 부분도 무척 흥미로웠다.

 

 

더욱이 나는 단어 "es"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비가 온다고 말하는 순간, Es가 생겨나고 이것이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게 만든다.

 

어떤 사람이 요즘 잘 지내면 거기에도 이에 기여한 Es가 있다. 그럼에도 아무도 이 단어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고유한 이름을 가진 적도 없다. 그러나 es는 모든 영역에서 언제나 열심히, 도움을 주면서 문법상의 빈 공간에서 겸손하게 살고 있다.

 

- 48쪽에서 발췌

 

 

여기서 es는 영어에서 비인칭 주어 it을 의미한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한 번도 비인칭 주어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라고 생각했었는데, 저자는 그로부터 문장의 의미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아무런 역할 없이 그저 빈 공간을 채울 뿐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문장의 시작을 단단하게 채워주는 존재로서 es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상대 언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모든 단어에는 나름의 의미와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언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분명한 시너지를 주었을 생각이다. 단언컨대 저자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독일어를 학습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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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혼 없는 작가>는 일본인인 저자가 독일이라는 유럽에서 생활하며 보고 느낀 크고 작은 삶의 부분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경험하여 글로 옮긴 에세이로, 저자만의 독특한 표현이 인상적인 책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자 처음으로 다와다 요코를 알게 된 1인으로서, 마냥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추상의 사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길을 잃을 확률이 농후하다. 따라서 본인에게 가장 쉬운 내용의 글부터 습득하는 것을 권장한다. 첨언하자면, 짧은 글이 곧 쉬운 글을 아니라는 것은 명심하길 바란다.

 

이 책을 집어들었다는 것부터 큰 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먼저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책이지만, 언어에 관심이 있고 또 언어에 호기심을 느끼는 분이라면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영혼 없는 작가>는 평상시에 그저 쉬이 지나쳤던 단어 하나하나에 새로운 관심이 피어나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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