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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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세계선'은 물리학 용어로 네이버 국어사전의 검색 결과에 따르면 "사차원의 시공 세계에서 세계점이 만드는 곡선"을 의미하는데, 특이하게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노래 가사에서 특히 자주 등장한다. 이때의 세계선은 마치 평행 우주처럼 여러 개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그 여러 경우의 수 각각을 일컫는 말처럼 쓰인다. 특히 일본 콘텐츠를 즐겨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후자의 의미로 쓰이는 세계선에 훨씬 친숙할 것이다.

 

주류 문화나 오래 이어져 온 관습뿐만 아니라 서브컬쳐는 삶의 영역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왔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에반게리온>에서 처음 등장한 '싱크로율'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외래어마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서브컬쳐는 이렇게 조용히 주류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을 넘어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서브컬쳐의 영향력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선이다. 서브컬쳐 소비가 의미 있는 문화 경험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소비의 증가가 새로운 세계선을 불러온 것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수많은 트렌드가 뜨고 졌다. 개중에는 열기가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와 결합되거나 꾸준히 팔리는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도 있다. 서브컬쳐로 분류되던 많은 문화들이 그에 속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솔로 아이돌 가수 예나가 보컬로이드 가수 '미쿠'와 콜라보레이션한 음악을 발표했고, 스파오(SPAO)는 먼작귀, 헌터X헌터와 같은 일본 만화 IP와 콜라보해 의류를 판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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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브컬쳐로서 이를 향유해왔던 이들에게 서브컬쳐의 부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일이기도 하다. 서브컬쳐가 대중에게 힙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소구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기존 소비자에게는 서브컬쳐 자체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브컬쳐가 먼 미래에 어떤 형태로 남아있게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 속, DDP 뮤지엄 전시 2관에서 만났던 '<울트라백화점 Vol.2> 포스트 서브컬쳐'가 관객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무척 흥미로웠다.

 

<울트라백화점 Vol.2> 포스트 서브컬쳐 서브컬쳐가 선택되고 소비되었던 방식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하위문화의 장르를 제시하고 창작자 개개인의 목소리를 제시한다. 관객은 그 안에서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지점을 확인하고 내면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강한 문화의 흐름은 이렇게 한 명 한 명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마이너함이 힘이 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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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개의 브랜드 및 크리에이터와 함께한 <울트라백화점 Vol.2> 포스트 서브컬쳐 전시에서는 그 이름처럼 거대한 서브컬쳐의 아카이브를 구경할 수 있다. 매거진, 음악, 출판, 영화, 패션을 주제로 한 전시들을 관람할 수 있는데, 전시장은 각각 스트릿, 레코드샵, 서점, 매표소와 상영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뚜렷한 테마를 지닌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는 서브컬쳐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하나 하나 담아내고 있기에, 모든 내용을 꼼꼼하게 읽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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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처음은 "FINDER" 섹션의 '서브컬쳐 스트릿'이 연다. 수많은 트렌드 매거진이 쏟아지는 현재 우리는 매거진 자체의 명성이나 전통보다, 얼마나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고 매거진의 콘텐츠가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방점에 두고 매거진을 선택한다. 서브컬쳐 스트릿에서는 060mag, 엘르, 닷슬래시대시, 데이지 등 다채로운 매거진을 빠르게 훑어볼 수 있고, 에디터들이 작성한 글을 읽어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부터 우리의 선택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매거진은 뉴스와 달리 중립적인 목소리보다는 매거진 에디터 개개인의 관점이 투영되어 뚜렷한 색채를 지니게 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에디터들이 모이면 한국 영화의 미래를 논의하는 매거진이 탄생하고,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스트릿 패션 등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에디터들이 모이면 일본 서브컬쳐의 현재를 다루는 매거진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개개인이 독자에게 대화하고 싶은 상대로 인식될 때 매거진은 선택된다. 다채로운 주제를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로 전하는 서브컬쳐 스트릿에서 종이를 한 장씩 모아가며, 자신의 관심사를 가볍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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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 스트릿을 지나면 레코드판이 차곡차곡 쌓인 레코드샵 같은 공간이 나온다. 여기부터는 "COLLECTOR" 섹션이다. 바구니에 담긴 레코드를 한 장씩 넘겨가며 가수들의 추천사를 읽어보라. 음악을 직접 들어보기 전 국카스텐, 너드커넥션, 페퍼톤스 등의 가수들이 추천하는 곡이 자신에게 같은 감상으로 다가올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음이 가는 플레이리스트가 담긴 레코드 스티커를 수집한 후에는 전시장 한쪽의 벽면에서 내가 선택한 음악을 골라 감상할 수도 있다. 음악이 향수가 되고, 시절이 되고, 그리운 사람이 될 때, 좋은 음악 뿐만 아니라 그런 의미 또한 타인과 나누고 싶은 것은 가수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재밌게 감상했던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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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간은 습관, 유물, 미스테리, 재미 등 각각의 테마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분야를 개척해가고 있는 출판사들의 출판물을 구경할 수 있다. 각각의 부스에 들어가 구경하고 출간한 도서를 직접 읽어보기도 하며, 가장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건네는 출판사의 책갈피를 한 개 수집했다. 각각의 서점 앞에는 책의 미래와 출판 일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저마다의 대답이 쓰여 있다. 놀라운 것은, 기억이 맞다면 모두 대단한 사명감이 아닌 이유로 출판 일을 선택했다고 답한 데 있었다.

 

특히 요즘, 독서는 교양 내지는 취미의 영역으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책을 사랑해서, 혹은 책이 재밌어서 출판에 진심이 된 이들의 정성 어린 부스를 구경하며 생각이 깊어졌다. 책은 한때 컴퓨터였고, 게임이었을 것이다. 그 의미를 다른 장르와 나눠 가졌다고 해서 종이책의 존속 이유를 엄하게 묻고 대단한 답을 바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책을 게임보다, 친구와 만나서 노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법이기에, 이런 개인적인 이유로도 서브컬쳐는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서브컬쳐의 현재를 지탱해온 건 순전히 그것이 계속되기를 바라는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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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미니북을 읽어볼 수 있는 구간까지 지나쳐 오면 영화관으로 입장하는 듯한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상영 중인 영화 포스터와 시놉시스가 붉은색 장막 앞에 부착되어 있고 영화관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서면 벽면 곳곳에 붙어 있는 TV에서 영화의 장면들이 흘러나온다. 매표소는 물론 상영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는 화면도 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영화를 직접 관람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독특한 발상에서 탄생한 영화들을 더 큰 상영관에서 볼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알고리즘에 떠서 일찍이 보았던 <유월>을 발견했을 때는 무척 반가웠다. 전시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데 기뻤으나 여전히 흥미롭고 독특한 영화들이 설 자리는 많이 없는 듯해 아쉬움이 커졌고, 이 아쉬움을 아쉬움으로만 남기지 않고 관심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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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OR" 섹션의 마지막 구간은 패션을 미술 작품처럼 전시해둔 공간이었다. 마네킹에 옷을 입혀놓은 모습을 보거나 모델이 옷을 입은 것을 보고 핏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안에 펼쳐 놓으니 디자이너의 철학이 보이는 듯했다. 원단과 디자인을 구석구석 확인하는 일은 굉장히 신선했다. 보통 옷을 한 번 구입하면 이렇게까지 구석구석 살펴보지 않는데 집에 가서 옷을 펼쳐 놓고 찬찬히 살펴 보면 이렇게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패션은 자기표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 수많은 브랜드 중 일부를 택해 자신의 삶에서 함께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조용히,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구간을 지나오며 깊어진 생각을 가지고 "CUSTOMER" 구간에 들어섰다. 취향의 소장을 돕는다는 이 구간에서는 전시를 관람한 직후여서 그런지 얕은 유대감을 느꼈다.

 

<울트라백화점 Vol.2> 포스트 서브컬쳐는 서브컬쳐를 소비하는 일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선택을 내리고 이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참여형 전시이기 때문에 여타 전시에 비해 자신의 안으로 침잠해 고민하는 시간도 길었던 편이었다. 서브컬쳐의 열렬한 팬이 아니더라도 천천히 전시를 관람하며 자신만의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경로를 추적해보는 경험은, 결국 소비로 자신을 설명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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