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에 뿌리 내리는 법 - 낮과 달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는 법은 비슷하다
글 입력 2022.10.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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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사랑은 참 이야기하기 좋은 주제다. 사랑의 끝에는 상실이 있고 상실의 끝에는 또 다른 사랑이 오니까. 식상하다면 식상한 주제인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영화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 한정으로 극적인 설정은 불호.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살던 곳을 벗어나 제주도로 내려간다는 설정은 내 기준 충분히 극적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된 것은 사실이다. 전반부의 우울한 분위기도 걱정스러웠다. 후반부로 유쾌한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운 움직임들이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뒷모습을 보는 사랑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사랑의 결말은 어떨까. 이 영화처럼 늘 누군가의 죽음으로까지 치닫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 모두에게 비극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는 이미 죽어버린 경치의 이야기보다는 민희의 감정과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조문객을 받는 민희의 모습도, 유품을 그러안고 우는 모습도 없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늘 민희를 불안하게 하고 다급하게 만들어 놓은 남편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이 영화가 시작했다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기 낳자는 이야기는 피하고, 싸울 때면 집을 나가버리고. 이럴 거면 나랑 결혼은 왜 한 거지. 날 사랑하긴 하나. 상대를 몰아세우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되면 울고 싶어진다. 나라도 민희처럼 굴 수밖에 없을 텐데. 애정의 방법부터가 잘못된 거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민희는 우는 대신 남편의 유언 같은 말을 따른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함께 살자. 민희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거기서 남편의 첫사랑, 목하를 만난다.


일이 안 풀려도 유분수지. 낯선 곳에 와서 새 일상을 좀 꾸려보려고 했더니 한번 꼬인 실타래는 영영 풀지 못하나 봐. 섬사람들이 하는 행색이 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 알고 보니 마음을 좀 열어보려던 요가강사는 남편의 첫사랑이고, 그 첫사랑이라는 사람의 아들이 남편과 너무도 닮았다. 민희씨가 조금 나아지면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하는 남편의 친구도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그렇게 민희는 화를 내기 시작한다. 민희는 계속해서 화가 나 있었다. 그렇게 죽어버린 남편에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감정에, 하필 앞에 나타나버린 첫사랑에. 아니, 차라리 잘 됐다. 화풀이 대상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참는 것도 웃기다.

 

민희는 모든 것을 목하에게 풀기 시작한다. ‘복수’를 해야겠단다. 그 복수는 상당히 어설프고 귀여운 수준이다. 목하가 아끼는 나무와 꽃밭을 전기톱으로 베어버리는 때는 굽 있는 부츠를 신고 가고, 논리라곤 하나도 없는 생떼로 듣는 사람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그의 아들에게는 무작정 잘해주는 것이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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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떠나버린 사랑



그리고 그 마지막 복수는 꽤 효과가 있다. 민희는 태경이 남편이 남긴 마지막 유품이라며 태경의 ‘지분’을 요구하는데, 민희의 되바라진 행동들을 다 눈감아주던 목하가 여기서 폭발한다.


당신은 다 가졌잖아요. 난 하나도 없는데.


라는 민희의 새된 소리에.


내 아들이야. 내가 낳아서 내가 20년간 키운 내 아들이라고.


묵직하게 고함을 친다. 두 개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부딪힌다. 곧이어 내가 이기면 한 대만 때리자며 팔씨름을 청하는 목하의 엉뚱함에 잠깐 웃음이 터졌다. 목소리만큼 팽팽하게 부딪히는 팔씨름에 침을 삼키며 나는 누구를 응원하고 싶은가, 망설였다.

 

영화는 미혼모가 아닌 ‘비혼모’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짚으며, 목하의 입장을 정리한다. 목하는 결혼을 하지 않고 태경을 낳았다. 목하는 경치를 사랑했겠지만, 제주도에 남기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목하에게 경치는 낮에 뜨는 달이 됐다. 떠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밤에는 돌아오듯 언젠가는 한 번씩 돌아오는 사람.


민희는 목하에게 다 가졌다고 이야기했지만, 목하가 무엇을 정말로 갖고 싶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목하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장례식도 가지 못했고, 태경에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도 못했다. 경치의 부모님이 알면 태경마저 빼앗길 것 같았다는, 누구한테도 하지 못한 속 얘기를 아들 아빠의 사별한 처에게 털어놓는 모습이 끝까지 마음에 걸렸다.

 

웃을 수 있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그리고서는 난 이제 가진 것이 없으니 네가 가진 것을 나눠서 갖자는 첫사랑의 아내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말을 위로로 건네기까지의 시간이 더 궁금해졌다. 속이 어지러울 때마다 펴놓는 요가 책을 보면 요가는 싫어한다는 초반 목하의 말은 맞는 듯하다. 치료약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을 들여본다는 것이 내가 아프다는 증거인데. 목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의 나무 자세를 했을까.


영화는 딱히 누군가를 두둔하지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관객이 느끼는 그대로 흘러간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꽤 여러 가지인 것 같지만 나는 하나를 기억하기로 했다. 마음이 정처 없이 흔들릴 때면 심호흡을 크게, 인생이 흔들릴 것 같으면 나무 자세를. 한 다리는 땅을 딛고, 한 다리는 접어 버팀 다리의 옆에 붙인 후 팔을 곧게 편다. 가지를 하늘로 뻗듯 균형을 잡으며 팔을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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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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