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검은 페인트 흔적이 있는 '나카무라 쿠로'이자 '막산'은 조선 까마귀라고도 불린다. 그는 도쿄 대학 한 귀퉁이에서 정원을 만들고 튤립을 기르는 일을 한다. 그는 그곳에서 매일 '쥬리프'를 기다린다. 쥬리프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야마토와 어머니 에리코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쥬리프가 쿠로를 집으로 초대하고, 쿠로는 튤립 화분을 들고 삼나무로 만든 고풍스러운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쿠로를 마주한 아버지 야마토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게 된다.
연극 <튤립>은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며, <왕서개 이야기> <수정의 밤> 등을 집필한 '김도영' 작가와 <키리에> <헤다 가블러>등을 연출한 '전인철' 연출가가 만나 극단 돌파구를 통해 무대를 올렸다.
이 극은 1920년대 도쿄의 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전쟁으로 인한 삶과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극에서 총성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 에리코가 가정부 미호를 부르는 소리, 아버지 야마토와 쿠로가 서로에게 쏘아대는 말들이 총보다 날카롭게 온몸에 꽂힌다. 김도영 작가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그로 인한 인물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개인의 흔들림'에 대해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극의 배경인 1920년대는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화 통지, 민족 분열 통치'가 강화되던 시기이며, 동시에 조선의 항일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확산된 시기이다. 아버지 야마토가 일하는 ‘동양 척식회사'는 1908년 일본이 조선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1917년 경성(서울)에서 도쿄로 본점이 이전되었다.
처음 무대를 보자마자 네모나게 각져있는 검은색 틀에 압도되고 만다. 관객을 향해있는 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이 무대 조명에 반짝일 정도로 검게 칠해져있는 모습이 누군가 비현실적으로 짜놓은 바둑판 같아 보였다. 쥬리프의 어머니 에리코는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있지만 극 초반엔 검은 레이스로 짜인 숄을 두르고 있고, 극 후반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된 외투를 입고 있다. 시대와 함께 이름을 잃어버린 막산, 쿠로는 얼굴에 검은 페인트 흔적으로 뒤덮여져 있다. 별명이 ‘조선 까마귀’인 그는 얼굴뿐만 아니라, 상하의의 옷도 모두 검은 재가 묻은 듯 뒤덮여있다. 그는 세상 어딘가에 ‘검은 튤립’이 있다고 말하는 쥬리프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자신이 키우는 튤립 한송이에 검은 페인트칠을 할 정도로 쥬리프를 믿고 있다. 쿠로가 쥐고 있는 검은 튤립이 어쩐지 자신의 모습처럼 보인다.
연극 <튤립>에선 ‘검은색’이 시대상을 반영한 색처럼 느껴진다. 쿠로의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는 러일전쟁 때 짐꾼으로 일하며 군인들이 얼굴을 칠하고, 이름까지 막산이 아닌 쿠로로 바꾸었지만 별명이 조선 까마귀 인 점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본국을 지우진 못했다. 또한 그가 들고 있던 검은 튤립도 억지로 꽃잎을 칠한 상태이고, 쥬리프의 말에 따르면 소설에나 나오는 꽃이라고 한 것을 보아 조선인인 쿠로가 일본인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검은색은 흔히 죽음의 색이라고도 말한다. 현대 장례 문화에서도 검은 상복을 입곤 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서양식 장례 문화를 도입시킨 이유이다. 본래 우리나라의 상복은 검소함과 슬픔을 상징하는 흰색 소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에는 흰색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일본인이 되기 위해 ‘내선일체’의 꿈을 꾸는 야마토이다. 그는 군인으로 복무하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본점에서 일하고 있고, 일본인 아내도 두었지만 둘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닌 듯하다. 그가 자신의 ‘심연’이라고 칭하는 정원에는 일본의 토종 나무인 ‘삼나무’가 크게 심어져 있고 그의 집엔 일본 황실의 권위를 뜻하는 흰 국화가 가득 피어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인해 죽어버린 시대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모습이 색으로 대비되게 연출했다는 점이 이 극을 이끌어가는 묵직한 무게감으로 느껴진다.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세트장에서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도 인상 깊게 남는다. 조명 가까이 배우가 위치하여 무대 정면으로 보이는 뒷배경에 크게 그림자가 맺혀 인물의 극에 치닫는 심리를 더욱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무래도 쿠로가 에리코가 준 차를 마시고 괴로워하는 장면인데, 구부정한 자세로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는 쿠로의 그림자가 뒤에 앉아있는 야마토와 에리코의 얼굴에 묻으며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신의 이름도, 마음도 속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던 쿠로의 괴로움이 투명한 검은 그림자로 남아 눈을 감으면 잔상이 계속 생각나는 것이 이 극을 관통하는 슬픔과 비극처럼 느껴졌다. 또 배우들이 자신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점도 인상 깊었는데 마치 어디서든 소식을 듣고 오는 가정부 미호처럼 결국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듯한 초연한 표정이 극의 시대상을 더욱 날것으로 나타내고 있는 듯했다.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고백’이지만 색깔별로 그 의미가 다르다. 쿠로가 쥬리프의 집에 선물로 준 분홍 튤립은 행복과 배려, 그가 들고 있던 검은 튤립은 영원한 사랑과 신비로움을 뜻한다. 쥬리프는 쿠로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쿠로는 끝내 쥬르피를 위해 에리코가 건넨 차를 순순히 마신다. 에리코는 집에 꽃을 들일 때 꽃을 꺾어 물이 담긴 화병에 장식하지만 쿠로는 흙이 담긴 화분 채로 쥬리프에게 선물한다. ‘구근을 키우는 식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튤립은 땅속에 있는 알 뿌리에 양분을 저장했다가 다시 싹을 틔운다. 쿠로가 쥬리프에게 선물한 것은 단순한 튤립이 아닌 영원히 시들지 않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애가 곧 와”라고 웃으며 쥬리프를 기다리던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그 애는 꼭 내게로 와”가 아니었을까. 봄이 되면 그의 고향에 가득 핀다는 튤립, 사랑하는 이를 위해 구근이 되어 봄을 선물하는 쿠로의 마음이 오래도록 싹을 띄워 낼 희망 같아 더욱 마음이 아려지는 연극. 튤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