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때 무거운 주제를 연극으로 풀어낼 거라는 생각에 내가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생명, 생산, 윤리라는 단어를 듣고 어떻게 잘 풀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친구와 집중해서 연극을 봤다. 인물 각자가 가진 가치관을 집중해서 본다면 '나는 과연 어떤 인물에 속해있을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1) 두만 - 양계장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두만은 손녀와 아들을 위해 닭을 잡으려고 한다. 손녀의 날선 말에도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인물이다. 두만은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 배를 굶는 시절을 살아낸 사람이기 때문에 음식을 '선택'하는 아들의 신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현재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었다면 음식을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두만에게 양계장은 자신의 삶, 아들을 키울 수 있게 만들어준 일이다.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생업인데 윤리와 생명에 초점을 둔다면 그는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생업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보단 생업을 선택한 두만의 생각에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2) 제원 - 아빠의 영향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할아버지에게 당차게 말을 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고기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제원이가 변덕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원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제원은 10대의 어린아이다. 언제든 생각이 변할 수 있고 제원이의 생각이 실제로 자기가 원해서 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족의 영향으로 내 가치관에 맞지 않음에도 그 가치관이 맞는 것 마냥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 역시도 내가 따르는 어른의 가치관이 나와 다르더라도 그것이 옳다고 믿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재원이를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청소년기에 친구들에게 다름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창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 아빠가 이 아이를 존중할 순 없었을까?
3) 흑이 - 흑이는 자기의 신념을 굳세게 지키는 인물이다. 과거 도축업에 종사했던 일들에 대한 죄책감도 강하고 현재 윤리적 농업에 대한 생각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사실 나는 그의 모습이 고집스럽게 느껴졌다. 도축업을 했던 영상이 그의 현재 윤리적인 농업에 지장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꼭 올려야 헸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현재 자기가 추구하는 농업에 더욱 집중했으면 그가 생각하는 농업에 더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강한 의견과 신념을 가진 사람보단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흑이는 도축업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강한 가치관을 가진 인물을 대표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실제로 만났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하게 되는 인물이었다.
4) 도원 - 이 공연에서 모든 인물들은 다 솔직하다. 도원 역시 엄청 솔직한 사람이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흑이의 가치관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현실적이지만 나라면 상대방에게 나의 생각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았을 거라서 나와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5) 구준 - 귀농을 꿈꾸고 진짜 이 일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관심을 갖는 일에 열정적인 모습이 딱 이 시대의 청년 농부 같았다. 흑이의 농업 상황이 더 안 좋아질까 봐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한 다섯 명의 인물들의 가치관을 보는 재미가 있던 연극이었다. 누구 한 명 틀린 사람은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만 있었을 뿐이다. 다섯 명의 시각에서 각자의 가치관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연극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조금 불편할지라도 흑이가 추구하는 농업이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런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서 자연에게 우리가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농업을 해야 옳은 방향일까? 정답을 내리기에 참 어렵다.
연극을 보고 생각해 볼수록 정답이 없는 이 주제에서 무엇이 옳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의 신념을 존중할 수 있고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작지만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에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