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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당 포스터(제공 프로덕션IDA).jpg

 

 

빵은 간단하게 먹을 수도 있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도 있다. 우울할 때, 기쁘거나 행복할 때도 찾는 만능 음식이다.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은 그런 빵을 닮은 연극이다. 따뜻한 위로와 소리 내어 웃게 되는 유머로 160분을 가득 채운 이야기다.

 

 

 

1. 갓 구운 빵을 닮은 위로


 

여러 인물을 통해 다양한 위로를 선사한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사람, 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할 수 없는 사람, 본인의 재능을 찾지 못한 사람.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동백당’을 되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여 서로 다투고 화해하며 성장해 가는 인물을 통해 관객들은 위로받는다.


미워할 수 있는 게 사라진다는 것, 거울 속에 있는 걸 미워하게 되고 내 적이 내 정체성을 부여해 준다는 게 분하다. 산은 그렇게 말했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기에 펜을 들었다고 했던 산은 해방 이후 그의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다들 알잖아요. 빼앗긴다는 게 뭔지.’ 여전히 빼앗겼던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깟 거에 매달린다고 세상이 봐줄 것 같아? 세상은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아.’

 

결국 산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해방 이전, 나라를 빼앗긴 청년은 펜을 들고 되돌려 놓고자 노력했으나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매달린다고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산은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 시간 속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포기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 와서라고는 무엇이 다른가. 여전히 많은 청년은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꿈을 접고, 출발선이 달라 기회를 빼앗기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다 옛말이라고 하는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기회를 쟁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으로서 산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보답 받을 수 없는 세상이다. 한 사람이 바꾸기엔 세상은 지나치게 거대하다. 산의 대사는 그런 거대함 앞에서 느끼는 버거움과 막막함을 위로한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혼자만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빼앗긴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잖아요.’

 

산의 말에 솔이 내뱉은 답변이다. 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들리는 대사는 포기를 결심한 청년의 마음을 녹인다.


‘비가 오길 바라면 우산을 사야지요. 비가 오길 믿으면 우산을 써야지요. 우리는 반죽을 할 거예요.’

 

사람들이 빵을 산다고 믿는다면 반죽을 해야 한다. 언젠가 세상이 바뀔 것이라 믿는다면 노력해야 한다. 산의 대사가 버거움과 막막함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위로한다면, 솔의 대사를 통해 버거움 그 자체를 떨쳐낼 힘을 전하고 있다. 마침내 청년은 유소년의 순수함과 열정을 회복한 듯 포기보단 꿈을 택하게 된다.

 

 

 

2. 새로움이 선사하는 몰입감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은 새로운 형식을 택했다. 작품이 상연되는 공연장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프로시니엄 무대로, 관객들이 흔히 보는 형태의 극장이다. 하지만 본 공연에서는 기존 객석을 사용하지 않고 무대 위에 객석을 마련했다. 별도로 설치된 객석인 탓에 편안하지는 않았으나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진행이었다.


관객은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설명해도 작품 속에 이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객석은 프로시니엄 무대 위에 자리했기 때문에 기존의 객석을 지나쳐 무대 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액자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렇게 관객과 작품은 가까워진다.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에는 두 번의 시식회가 등장하는데, 관객은 그것을 모두 직접 경험하게 된다. 동백당의 사람들은 치즈케이크와 솔빵을 동네 사람들,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후 작은 조각 치즈케이크와 솔빵을 배우들이 직접 관객에게 전달한다. 배우들이 객석에 올라오며 무대를 넘어선 순간 작품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관객은 작품 속 인물이 된다. 동백당의 빵을 시식해 보는 동네 주민 중 한 명이 되어 빵을 맛보고 평하며 함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객은 극도의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동백당이 존재하는 공간에 놓여 있다는 느낌, 실제 빵을 통해 자극되는 오감, 그것이 한데 모여 깊은 몰입감과 감정을 체감하게 한다.

 

해방 이후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지만 본질은 인간의 꿈과 희망,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하고 따뜻한 빵을 닮은 연극,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이 전하는 '만능 위로'를 경험해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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