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도, '섹스 앤더 시티'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04.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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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섹스 앤더 시티>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비판해보았다. 내가 드라마를 그렇게 열심히 비판한 것은, 누구보다도 <섹스 앤더 시티>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섹스 앤더 시티>를 둘러싼 많은 비판과 논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머니 세대에 방영하던 드라마가 내게도 여전히 먹힌다는게 그 증거다.


나는 드라마, 영화, 애니, 도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장르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하는 사람이며, 그런 콘텐츠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왔다. 그 수많은 콘텐츠의 등장인물들은 내 가슴 속에 살아 숨쉬며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섹스 앤더 시티 또한 나를 구성하는 드라마 중 하나다. 몇 가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바탕으로 내가 <섹스 앤더 시티>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

본 글은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와

영화 <섹스 앤더 시티> 1,2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I’m Carrie. I’m a writer."



이렇게 말하는 캐리가 왜 그리 멋있어 보이던지!

 

<섹스 앤더 시티>는 주인공 캐리가 쓰는 칼럼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이다. 아니면 사건을 바탕으로 칼럼이 진행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매력적인 진행방식을 가진 드라마이다.


전 시즌 내내 캐리는 책상에 앉아서, 침대에 엎드려서 노트북을 두드린다. 캐리는 내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것을 선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다시 말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하게 된 것도 그녀의 영향이었으며, 그래서 에디터가 된다면 꼭 섹스 앤더 시티에 대해 쓰고 싶었다. 지금 그 소원을 이루고 있으니 그녀에게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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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캐리의 경우에는 섹스와 연애) 내 의견을 글로 풀어내고, 그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며 사랑받는 일은 꽤 멋지다는 걸 그녀를 보며 느꼈다. 나는 모든 것이 담긴 노트북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도, 마감에 쫓기는 것 마저도 동경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쫓길 마감이 있다는 걸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우리 이런 것들도 이야기 할 줄 알아야 해”



<섹스 앤더 시티>는 제목이 말해주듯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네 여성의 자유로운 성생활과 연애를 담고 있는 드라마이다. 그 주제를 펼쳐내는 네 친구의 토요일 브런치에서의 대화만큼이나 나는 이 장면이 <섹스 앤더 시티>의 핵심을 담고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시즌6에서 캐리는 잭 버거라는 작가와 연애를 하게 된다. 둘은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시즌 6 에피소드2의 제목처럼 그들의 첫 잠자리에 대한 큰 기대를 가졌으나, 생각보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실망하게 된다.

 

 

“다른 데서는 다 좋았어. 식당에서도 즐겁게 떠들고 키스도 끝내줬는데 침대에서는 전율이 일지 않더라” - 캐리의 대사

 

 

처음이라 그랬겠지, 하고 넘어간 후 두 번째에도 같은 경험을 하고, 세 번째에도 잘 되지 않자 버거가 먼저 말문을 연다.

 

 

“자랑하려는 건 아닌데 원래는 훨씬 나아. 잘한다고 칭찬도 받아봤고.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 버거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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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침대에 마주 앉아 더 나은 섹스를 위한 대화를 나눈다. 바로 이런 장면에서 <섹스 앤더 시티>는 그 가치를 갖는다. 섹스에 대해 브런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연인과 더 나은 섹스를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런 장면들이 방영 당시 한국의 "유교걸"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충격은 우리가 그만큼 섹스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대가 변하며 우리도 조금씩 더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하게 됐지만, 여전히 연인관계에서는 쉽지 않은 듯하다.

 

우리는 이런 것들도 이야기 할 줄 알아야 한다. 남성은 자신감이나 자존심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기가 부끄럽고 어색해서 이야기 하기를 꺼리곤 한다. 그러나 나를 위해, 상대를 위해, 더 즐겁고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위해, 나아가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해 이런 것들도 이야기 할 줄 알아야 함을 이 드라마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네 명의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여성 서사



<섹스 앤더 시티>는 연애를 주로 다루면서도 여성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담아낸 흔치 않은 드라마다. 네 명의 캐릭터는 직업과 배경은 물론 성격과 성향에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그들의 각기 다른 생활방식과 연애방식을 지켜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진정한 묘미이다. 드라마를 보며 샬럿은 누구 같고, 미란다는 누구 같네, 하며 내 주변의 친구들을 그들에게 대입해 보기도 하고, 나는 네 명 중 누구와 가장 닮았나 빗대어보기도 했다. 나를 딱 어떤 한 명에게 이입하기가 힘들 정도로 네 명의 캐릭터는 입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 나는 때로는 캐리를, 때로는 샬럿을, 미란다를, 사만다를 닮고 싶었다. 캐리의 글 쓰는 재치를 닮고 싶었고, 샬럿의 사랑스러움과 성실함을 닮고 싶었고, 미란다의 지성과 현실적인 감각을 닮고 싶었으며, 사만다의 당당함을 닮고 싶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나아가는 그들의 커리어를 닮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이런 닮고 싶은 여성이 더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

 

*


내가 사랑하는 두가지 장면이 더 있다. 사만다는 가발을 쓰고 항암치료로 인한 열감으로 힘들어하는 상태로 유방암을 위한 자선행사에서 동기부여를 위한 연설을 하게된다. 그녀는 대본에 쓰인대로의 연설문을 읽다가 결국 에라, 모르겠다 라며 가발을 집어던진다. 그런 그녀와 그녀를 향해 함께 가발을 벗어던지며 환호하던 여성들의 모습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하나는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정신이 팔린 남자친구에게 방치된 캐리가 가방에 난 구멍에서 자신이 아끼던 "캐리" 목걸이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장면이다.


두 장면을 사랑하는 이유는 사만다와 캐리가, 가장 그들 자신다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발을 벗어던지고, 내가 나다울 수 없게 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 나 자신을 찾는 모습. 결국 나 자신일 때 가장 빛나는 주인공들을 사랑한다.

 

 


"Carrie, I love you. Come on." (캐리, 널 사랑해서 하는 소리야.)



시즌6에서 캐리는 러시아인 예술가인 페트롭스키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그의 권유에 따라 파리로 가고자 결심하게 된다. 뉴욕에서 20여 년간 살아왔던 집과 오랜 친구들, 그리고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직업인 칼럼마저 그만두며 언어도 통하지 않는 파리로 떠나는 캐리를, 세 친구 중 미란다가 가장 강하게 만류한다.

 

 

”미안한데 왜 네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거길 가려는 건지 모르겠어“ (시즌 6 18화, 미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삶을 보내고자 하는 자신을 왜 축하해주지 못하냐고 캐리가 화를 내며 자리를 뜨려 하자, 미란다는 널 사랑해서 하는 소리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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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는 그런 친구다. 네 명 중 가장 현실적이고, 비판적이며, 냉소적인 사람이다. 그녀의 ”팩트폭력“은 친구들에게 종종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그 때문에 다투기도 하지만, 종래에는 결국 미란다가 옳았음과,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 한 말이었음을 깨닫곤 한다. 미란다는 누구보다 친구들이 될 수 있으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친구에게서 좋지 못한 반응이 나올거라는걸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꼭 한 마디를 붙이고야 마는 멋진 친구다. 그런 진심을 알아채주는 친구도. 멋진 관계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그들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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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거다. 많은 여성들이 <섹스 앤더 시티>를 사랑하는 이유는 결국 이것이다. 어떤 남자를 만나든 그리고 또 헤어지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든, 끈끈하게 이어지는 여자들간의 우정. <섹스 앤더 시티>를 보며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그들의 명품가방과 신발도, 화려한 파티도, 돈 많은 남편도 아니라, 이 넷의 관계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셋이나 찾았으니 충분히 운이 좋았다." (시즌3 12화, 캐리)

 

 

이들은 서로를 "honey"나 "sweetie"라고 부른다. 누군가가 내 친구를 욕하면 발벗고 나서 싸워주고, 내 친구에게 상처준 남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며, 큰소리로 싸우고나서도 서로의 입장에서 돌아보고 화해하며, 친구의 결혼, 친구 엄마의 장례식, 친구의 출산.. 그야말로 기쁠때나 슬플때나 함께하는 이들을 보며 가장 짜릿했고 행복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된다. 일 때문에, 거리 때문에, 때로는 연애 때문에 친구와 멀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겪고도 내 곁에 남아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엄청난 행운이다.

 

내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 아직까지 우리는 크게 소리치며 싸워본 적은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 떨 수 있는 그런 친구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린 그런 친구임을 믿는다.  <섹스 앤더 시티>의 네 친구들처럼, 50살 생일케이크도 함께 불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어서 <섹스 앤더 시티>에 대한 글을 썼다. 친구들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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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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