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껏 작품과 놀이하십시오 - 장 줄리앙 회고전

긍정과 귀여움의 힘을 믿게 된 전시
글 입력 2022.11.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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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적 있는 귀여운 그림체, 세계적인 그래픽 아티스트 장 줄리앙이 한국 서울 DDP에서 인생 첫 회고전을 연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만큼 DDP 전시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전시장에 입장하면 커다란 주황색 벽에 그려진 동그란 눈에 큰 코의 누누가 반겨준다. 가장 유명한 그의 그림 앞에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준비되어 있다.

 

 

 

100권의 스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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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존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100권의 스케치북이 전시돼있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장 줄리앙이 기록한 100권의 일기장을 볼 수 있다. 그는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기록한다고 한다. 이 스케치북에선 무려 스무 살 초반의 줄리앙부터 30대 후반 지금의 줄리앙까지 기록하고 있다. 그가 기록한 일상은 작품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장 줄리앙의 학교 선생님은 아이디어를 저장하려면 기록하라고 조언하셨다. 그 이후 줄리앙은 그림으로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스케치북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의 일상을 그리던 일기였기에 사소한 일들과, 사적인 일들도 많이 담기게 되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떤 장면을 펼칠까 줄리앙은 심사숙고하며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림은 글보다 훨씬 더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배경이나 인물의 표정에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줄리앙이 느낀 일상의 영감들과 개성이 듬뿍 담긴 그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작품 - 일렬로 쭉 전시해둔 일기장 위의 벽에는 빼곡한 글과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가만 보니 일기에 나오는 인물들과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많은 내용들을 프린팅 했을까 생각했지만,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의 화면을 보니 모두 장 줄리앙이 펜을 들고 하나하나 그리고 있었다. 벽에 있던 이 모든 것들은 줄리앙은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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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작품 설명이나 벽에 그림을 하나하나 그린 것, 바닥에 "작품 안내선을 지켜주세요"를 하나하나 직접 쓴 것을 보곤 전시에 대한 줄리앙의 진심이 느껴졌다. 거의 처음 느껴보는 아티스트의 전시에 대한 정성과 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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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아티스트들은 준비한 작품을 전시장에 전시하는 것에 그칠 뿐 공간 안에서 그들의 생생한 흔적은 보기 힘들었는데, 줄리앙은 자신의 흔적을 마음껏 전시장에 남겼다. 그가 준비한 것들이 눈에 보이자 관람객인 나도 소중한 전시를 보는 느낌이 들어 공간의 모든 것을 애정 있게 하나하나 보게 되었다. 

 

그림은 곧 놀이하는 것 - 줄리앙은 점점 자신의 바운더리를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힘들지는 않았는지 도슨트가 물어보았는데, "놀이하다 보니까 전시까지 하게 됐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에게 일과 작업은 늘 놀이였다. 즐기면서 했기에 긍정적인 메시지와 밝은 에너지가 담긴 것 같다.

 

그의 동생 또한 아티스트다. 음악과 영상을 하는 예술가다. 이 둘은 어릴 적부터 함께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 예술로 놀이를 했다고 한다.  이 둘은 커서 예술가가 되었고, 합이 잘 맞는 그림과 영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같이 콜라보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드로잉


 

이 공간에서는 700개의 드로잉 작품을 볼 수 있다. 무려 사면이 모두 그림을 꽉 채워져있다. 원래는 한국에 보여주고 싶은 2000개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중 700개만을 선정해서 전시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드로잉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일까. 드로잉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가 드로잉을 열심히 했던 이유다. 드로잉 중에 꽃과 샴페인이 함께 있는 그림이 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고 축하하는 의미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꽃을 주는 의미와 샴페인을 터트리는 모습을 함께 담은 것도 재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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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이 많은 드로잉을 그려낸 또 다른 이유엔 그의 굉장한 성실함도 한몫한다. 영감의 순간마다 일기를 쓰고 드로잉까지 그렸다. 친구들과 드로잉 모임을 조직하여 학교가 끝나고 꾸준한 드로잉을 하여 2000개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간단한 선으로만 그려놓은 이 드로잉들은 추후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기초가 되었다. 실제로 다음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의 기초작업을 이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 그림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비교하면서 드로잉 작품을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어머니가 반 고흐, 모네 등 클래식에 대한 영향을 줬다면 아버지는 대중문화에 대한 영향을 주었다. 입구 주변에는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 히어로 영웅들이 그려져 있다.

 

그는 종이에 그림을 그렸지만 그래픽 아티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아는 방법을 활용했다. 우선 드로잉을 해서 검은색 선을 따서 컴퓨터로 옮겨,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그래픽 작품을 만들어냈다.

 

 

 

소셜미디어


 

이곳에서는 SNS를 활용하여 했던 작품 활동을 볼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재치 있는 사람인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현 실제로 뉴욕 주의 모양으로 뉴욕의 맛집을 혀로 표현했다.

 

장 줄리앙은 이 전시가 시끄러운 미술관이었으면 하고 바랬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을 보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거나 비판하며 의견을 공유하는 장이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 줄리앙은 활발한 논평이 오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SNS 공간을 탁월한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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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앙에 놓인 구조물에서는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장 줄리앙의 가장 많은 작업은 의인화인 점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종이로 된 작품을 확인할 수 있는데, 평평한 드로잉에 입체감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한다. 그의 단면적인 그림이 3D로 변환된다면 그의 그림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입체감 표현은 종이로 시작한 것이다.

 


 

마음껏 작품과 즐기십시오


 

그의 입체 작업은 패널로까지 이어졌다. 큰 거울이 있는 공간에 그가 그린 캐릭터들이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서있다. 이 공간에 거울을 설치한 이유가 있다. 관람객과 작품을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의 작품의 가격을 알고 있던 기획사 측에서는 원래 각 패널마다 막을 쳐놓으려 했는데, 줄리앙은 그러지 말아 달라고 한다. 작품의 금전적 가치를 위하기보다 관객이 자신의 작품과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예술철학이 드러나는 구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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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한창일 때 프랑스 봉쇄령을 표현해야 하는 잡지 커버 의뢰가 들어왔다. 잡지사는 경각심을 줘야 할지 행복감을 줘야 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편안하고 행복한 표지를 위해 장 줄리앙 작가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그 시기에 나온 다른 표지들에서는 암울하고 무서움 등을 표현하여 어렵지 않게 경각심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줄리앙이 그린 표지는 밝고 예뻤다. 그는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재기 발랄한 작가였다. 또한 간결한 선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작가임에 틀림없었다.

 

 

 

브랜드 누누


 

이쯤에서 궁금하다. 프랑스 작가인 장 줄리앙의 최초의 회고전이 왜 우리나라에서 열렸을까? 누누라는 브랜드부터 알 필요가 있다. 초반 전시실에서 장 줄리앙의 일기장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한국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대학교때 만난 미술친구인 허재영 디렉터다. 그와 많은 작업을 같이 한 사람이다. 그와의 인연은 오랫동안 이어져 함께 누누라는 브랜드를 만들기에 이른다.

 

줄리앙의 아들 이름은 '루'다. 허재영 디렉터의 딸이 '루'를 '누누'라고 부르는 데서 누누 브랜드는 시작되었다. 누누는 프랑스어로 우리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었다. 한국적인 걸 담고 싶었고 한국 탈 모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누누 브랜드뿐만 아니라 줄리앙이 많은 기업과 콜라보한, 이미 단종돼버린 상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영감의 원천, 가족


 

줄리앙은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서프라이즈 공간을 만들었는데, 가족의 모습과 집의 공간으로 꾸며진 곳을 준비한다. 줄리앙은 벽에 선을 하나씩 그려 넣으며 이 공간을 만들었다. 테이블이 노란색인데, 줄리앙은 레스콘이라는 프랑스 마을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노란색 테이블을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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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족들에게 오픈식 날 공간을 공개한다. 가족들은 이 서프라이즈를 보고 덤덤해했다고 한다. 어머님은 우리를 예쁘게 그려주지도 않는다면서 계속 우리를 그린다며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 점이 줄리앙의 그림이 매력이라고 하셨다. 뭐하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줄리앙 그림의 매력이었다.

 

줄리앙은 가족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빨리빨리 변해가고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이 땅에 발붙이게 해주는 게 가족이다.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게 가족은 삶의 원동력이자 작품의 영감이었다. 그래서 줄리앙의 작품들에서는 가족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화로 담은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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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간에서는 자연을 담은 유화그림들이 전시된다. 그래픽디자이너가 유화그림까지 그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과거에도 장 줄리앙은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학생이었다. 영상으로, 종이로, 구조물로, 이제는 유화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이곳의 특징이 있다. 이곳엔 보통의 미술관처럼 캡션이 없다. 불친절한 전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장줄리앙이 다 떼 버렸기 때문이다. 제목도, 설명도 아무것도 없다. 설명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그림만 보고 감상하게 된다. 줄리앙은 이 그림에서는 제목은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본래 줄리앙 그림의 특징은 사람 얼굴이 중심이 되는 그림이었는데, 유화에서는 자연이 주인공이다. 그저 이곳의 그림을 보며 감상을 나누고 자연 그대로를 느끼고 추억을 꺼내보며 자신을 보게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기획 의도다.

 

미술을 분석하려고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림을 보는 의미가 중요하다. 나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전시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작품을 감상하고, 대화를 나누고 나를 알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전시를 즐기는 법이다.

 

장 줄리앙은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좋다고 한다. 그는 해야겠다 생각하면 뒤에 일을 생각 안 하고 일단 한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결과를 생각하는 순간 멈칫하며 손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과정에 집중하여 지금 하는 일을 놀이로 생각하며 즐기고 있었다. <장 줄리앙 회고전 : 지금 여기>를 통해 놀이하는 인간 장 줄리앙처럼 모두가 좋아하는 것으로 놀이하는 하루를 살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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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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