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컬렉터와 예술가,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 - 디어 컬렉터

컬렉터의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미술 이야기
글 입력 2024.01.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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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컬렉터 - 집과 예술, 소통하는 아트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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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가 합의한 결론은, 시각예술의 수많은 목적들 중 지금껏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 이 한 가지를 내가 유독 과소평가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야말로 예술의 본질에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예술은 애초부터 우리 삶의 필수재가 아니었다. 순전한 유희와 본능을 쫓는 행위에서 시작해, 현실이 적시지 못하는 목마름을 해소하는 데까지 확장되며 그 갈래가 다양해졌을 뿐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같았다. 바로 애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원문]

 


지난달, 예술의 상업화를 둘러싼 잡음 너머에서도 찾을 수 있는 희망을 떠올리며 미술시장에 대해 글을 썼다. 미술상품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은 잠깐 내려놓고, 지금껏 내가 미술만의 유희성을 과소평가해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다. 그러자 순전한 애호의 대상으로서의 미술이 다시 보였다. 미술을 항상 가까이하면서도 막연히 거리감을 느꼈던 컬렉팅 문화 역시도 이전보다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 시점에서 시야를 한층 넓히기에 적격인 책을 만났다. 바로  MBC 아나운서이자 미술 전문가, 컬렉터인 김지은이 저술한 책 ‘디어 컬렉터’(2023, 아트북스)였다. 현대미술 컬렉터 21명과 함께 400점이 넘는 작품을 소개하는 책으로, 지난 팬데믹 시기 외부 활동이 가로막히면서 저자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서로 가진 아름다운 것들을 공유하자"고 제안하며 시작됐다. 약 3년간 오고 간 수백 통의 이메일, 수십 통의 전화, 그리고 깊은 대화로 모인 이야기가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집과 예술, 소통하는 아트 컬렉션’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은 예술이 가져다주는 소통의 가능성을 말한다. 컬렉터라 함은 단순한 작품의 구매자가 아니다. ‘수집’에 그치지 않고, ‘발견’과 ‘연결’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선은 작품이 예술가의 또 다른 주체가 되어 존재가치를 획득하는 데에 크게 역할한다. 물론 그 역할은 큐레이터나 관람객의 몫이 될 수도 있지만, 컬렉터의 뉘앙스는 조금 다르다. 전자가 학계나 대중 등의 다수를 대변할 때 컬렉터는 아티스트와 보다 내밀한 일대일의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미술계의 외연 너머의 깊숙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소개한다. 


 

[목차]

 

프롤로그_진정한 소유는 경험의 공유 


1. 최고의 안목 Best Eye

맨해튼 톱 컬렉터─린다 로젠 

한 손에는 법을, 다른 한 손에는 예술을─게일 엘스턴 

작품 빚는 의사─Dr. J 


2. 예술가가 사랑한 예술가 Art Picked by Artist

색깔 있는 예술가 부부─경미와 토드 

우정 수집가─세실 정 

고독은 나의 집─키어와 그레그 

문제적 큐레이터─마르크 훙거뷜러 


3. 일상 미술관 Everyday Museum

치즈 사냥꾼─제니퍼 로페즈 

옥탑방 펜트하우스─마티아스 셰퍼 

집 짓는 컬렉터─장윤규 

친구 집이 내 집─박철희 

안목으로 빚은 공간─아트 디렉터 Y 


4 . 시간의 예술 Time mix & match

브라운스톤 하우스─제니 샐러먼 

시간 채집가─김나경 

아방가르드 한옥지기─Mr.김 

수집 DNA─마르틴 말름포르스 


5. 여행하는 컬렉터 Traveling Collector

오직 한 작품─데이비드 프란첸 

컬렉팅의 메시─이그나시오 리프란디 

사지 않는 컬렉터─수잔네 앙거홀처 

뉴스 수집가─이정민 

빅 레드 빅 래리─래리와 캐럴 


작품 정보 & 이미지 크레디트

 

 


예술가와 컬렉터의 특별한 관계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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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예술가와 컬렉터의 특별한 관계맺기를 보여주는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해 보려 한다. 먼저 LA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신경미와 토드 부부의 이야기다.


 

“우리의 첫 컬렉션은 앞서 말씀드렸던 브레나 영블러드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만든 초기 작품이었거든요. 그로부터 세월이 꽤 많이 흐른 후에 아트페어에서 남편의 작품이 팔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느덧 유명 작가가 된 영블러드가 구입한 것이었어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그후에도 영블러드는 토드의 작품을 꾸준히 소장했는데 몇 년 후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그녀가 컬렉션을 내놨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작품들을 되사기로 마음먹었답니다. 토드의 시리즈 중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었거든요. 작가 손을 떠나 사랑하는 제자를 거쳐 다시 우리 품에 돌아온 작품이라 각별해요.”

 

색깔 있는 예술가 부부─경미와 토드,  p.117

 

 

이들 부부 또한 예술가이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에피소드다. 서로의 작품을 소장하고, 이를 매개로 상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일반적인 컬렉터라면 겪기 드문 경험이다. 내가 컬렉팅한 작가가 내 작품의 컬렉터가 되고, 또 한동안 내 손을 떠났던 작품을 다시 되찾는 경험이라니. 제자의 작품,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향한 애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단락이다. 이들 부부가 지닌 컬렉터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면모 역시도 엿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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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작가와의 인간적인 교류가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는가 하면, 작품 자체를 향한 깊이 있는 감상과 해석이 감명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바로 댈러스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 키어 탄책과 그녀의 남편, 그레그 선마크의 인터뷰다. 이들의 거실 벽에 걸린 마이크 에릭슨의 그림에 대해 부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 프레임 장치를 그림의 프레임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야. 가장자리를 유심히 보면 프레임이 그려진 게 보일 거야. 그 때문에 마치 영화 필름처럼 보이거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창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지. 그렇게 들여다본 텐트에는 또 동그란 문이 하나 나 있어. 자연스럽게 텐트 속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또하나의 창이야. 관람자들은 두 개의 창을 통해 텐트가 쳐진 외부 공간과 텐트의 내부 공간을 동시에 목격하게 되는 거야. 이중창을 통과한 관람자의 시선이 어떤 장면을 목도할 수밖에 없도록 연루시키는 아주 스마트한 ‘순간 이동 장치’라고 생각해.” 


텐트처럼 스스로 평생 ‘이동’하며 살아왔던 키어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집의 의미와 집이 주는 안정감에 대해, 외부와 내부의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거기 살고 있을 사람과 그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고독은 나의 집─키어와 그레그, p.195

 

 

이들 부부가 처음 작가를 만났을 때, 에릭슨은 갤러리 한 층에 그림에 묘사된 텐트를 치고 스튜디오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텐트를 보고 공간의 구분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한 이유는 뭘까. 키어는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 다양한 나라에서 거주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며, 어떤 도시에도 애착이나 유대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집이란 무엇인지 헤아린 끝에, 이들이 내린 결론은 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작가의 그림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고, 그림을 다시 한 번 자신의 삶 안쪽으로 포함시킨다. 컬렉팅의 본의미, 그야말로 일상의 예술화와 예술의 일상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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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할 컬렉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문화정책 부시장, 이그나시오 리프란디다. 그는 컬렉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경험했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겁내지 않아. 축구, 음악, 여행, 현대미술 모두 나에게는 ‘엔투지아즘’ 즉 ‘열정’의 동의어들이야. 작품 수집만 해도 그래. 시작은 여느 집이랑 비슷했어. 신혼이었고 빈 벽이 있었고 아름답게 집을 ‘꾸미고’ 싶어서 그림을 사기 시작했고 금방 20여 점을 모았지.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놀러왔던 미술 전문가가 한마디하더라. ‘다 쓰레기’라고. 하하. 보통 이런 평가를 듣게 되면 마음에 상처받고 수집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나는 더 파고들었어. 직접 작가를 만나는 것도 크게 선호하진 않아. 작가보다는 창작물인 작품이 더 넓은 세계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미술관이나 갤러리들을 자주 갔던 게 도움이 많이 됐어. 갤러리에 가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많은 걸 물어봤어. 그러다보니 작품을 이해하는 법도 배우게 되고 내 취향도 발견하게 되더라고.”

 

컬렉팅의 메시─이그나시오 리프란디, pp.463-465

 

 

흔히 아트 컬렉팅의 목적이 재테크나 자기과시로 기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좋은' 컬렉션으로 이름을 알린 컬렉터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작가의 상승세나 투자가치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목을 최우선으로 따진다고 말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컬렉터의 컬렉션 안에 편입되는 순간, 이전과는 또 다른 맥락을 부여받게 된다. 컬렉터에게는 이 특권을 온전히 누리는 자세 역시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자신의 취향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 누가 어떻게 평가하던,  작품의 새 주인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색다른 시각과 해석으로 접근하는 태도 말이다. 이그나시오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뚝심 있는 컬렉터의 모습을 톡톡히 찾아볼 수 있다.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



책을 읽다 보니 컬렉팅이란 예술가의 삶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이 표현에 공감이 간다.  '디어 컬렉터'는 미술서적의 카테고리에 속하겠지만, 결국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그저 예술을 표면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지면 위에서 살아 숨쉬는 컬렉터들의 이야기 속에는 작품이라는 연결고리로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컬렉터의 행동은 예술가의 삶에 개입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마찬가지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다시금 컬렉터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오직 예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인의 삶이 서로로 인해 활력을 얻는 마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들에게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곧 삶에 대한 이야기다. 예술을 매개로 삶의 방식이 변화하고, 새로운 인연이 맞닿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마주한다. 다시금 돌아보니 이 책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책 같다. 바로 '미술은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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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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