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냥 사랑할 수는 없는 드라마 [드라마/예능]

미드애호가의 <섹스 앤더 시티> 말하기 上편
글 입력 2022.04.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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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웬만큼 굵직하게 이름난 미드란 미드는 모두 섭렵해왔다. 99년생인 나는 성인이 되어 98년에 방영을 하기 시작한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를 보게 되었다. <섹스 앤더 시티>는 내가 좋아하는 미드 탑텐 안에 드는 드라마이고,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숨듣명”처럼, 약간의 길티 플레져를 느끼게 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처음 이 드라마를 보고 있던 나는 당시 남자친구의 “뭐 봐?”라는 질문에 왠지 얼버무리게 되었다. “섹스”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기에 아직 어렸기도 했음은 차치하고, 이 드라마를 남자가 보지 않았으면 했다. 지금도 이 생각은 같다. 만약 이 드라마를 아직 보지 않은 남성이라면, 이 드라마로 “여자를 배울” 생각은 하지 마시라고 하고 싶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만 심어주기 십상이다.


섹스 앤더 시티는 여성서사인가? 라고 물으면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페미니즘 드라마인가? 라고 묻는다면,, 페미니즘 드라마라고 하긴 어렵다. (<섹스 앤더 시티>는 일부 남성들에게 페미니즘 드라마라며 비난을 받고,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페미니즘 드라마가 아니라고 비판을 받곤 한다.)  섹스 앤더 시티에 대해 짚고 갈 점들은 짚고 가자.




여자의 적은 여자?



혹자는 이 드라마가 여성 네 명의 깊은 우정과 의리를 담고 있기에 “여적여”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이 드라마는 불편할 정도로 여적여 구도를 갖고 있다.

 

 

“누구 하나 결혼하면 우정은 끝이라고. 유부녀에게 미혼녀는 적이야.” (시즌1 에피소드3, 미란다)

 

 

시즌1 3화에서는 캐리가 “기혼자와 미혼자는 냉전 중인 걸까?”라는 주제로 칼럼을 쓰며 극을 끌어나간다. 후반 시즌으로 가면서는 점차 없어지게 되는 구성이지만, 초반에 이 드라마는 캐리가 꺼내는 칼럼의 주제에 대해서 뉴욕 남녀들의 답변들을 몇 개 보여주며 시작된다.

 

 

“내 싱글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까 예전처럼 자주 만나진 않아요. 걔들을 보고 있으면 절박했던 내가 떠올라서요.” - 극 중 기혼 여성

 

“여자는 결혼하면 자기를 잃어버려요. ” - 극 중 미혼 여성

 


이 답변들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기혼여성과 미혼여성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섹스 앤더 시티>는 이 둘을 철저히 갈라놓으며, 적대관계를 형성하게끔 한다.


 

“이 신부는 최근까지 자기 인생이 있었습니다.” - 미란다의 대사

 


특히 이 드라마는 싱글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한 여성을 비꼬곤 한다. 일견 낡은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정착에 얽매이지 않으며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진보적 여성들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선택을 한 여성을 존중하지 않을 필요는 전혀 없다.


또한 네 주인공은 모델이나 몸매를 훤히 드러내는 옷을 입은 여성, 그들보다 젊은 20대 여성을 비난하기도 한다.


 

“모델들은 멍청하고 게을러.”

 

“따분한 화요일 밤을 보내기에 슈퍼모델 씹는 것 만큼 재밌는 건 없다.”

 

“뭔가 멍한 듯 하면서도 섹시하긴 하지”

 

“내가 궁금한 건 대체 언제 남자들이 모여서 가슴 큰 기린만 보고 흥분하기로 언제 결정했냐는 거야.”

 


시즌1 2화에서는 모델들을 좋아하는 남성들을 다루며 주인공들이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넷은 신랄하게 여성 모델들을 깎아내리며, 이성애자 남성 못지않게 그들을 섹스 심볼화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모델을 머리에 든 게 없으며,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로 네 주인공의 입장에서 남성을 “뺏어가는” 여성으로 그려낸다. 그야말로 클리셰적인 여적여 구도이며, 여성 모델들의 한 인간으로서의 주관과 지성, 주체성은 모조리 지워버리고 만다.

 

 

“요즘 20대는 버릇없고 배은망덕해.”

 

“뉴욕에서 싱글인 30대보다 불쌍한 건 싱글인 20대라고.”

 


주인공들은 또한 그들보다 어린 20대 여성은 철이 없고 생각이 없다며 비난하고,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들은 “창녀”라며 수군댄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전혀 불필요한 여적여 구도를 없애지 못한 <섹스 앤더 시티>를 진정으로 건강한 여성 서사라 보기는 어렵다.

 

 

 

지독한 이분법


 

<섹스앤더시티>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관에서 결코 벗어나지를 못한다. 전 시즌 내내 연애에 대해 말하는 그들은 남자와 여자를 철저히 나누어 본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대중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했을 뿐 아니라 소비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정치적, 페미니즘 학문적으로도 많은 담론을 형성한 이 드라마의 기념비적인 시즌1 1화는 “여자도 남자처럼 섹스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시작되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져 왔던 “감정 없이 섹스만 하기”를 여성이 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뜻 여성이 성적 자유와 선택권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국 이는 남성이 원하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주인공 캐리는 찝찝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감 넘치고 성취 지향적인 모든 싱글 여성의 내면에는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연약하고 섬세한 공주가 있다." - 극 중 캐리의 대사

 

 

결국 드라마는 남성과 여성의 성생활 방식과 성향을 일반화시키고 만다. 시즌 내내 남자는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정을 이길 수 없는 존재이며, 언젠가 자신을 구원할 남성을 기다리는 공주들이다. 그러함을 주인공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캐리와 샬럿이 그러하다) 그들이 아무리 성공한 직업여성일지라도 여전히 말이다.

 

 

“그 순간 샬럿은 깨달았다. 자신의 남성성이 아무리 진화해도 스테펀의 여성성을 따라잡지는 못할 거라고 말이다. (시즌2 11화)

 


시즌 내내 네 주인공은 남자들은 이래, 여자는 이래, 를 놓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지독한 이분법은 신화에 가까운 데도 말이다. 이 지독한 이분법적 사고와 일반화가 그들의 연애를 더 힘들게 하는 장본인은 아니었을까.

 

 

 

퀴어 감수성



<섹스 앤더 시티>의 네 명의 주인공은 이성애자 여성이니, 이 드라마는 분명 이성애적이다. 그러나 캐리의 게이 친구인 스탠퍼드와 샬럿의 친구인 앤서니 또한 꾸준히 극에 등장하며, 동성애자들의 연애와 성에 대해서도 다룬다. 또 샬럿이 레즈비언 여성들과 친해지는 에피소드나, 사만다가 여성인 마리아와 연애하는 에피소드, 캐리가 양성애자인 남자를 만나는 에피소드 등 퀴어적 요소를 등장시킨다.


 

“새로운 밀레니엄에는 성적 꼬리표가 붙지 않을거야. 성적 표현이 중요한 때지. 네가 남자와 자든 여자와 자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사람마다 그냥 다른 거지. 모두가 섹스를 가리지 않을 걸. 네가 게이이든 이성애자이든 상관없어질 거란 말이야.” (시즌 2 에피소드 16, 사만다)

 


이 드라마는 결코 동성애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의 감독이 게이임에도 불구하고, 퀴어 감수성을 성공적으로 담아내는데에는 실패했다고 본다. 섹스 앤더 시티는 게이나 레즈비언을 더욱 대상화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스탠퍼드는 전형적인 이성애자 여성이 꿈꾸는 게이 친구의 틀에 짜 맞추어져 있고, 드라마는 게이들이 성에 대해 과하게 개방적이며 거리낌 없이 폴리가미(일대일의 관계를 뜻하는 모노가미의 반대어)적인 성생활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또한 게이 바나 게이 클럽은 항상 과도한 노출을 하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드라마는 이렇게 스스로 게이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한다. 동성애자를 혐오하지만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사회의 동성애자에 대한 대한 건강한 이해를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체적 섹시, 주체적 꾸밈?



<섹스 앤더 시티>의 네 주인공은 대표적인 ‘제3물결 페미니즘’ 혹은 ‘포스트페미니즘’ 의 여성으로 상징되곤 한다.

 

‘포스트페미니즘’은 ‘포스트’라는 어두가 붙어 언뜻 페미니즘의 종말을 표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표면적인 단어의 의미로만 이를 이해하면 곤란하다.


 

“용어의 정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용어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나는 새로운 현실이고, 이 현실에 기초하여 대안적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다.” (참고문헌 5p)

 


포스트페미니즘이란 사회운동으로나 학문적 연구로서 페미니즘이 주류로 올라서면서 페미니즘이 맞이한 새로운 국면으로, 이는 여성 개인의 욕망, 자유로운 선택과 소비를 더 옹호하는 사상이라 볼 수 있다.


 

“결국 포스트페미니즘 문화 현상을 통해 우리가 대면해야 할 것은 가부장적 이성애규범, 대중매체, 신자유주의적 소비문화 등 밀레니움 전환기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같은 글, 10p)

 


섹스 앤더 시티의 네 명의 주인공들은 1990년대 이전 지난 40년간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직접적 수혜자이며 페미니즘 혁명 ‘이후’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포스트페미니스트 여성상’으로 부각된다. (같은 글, 10p) 이들은 토요일 브런치 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들의 성생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눈다. 이 네 명의 여성은 경제적 권력을 가진 남성 없이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신의 성적 욕망에 솔직하며,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고, 쇼핑을 즐긴다. 동시에 그들은 항상 섹시하고 완벽한 몸매와 메이크업, 패션을 추구한다.


문제는, 이 드라마가, 그들의 화려하고 섹시한 모습이 누구의 판타지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정말로, 여성들의 판타지일까?


필자는 이미 시즌 1 1화에서 그 정답이 나왔다고 본다. 캐리는 “남자처럼 섹스하기”를 했는데도 주도권을 느낄 수 없었다. 그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하며 사랑이 아닌 쾌락을 추구하는 캐릭터인 사만다는 자신의 멋진 몸매를 기록하기 위해서라며 누드 사진을 찍지만, 이성애자 남성에게 사진에 대한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또한 사만다는 예뻐지기 위해, 젊어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감행하며, 사만다를 비롯한 세 여성 주인공은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왁싱을 하고, 전 시즌 내내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한다. 미란다는 임신으로 살이 찐 후 “아무도 나랑 자고 싶어 하지 않을거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남성에게 욕망되기를 원하는 것이 과연 주체적 여성일까?

 

 


드라마가 지운 현실의 여성들



<섹스 앤더 시티>의 인기요인 중 하나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경이다. 그러나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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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인공은 결국 모두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백인 중산층 여성이다. 그들은 언제나 뉴욕에 대해 예찬하고 마음껏 명품을 쇼핑하며, 화려한 파티를 즐긴다. 그들은 성공한 직업여성이지만 그들의 커리어적인 모습은 자세히 그려져 있지 않으며, 주인공들이 가사노동을 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란다가 아이를 돌보는 장면이 약간 포함되어 있지만, 미란다는 무려 가정부에 베이비시터까지 고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이나,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전혀 비추지 않으며, 또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삶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즉 <섹스 앤더 시티>는 네 주인공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해 내는데에는 훌륭했지만,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데에는 실패했다.

 

*

 

이렇게 나의 부족한 식견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측면에서 <섹스 앤더 시티>를 비판해보았다. 조금 더 학문적인, 포스트페미니즘 담론을 포함하는 글을 읽어보고 싶다면 참고 문헌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다음 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섹스 앤더 시티>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이명호(2010), 로맨스와 섹슈얼리티 사이 : 젠더 관계의 변화와 포스트페미니즘 문화현상, 영미문학페미니즘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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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박진숙
    • 추억의 미드에 대한 리뷰 잘읽었어요
      내가 20대일때 미드인데 챙겨보진 않았지만 워낙 유명해서 내용은 잘 알고 있어요
      남자한테 잘보이기 위해 왁싱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 과연 주체적이냐는 비판했던데...주체적이라는 관념을 평면적으로 해석한 면이 있어보여요
      여성이 마음에 드는 남자를 유혹하기 워해 자신의 외모를 관리하는 것은 충분치 주체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않을까요?
      김민정 에디터님은  다른 글을 다 읽으면 은근히 팬이 된 50대 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적인 글쓰기를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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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solmi
    • 결혼전에 열심 봤던 드라마네요. 그때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교육이 부재했던 세대로서 알아가는 면이 혼재했던 것 같아요. 여자이면서도 그 드라마를 보면서 배워간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민정씨의 글을 읽으며 이 드라마속에 어쩌면 성의 헤게모니가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에  번뜩해집니다. 이제는 세월의 먼지만큼 연로해졌을 배우들을 생각하며 오늘, 지금, 무디어진 나의 성이 성숙되게 행보하기를 염려해 봅니다. 더불어 민정씨의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다음 글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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