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저 나로서 바라보고 표현하는 일상, 빛나는 삶 - 장 줄리앙: 그러면 거기

일상을 영감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글 입력 2022.11.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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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영감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가 아닐까.

 

 

장줄리앙_포스터1.jpg

 

 

[Review]

그저 나로서 바라보고 표현하는 일상, 빛나는 삶


 

요즘 들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현실보다는 눈에 뵈지 않는 '상상'이란 둘레에서 이야기를 좇아 그리는 편이다. 단순 명료한 선보다는 얇은 선을 빼곡히 채워 시야의 밀도를 올리는 걸 좋아한다. 당연하게도 내 그림에 대한 생각도 이러한 기준으로 흘러가는 편이다.

 

가만 보면 나는 장 줄리앙의 그림 세계와는 사뭇 반대되는 지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나의 그림은 어느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낯선 세계로서 첫인사를 건네게 된다. 반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순간을 단순하고 위트 있는 그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장 줄리앙의 그림은 친근한 몸짓으로 첫인사를 건넨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장 줄리앙 전시를 보면서 익숙했던 질문들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일상이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되어 표현되는 과정에 대해서. 그렇게 나타난 작품이 사람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풍경에 대해서 말이다. 그저 낯선 인사가 아닌, 그저 친근한 인사에 대해서. 그리고 그 친근한 인사만이 가진 에너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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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한편, 시작부터 끝까지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마음이 편안한 전시는 처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든 것이 꽤나 새삼스럽게 느껴기지도 했다. 나름대로 전시를 계속 찾아갔던 사람으로서 '편안하고 즐거운 전시였다'라고 선명하게 결론내린 전시는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이런 마음들의 '이유'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장 줄리앙의 작품 세계를 거닐며 품었던 지극히 즐겁고 편안한, 그래서 사뭇 생경하게 느껴졌던 마음들에 대해.

 

*


장 줄리앙의 그림들은 '빛난다.' 내가 선택한 표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정말 그의 그림에 걸맞은 수식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장 줄리앙의 그림들을 다시 떠올리며 얼기설기 정리한 느낌들이 결국에 선택한 표현은 '빛난다'였다.

 

그 빛의 모양은 자그마한 탱탱볼을 닮았다. 누구나 즐겁게 두 손과 시선에 담아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하는 그림은 유쾌하게 통통 튀어 오른다. 알록달록하게 웃음 짓는 풍경 사이, 묵직한 시선으로 바닥에 툭 놓여 풍자적인 존재감을 빛내는 쓴 미소들이 함께하는 것이 또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장 줄리앙의 그림은 보드랍다가도 쌉쌀한 코코아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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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 장 줄리앙의 100권의 스케치북과 전시장 벽에 직접 그리고 간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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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 장 줄리앙의 드로잉 습작들.

 

 

나도 알고 있는 순간을 더 위트 있고 기발하게 표현하는 그림들을 보노라면 눈가에 웃음이 절로 폈다. 말 그대로 전시를 보며 정말 많이 웃었고, 정말 많이 팔을 휘저었다(!).

 

수십 권의 스케치북 사이에서, 온 벽면을 가득 채운 드로잉들 사이에서, 심지어는 작가가 전시장 벽에 직접 남기고 간 흔적들을 괜스레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같이 간 친구들에게 '저것 좀 같이 보자'라며 자주 목소리를 내었다. 내가 발견한 그림 속 즐거움을 어떻게든 더 나누어보려는 마음이 마구 피었던 전시였다. 어느 것을 바라보든 나의 시선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고, 소소한 순간을 이토록 영감이 되는 작품으로 창조해내는 예술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그림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퍽 일상적이다. 엄청 대단한 걸 표현한다고 구태여 꾸며 말할 만한 것도 없다. 이는 장 줄리앙의 영감의 원천이자 작품의 시작이 된 100권의 스케치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작품이라기에는 꼭 일기를 읽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일기라고만 하기엔 작가의 예술적 언어가 창조되어온 과정이 기록된 작품들이기도 했다. 일기라는 가벼운 형태의 마음으로 그가 얼마나 다채로운 언어를 시도해왔는지 엿볼 수 있던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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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 장 줄리앙의 PAPER PEOPLE

 

 

"언어"

 

언어. 이 즈음에서 그의 말을 다시 상기하고 싶다. "나의 주변 세계를 관찰하고 타인과 소통하기에 드로잉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드로잉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만나도 통역이 필요 없다. 내가 단순하게 작업하는 이유다." 그의 그림은 분명 언어다. 그리고 언어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어떠한 체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서로의 표현이 오가며 의미가 공유될 때 일어나는 것이 대화다. 조금 새삼스러운 언급일지도 모르나, 분명 그림은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언어 중 하나이다. 그리고 장 줄리앙은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 그림을 찾아가는 창작을 이어온 예술가이고.

 

내가 전시회의 끝자락에서 '편안하고 즐거웠다'라고 생각한 이유는 사실 정말 말 그대로였던 것이다. 나는 장 줄리앙의 그림들과 부담 없이 정말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왔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 없이 말이다. 마치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일기 같은 스케치북, 습작으로서의 드로잉, 경계 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그림들. 그렇게 장 줄리앙의 시선과 언어를 살펴보다가 문득 내 일상의 존재를 떠올렸다. 내가 이런 순간들을 기록한다면 어떤 장면을, 어떤 감정으로, 또 어떤 표현으로 그려냈을까. 내가 지금 쓰고 그리는 것들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 얼마나의 새로움과 영감을 안겨 주고 있는 걸까. 내가 사는 가장 가까운 시간 속에서 영감을 발견하고 간직하는 일상은 어떤 일상일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일상을 영감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가 아닐까. 장 줄리앙은 소소한 순간을 제 언어로 빛내며 모두의 웃음을 피워낼 수 있는 사람, 예술가였던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장 줄리앙의 그림을 보며 떠올린 질문들은 곧바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나의 순간들을 영감으로 빛낼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럴 수 있는 시선과 관점을 갖춘 사람일까. 그 반짝임을 내 언어로 표현한다면 얼마나 그대로, 또는 새롭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미처 대답을 정리할 틈도 없이 나열되는 질문들 속을 한동안 맴돌았다. 그리고 장 줄리앙처럼 예술가의 시선으로 삶의 일부분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고요히 일기 시작했다.

 


Poster man_(c)Jean Jullien Studio.JPG

Poster man

(c) Jean Jullien Studio

 

 

그래서 장 줄리앙의 그림 세계는, 적어도 나에겐, 참으로 빛나는 세계였던 것이다. 자신 곁을 무던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누구나와 새롭게 대화할 수 있는 작품으로 창조해 내는 그의 예술이 말이다. 그 즈음에서 내가 도달하고 싶은 결론 하나를 떠올렸던 것 같다. 내 삶도 그의 일기처럼 무엇이든지 표현해 나간다면 '나의 언어'로 빛나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많이 어설프다. 아직 어설픈 언어일지도 몰라도, 무언가를 표현하며 간직하려는 나의 삶이 그만의 빛을 찾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이르렀다. 장 줄리앙처럼 수많은 타인의 웃음을 피워낼 수 있는 빛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나도 나의 방식대로 세상을 마주하며 어딘가를 가만히 비춰주는 언어를 갖추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전시를 보며 즐겁게 웃다가도, 내심 그가 부럽고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잔잔히 일었나 보다. 

 

정말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언어로 나의 세계를 이야기함으로써 빛날 수 있는 사람.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한다는 고민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의 언어로 표현해 내는 삶. 그런 삶의 태도. 예술가의 태도. 생각이 거기까지 가닿자 나는 무척이나 많은 것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의 언어로 쓰고, 또 그리고 싶어졌다. 이 글을 쓰면서 또 처음으로 느낀 것이 있는데. 이번에 일어난 장 줄리앙의 작품과 나의 대화는 생각보다 더, 그저 편안하고 즐거운 것 그 이상으로 내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본문 내 사용된 이미지 제공

: 지엔씨미디어 [장 줄리앙 : 그러면, 거기]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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