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관 없는 먼 나라 이야기는 없다 - 연극 '자본 2: 어디에나 어디에도' [공연]

누구나 가담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글 입력 2024.03.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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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드림플레이 테제 21의 <자본 2: 어디에나 어디에도>는 조세도피 문제가 수면 위로 나오기까지의 과정들과, 그 속에 얽힌 실존 인물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가 바탕이 된 작품이다. 2022년 서울연극제 초청작으로 호평을 받았고, 지금은 2021년 초연 실황 영상을 '플레이슈터' 홈페이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어디에나 어디에도'라는 작품의 부제가 눈에 띈다. 작품 속, 상위 1% 슈퍼리치의 조세도피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난민의 삶은 자본주의 경제 논리 속에 서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들은 우리의 일상 속, 값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그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를 다소 직설적일 정도로 드러내는 이미지적 상징으로, 서로 이어져있는 세계 각국의 화폐가 온 무대 위를 뒤덮고 있다. 화폐들은 의자와 테이블 등, 인물들이 일상을 영위하면서 당연하게 사용하는 삶의 공간을 채운다.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눈에 띄는 요소인 것과 대조적으로 테이블과 의자 위 화폐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무대를 활보하는 인물들은, 삶 속에 세계 각국의 큼직한 이슈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뒤이어 작품은 여러 장치들을 통해 뉴스 속에서만 존재한다 느꼈던 사건들이 사실은 자신의 일상과 얼마나 가까운 관련이 있었는지, 관객의 체감을 이끌어내려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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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는 주연, 조연을 크게 구분할 수 없는 17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몇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모든 인과관계를 형성하는 익숙한 서사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또한 세계 각국의 인물들은 무대 위 화폐들이 '이어진' 것처럼, 관계적으로 몇 다리를 건너면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사회의 어느 한 사람, 또는 한 곳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저 높은 곳에서 위성사진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넓은 시야의 관계망은 관객 역시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어짐’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장면과 대사의 영리한 배치도 돋보인다. 조세 도피 시스템을 제공하는 로펌, '모저 폰타나 다이내스티' 대표는 그들에게 거금을 지불하기로 예정된 고객에게 '(돈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라'며 직원들을 향해 명령한다. 바로 다음 장면에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라는, 내전을 피해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시리아 난민들의 처절한 호소가 들려온다. 국경을 인식하는 데 있어 완전히 대비되어 보이는 이들이 같은 단어들을 내뱉게 함으로써 세계 속 모든 삶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공하는 이’와 ‘진정 필요로 하는 이’의 서로 닿지 못하는 대화 같이 느껴지는 대사의 배치는 경제적 신분의 확고한 구분에 따른 세계화의 피상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민의 죽음을 상징하는 ‘무대 천장에서 떨어져내린 보트’와, 로펌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로펌 직원이 난민들과 동일한 보트를 타고 남몰래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암시가 있는 장면이 연결되어 제시되며 그 견고해 보이던 신분 구분은 다시 붕괴된다. 다소 폭력적인 사회적, 경제적 계층구조가 작동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궁극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경고성 짙은 메시지와 함께 인물들은 다시 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연결이 무대 위의 이야기와 객석의 관객들 사이에서까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여느 때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은 '박소은'이라는 한국 기자의 이름이 들려올 때이다. 무대 위 한국인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주로 우리와 문화적 배경도, 언어도 다른 외국인들이다. 낯선 외국어 이름의 발음, 그리고 익숙한 외형의 사람들과 낯선 이름들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관객은 일정 거리를 두고 무대 위 이야기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품의 중반부를 넘어서서 관객에게도 배우에게도 익숙한 '박소은'과 '뉴스타파'라는 명칭이 들려올 때, 앞서 쌓아올린 연결의 서사는 객석까지 확장되며 관객들은 무대 위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 극장 전체에 체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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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엽 연출은 이 작품을 ‘다큐-드라마’ 라고 칭한다. 명칭에 걸맞게 공연은 비재현적 형식에 가까운 다큐멘터리 시어터와, 재현적 연극 사이에 존재한다. 객관적인 자료 제시와 인위적으로 조직된 ‘드라마’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다. 필자는 작품이 후자에 좀 더 치우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존하는 인물과, 실존하는 인물을 모티브로 창작한 인물을 혼합해 놓은 공연 속 인물들은, 객관성을 강조하는 연기, 즉 '연기하지 않으려는 연기'를 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캐릭터의 극대화된 '전형성'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작품에 도움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인물들은 주로 교수와 언론인, 변호사나 세무사 등, 전형적으로 ‘발표와 브리핑을 많이 할 것 같은’ 직종의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극 내내 그들이 저명한 인물들에 대한 실제의 방대한 자료를 발표하듯 제시하는 상황들이 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인물을 전형적으로 그림으로써 극에 도움이 되는 지점일 것이다.

 

작품은 사명감 있는 인물들이 거대 기업의 악한 이면을 탐색해나가는 다소 선악이 확실한 형태의 추리물과 같은 드라마를 구성한다. 그 속에서 선함, 악함, 정의로움, 야비함 등 각 인물의 특징이 되는 전형적인 캐릭터성이 극대화되어 드러나는데, 이는 극 중 제시되는 객관적 자료들과의 충돌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로사의 연구조교 댄비가 모저 폰타나 직원들에게 직접 정보를 캐내기 위해 재벌 가문의 인물로 둔갑하는 장면 등은 지극히 극화되고 과장되어 제시되는 인물의 ‘발랄함과 무모함’의 캐릭터성에 기대어 상세한 논리를 건너뛰며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따라서 그러한 인물들을 통해 섬세한 논리가 바탕이 되는 길고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할 때 보는 이들에게는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로 인해 관객은 작품과의 연결고리를 놓치고 무대 위 제시되는 것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앞서 언급한, 인물의 전형적 표현이 작품에 독이 된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작품은 영상을 많이 활용한다. 극 중 무대 뒤 영상에는 실제 유명 인사들의 사진과 영상이 제시된다. 또한 그러한 실제 자료들 위에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이 겹쳐지곤 한다. 무대 위 이야기가 실제 사건과 자료에 기반하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신뢰를 더하는 것이다. 커튼콜이 끝나고도, 여전히 한국의 조세 회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제작한 ‘페이크’ 뉴스타파 영상이 무대 위 제시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장을 나가서도 연극이 다루었던 사회 문제를 계속해서 생각하게끔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영상에는 앞서 무대에서 기자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그대로 등장하며, 영상이 작품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앞선 자료들이 ‘극화된 자료’로 회귀되어 마무리되는 지점은 관객에게 작품을 그저 ‘연극'으로만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작품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결합을 통해 평소에는 관심 가지지 않았을 실제 사회의 객관적 단면을 관객들로 하여금 보다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두 요소는 결합되기보다 충돌하며 오히려 관객의 관심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앞으로 창작진의 꾸준한 고민을 통해 이러한 의미 있는 시도가 이를 풍부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완성도를 통해 더 큰 박수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박보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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