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의 디자인에는 목소리가 있다 : 장 줄리앙 회고전

유쾌하고 솔직한 질문들
글 입력 2022.11.1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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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사인처럼 단순한 형태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세계적인 언어로 디자인하고 싶다” (월간 디자인 인터뷰 中)


장 줄리앙의 작품은 명료하다. 우리 주변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일상적인 그림 속에서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장 줄리앙은 주로 주황색, 검은색, 파란색 등 눈에 확 띄는 색상을 이용한다. 강렬한 색채가 단순한 디자인의 매력을 증폭시킨다.


입구의 포토존을 지나고 나면 스케치북과 흑백 그림으로 둘러싸인 전시장이 시작된다. 전시된 스케치북만 자그마치 100권이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그의 그림과 한 면을 고정해놓은 스케치북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전시장 중 개인적으로 가장 새로웠던 부분이 바로 여기다.


간결하고 단순하게 정리된 메시지와 그림. 장 줄리앙의 상업적인 작품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의 드로잉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일종의 그림일기 같은 느낌의 섬세한 기록물이다. 당시의 대사가 들어가 있기도 해 카툰 같기도 하다. 내가 접했던 예술가들의 ‘단순한 디자인’은 복잡했던 어떠한 완성품에서 하나하나 덜어낸 결과물이었다.


한 번은 디자인을 하는 J에게 ‘야 나도 저런 디자인해서 돈 벌면 안 될까’라는 오만한 말을 한 적이 있다. J는 정색을 하고 ‘저런 디자인이 그냥 막 매직으로 줄 그으면 나올 거 같지? 저게 다 엄청난 연습을 한 이후에 복잡한 모든 것을 덜어낸 궁극의 작품이다’는 말로 시작된 참교육을 시전했다. 그러니 단순함은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 전시장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게 해주는 곳이었다. 월간 디자인 인터뷰에서 장 줄리앙은 “전시를 위한 작업물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를 원칙으로 한다. 화장실 사인처럼 단순한 형태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중국인, 아프리카인, 미국인 등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세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 줄리앙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나는 내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되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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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 위에 있는 흑백의 그림들은 장 줄리앙이 이번 전시를 위해서 직접 벽면에 그린 것들이다. 전시장 군데군데 한국어로 적힌 설명도 작가가 직접 적은 것이라고.

 

장 줄리앙의 이번 전시는 그의 16년 지기인 허재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함께 기획했다. 전시 대표 포스터이자 브랜드 NOUNOU의 얼굴이 한국의 ‘탈’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전시 구성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주.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하얀 벽이 될 것들이 벌써 아쉬워진다.


다음 섹션은 드로잉. 낱장으로 그려진 그의 드로잉들이 벽 세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가의 드로잉 스타일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설명이 적힌 구간이었는데, 연도별로 나뉘어있지는 않아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드로잉이 무엇일지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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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줄리앙을 수식하는 단어들이 ‘촌철살인’, ‘사회 비판 메시지’로 해석되는 것에는 아마 전시 내 ‘소셜미디어’ 섹션의 영향이 클 것이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자유의 여신상, 휴대폰 불빛에 한쪽 눈을 뜨고 자는 사람, 장시간 통화로 귀만 빼고 타버린 사람까지. 그야말로 ‘웃픈’ 그림이다.


사회의 기괴한 부분을 똑 떼어서 보았더니 그게 바로 너와 나의 모습이더라. 장 줄리앙의 유머는 이런 접근이 아닐까 싶다. 장 줄리앙 역시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작업물을 알린 작가다. 그러니 역시 그의 이야기이기도, 그의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내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전시에는 여러 영상과 설치 미술 작품도 있다. 동생과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전시장 곳곳에 서 있는 종이 인형들, 오브젝트 형태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 그리고 마지막엔 그의 회화 작품까지 매우 다양한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장 줄리앙은 관객이 작품에 섞여드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드로잉을 제외하고서는 전부 관객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그럼에도 사진만을 위한 전시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도 보였다.


목소리가 있는 디자인. 전시의 소감은 그랬다. 촌철살인 정도로 험악한 메시지는 아니지만 비틀린 유쾌함 정도. 유쾌함 속에 깔린 묵직한 한 방이 있었다. 이해하기 쉽고, 공감이 가서 좋았다. 최근에는 문화생활을 조금 멀리했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몇 개 끝내고 나니 진이 빠진 탓이다.


연말이 다가올 때쯤 늘 겪는 일이다. 무언가를 애써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지 않아진 상황.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고 기록하는 것도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솔직하고 단순한 메시지에 이상하게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전시를 다녀온 J가 또 다른 솔직한 후기를 보내왔다.


“야, 폼 잡고 어렵다고 다 예술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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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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