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의 모든 '보이지 않는 힘'에 관하여 - 아키코 부시,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How to disappear

글 입력 2024.03.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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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의 관심이 곧 성공인 시대. ‘보이지 않음’은 무용하다고 느껴진다. 쏟아지는 콘텐츠와 정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음’을 택하기에는 나는 아직 젊은 탓일까? 아직 만족할 만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는 ‘보이지 않음’이 얼마큼 중요한지 실감이 되지 않는다. 템플스테이를 하던 중 생각을 비우라(명상)는 지시에, ‘생각은 영감의 원천인데, 왜 비워야 하는 거죠?’라고 물었던 것 마냥, 나는 '보이지 않기'를 주장하는 책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보이는 것이 곧 힘이자 지식의 원천인데, 왜 사라져야 하죠?


아키코 부시의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이 책은 내 바람과 다르게 ‘사라지는 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은 저자의 경험을 소재로 한, 열한 장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저자의 생각을 알기 위해 첫 장부터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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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장, “보이지 않는 친구”. 저자는 까꿍놀이나, 숨바꼭질 등 아이들이 하는 놀이의 긍정적인 점을 강조한다. 까꿍놀이는 인지 발달을, 숨바꼭질은 정서를 성장시킨다. 또한 아이들은 가상의 친구를 통해 상상력을 한껏 꽃 피우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저자 또한 과거의 경험을 언급하며 숨바꼭질을 사랑하고 은밀하고 금지된 친구들을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나는 숨바꼭질을 싫어했다. 나는 숨어있을 때의 조마조마함이 불편했다. 심장이 너무 두근댔고 ‘보이지 않는 것’이 무서웠다. 차라리 술래가 되기를 택했다. 모두들 나를 주시하고 있으니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에게는 가상의 친구도 없었다. 외로웠지만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겼다. 아무리 외롭다고 하더라도 가상의 친구는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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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 “마법 반지와 투명 망토”. 저자는 보이지 않는 힘의 한 예시로 '기게스 반지'를 들면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위험성도 언급한다. 평범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능력을 얻게 되면,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맥락이다. 하지만 반대로 장자크 루소가 이 절대 반지에 대해 다르게 해석한 점을 예시로 든다. 즉 보이지 않는 능력을 지녔을 때, 단순히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본성대로 자유롭고, 무명이고, 보이지 않는다면 선한 일만 했을 것이라고. 하느님처럼 보이지 않고 강한 힘을 가졌다면 하느니처럼 자비롭고 선했을 것이라고.


이 대목에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도깨비>가 떠올랐다. 인간은 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도깨비도 신이 되기 전, 본래 인간이었고 '보이지 않는 능력'을 가져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 때도 그는 이를 겸허히 여기고 인간을 도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힘'은 분명 양면성을 띤다.


세 번째 장, “여기 조약돌 식물이 있다”. 자연계 생물의 은폐능력을 언급한다. 그들은 눈에 띄거나 들키지 않으려고 주변 환경과 뒤섞이는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창조적인 개인주의를 부정하는 일도, 우리를 독특하고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하게 만드는 특징을 포기하는 일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상태는 짝을 유혹하고, 집과 서식지를 보호하고, 사냥하고,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다.(p. 113)


여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저자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의 영문 제목 “How to Disappear”이다. 'Disappear'에는 3가지 뜻이 있다. 그중 하나인 “(눈앞에서) 사라지다, 보이지 않게 되다.”로 해석해야 했다. 즉, 저자는 단순히 사라지기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가 아닌, 상태였다.


너도나도 모든 사람이 드러나고자 하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해질까. 주변과 어우러지고 싶은 욕망은 개성을 죽이는 게 아닌,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상태에 이르면, 단절감이 아닌 지속적으로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게 자연의 본래 상태이니까 말이다. 나는 조금씩 그의 말을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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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장, “보이지 않는 잉크”에서 저자는 ‘말하지 않는 것에도 정확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의도적인 생략은 중요하고 의외로 정확하다. 인간의 뇌도 기억하는 정보보다 버리는 정보가 많듯, 보이지 않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또 유의미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대한 수많은 근거와 예시를 저자는 들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예시로 인해 조금은 혼란스럽다고 느끼는 점은 단점이다.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겠으나, 펼쳐져 있는 정보들로 인해 그가 말하는 점이 정말 “보이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장, “내가 없는 자화상”에 대해서는 최근에 필자가 쓴 칼럼이랑 내용이 비슷해 이 장에서는 큰 공감을 느꼈다. ‘자신을 잊는 일’의 매력을 말하고 있다. 현대에는 다양한 자아가 보이게 되었다. 또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일은 포토샵을 통해 졸업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만큼 쉬운 게 되었다. 따라서 부재는 또 하나의 특권이자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또 다른 표현이자 능력이다.


일곱 번째 장, “익명성의 위안”은 ‘군중’의 힘을 이야기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군중의 힘에 의해, 다수에 의해 억압되는 소수자 문제가 부각되던 터였는데 이제는 불안한 수많은 개인이 공동체에 보이지 않는 질서에 속해지기를 염원하고 있다. 익명성의 위안은 말 그대로 익명성을 통해 인간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간혹 택시 기사 손님 간의 이야기가 더 솔직하듯,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또 모르는 사이에 있을 때 더 자유롭다.


아홉 번째 장,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자아”는 여타의 장과는 다른 결이었지만 가장 흥미로운 장이었다. 저자는 뇌의 전두엽의 문제로 인해 어머니가 전에 같지 않게 폭력적이게 변한 것을 언급하며, 이 책에서 처음으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드러냈다.


어머니의 병을 생각하면,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보이지 않는 자아’라는 개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상태 그리고 정체성의 가변성에 심취한 나머지 아주 명백한 사실을 일부러 외면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원치 않게, 갑자기 신체적인 문제로 존재감과 정체성의 결여를 겪는다면 그것은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이며 치명적인 상실감을 동반하게 된다. (p.263)


사실 인간에게 사라지는 일은 자연의 생물처럼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을 만든다고 추측하지만 병으로 인해 쉽게 중단될 수 있다. 대신 자아는 유전적인 특성, 학습된 행동, 습관과 반응 등을 닥치는 대로 무작위로 모아놓는 것에 더 가깝다.


따라서 자아의 경계는 보통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유연하며, 유동적이다.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계속 변화하는 중인데도 이미 완성되었다고 착각한다. 바로 지금의 우리는 지나간 매 순간의 우리처럼 일시적이고, 임시이고, 순간적이다. 우리 삶에서 변치 않는 건 변한다는 사실밖에 없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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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장, “보이지 않는 곳을 그리는 지도”에서는 아이슬란드 교외의 한 도시를 이야기한다. 7,000년 전 형성된 용암지대와 그 주변에 세워진 도시 곳곳에는 용암 분화구와 균열이 많이 보인다. 이 바위들에 영적인 존재들이 산다고, 거대한 균열이나 길게 갈라진 틈은 훌두폴크나 알파르로 불리는 ‘숨겨진 존재’, 요정들이 오가는 출입구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요정들은 인간과 아주 비슷한 사회적 동물이고 아직까지도 주민들과 함께 살아간다.


과거 이런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게, 우리에게도 그런 대상이 있었다. 가까이는 조상님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소원을 빌었고 또 함께 공존하기를 희망했다. 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어릴 적 나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볼 수 없고,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무서워했듯, 어떤 증거 없이는 나는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세상에 나를 내보이려는 이유도 사실은, 나라는 증거를 통해 세상에 대화를 청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어떤 중요한 힘은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있다. 가령 신념, 사랑, 중력과 같은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해 세상은 휘청한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그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거대 자연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는 이유는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자연 아래, 개인은 더 고유한 신념과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연과 멀리 있다. 명명백백히 보이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저자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이제는 중요하게 여길 때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결국 받아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이지 않음'에 더 힘을 실어주지만, '보이지 않음'에 대한 양면성 역시 끊임없이 언급한다. 이 때문에 독자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종국에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따뜻한 세상을 향한 저자의 진심이 너무 느껴져, 그 혼란스러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저자는 양면성 가운데 세상과 긍정의 관계 맺기를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상이 선해질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개인이 좀 더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세상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가 책을 써내려가는 방식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모두 '꺼내 보여주려는' 태도가 주제와 사뭇 상반될 수는 있어도, '보이지 않음'에 대한 열정 덕분에 끝까지 읽게 된다. 역시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셈이다.

 

사실, 책을 향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주 느슨하게나마,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 당장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결국 ‘보이지 않음’에 대한 힘을 이해하게 될 것 같다. 마치 템플스테이에서 명랑하게 질문을 하던 내가, 이제는 생각을 비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깨닫게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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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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