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이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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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좋아한다. 그리고 한 번 꽂히면 한동안 그 빵만 먹을 정도로 디저트에 집착하는 성향을 가졌다.
한국에서 어느 순간 베이글의 인기가 갑자기 치솟기 시작하고, 그 전까지는 빵 종류 중 하나에 불과했던 베이글에 입문하면서 어느샌가 일주일에 적어도 4번 이상은 베이글을 먹는 베이글 광이 되었다. 베이글은 최근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국에 수입되어 여러 카페 메뉴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베이글 ‘전문점’이 유명해지고 런던베이글뮤지엄, 코끼리베이글 같이 오픈런을 해서 몇 시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맛집들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베이글은 동유럽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먹던 음식인데, 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그래서 ‘베이글’하면 미국, 그리고 미국 속에서 가장 미국적인 도시라고 볼 수 있는 뉴욕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 베이글이 한국으로 오면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여러 종류 속 내 취향의 베이글
한국에서 통용되는 베이글도 나름의 부류가 있다.
카페나 코스트코 같은 마트,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다량으로 파는 냉동 전용 빵들이 있고, 직접 구운 베이글이 있다. 크림치즈를 발라먹기도 하고, 크림치즈를 안 먹기도 하고, 샌드위치처럼 야채나 치즈, 햄이나 연어 같은 ‘단백질’, 아니면 감자 샐러드 같은 것을 넣어 ‘식사 빵’처럼 먹기도 한다. 베이글 반죽에 향이나 식감, 아니면 다른 맛을 위해 다른 요소를 첨가하는 경우에 따라서도 종류가 달라지는데, 초코 베이글이나 크랜베리 베이글처럼 달달한 디저트용 베이글도 있고 블루베리, 어니언, 감자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베이글도 있다. 또한 베이글에 곁들이는 크림치즈도 파나 양파 같은 크림치즈나, 바질 같은 향신료를 이용한 크림치즈, 그리고 무화과 잼 크림치즈나 꿀과 같은 달달한 종류가 있다. 또한 베이글과 같이 먹게 되면 궁합이 좋은 것으로 꼽히는 음료로는 아메리카노, 라떼 같은 에스프레소 샷을 내려 먹는 커피가 있다.
내 취향은 다른 요소도 중요하지만 우선 빵이 맛있어야 한다는 주의다. 브랜드 카페의 메뉴 중 하나인 베이글의 경우 냉동된 것을 데워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냉동 빵보다는 직접 구운 베이글 전문점을 선호한다. 또한 양이나 맛의 측면에서 과도한 크림치즈보다는 양이나 당도가 적절한 크림치즈를 발라 담백하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베이글을 장식하는 존재인 크림치즈의 경우 역시 달기만 한 크림치즈보다 대파나 쪽파 크림치즈 아니면 플레인 크림치즈를 ‘직접’ 발라 먹는 것이 내 취향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수적인 요소에 선행하는 것은 ‘베이글’이라는 장르의 범주다. 베이글이라는 형식 속에서 크림치즈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베이글, 어디서 사 먹을까?
한국에서 베이글이 대세가 되면서 여러 베이글 전문점 역시 브랜드화되어 1호점, 2호점을 내기 시작했다.
베이글 전문점은 지방의 소도시 기준으로 한 도시의 도심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의 경우 인구나 인파가 집중되는 곳 위주로 분포하고 있다. 즉, 베이글 맛집은 편재해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처럼 생각보다 베이글 전문점이 주변에 부재하는 경우, 걸어서 30분~1시간 정도의 거리를 운동삼아 걸어서 베이글을 사오거나 배달을 시켜 먹기도 했다. 하지만 베이글을 배달시켜 먹기 애매한 이유는 배달 어플 플랫폼의 최소 주문 금액이나 배달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마라탕, 떡볶이 같은 다른 음식 류보다 베이글 같은 디저트류는 음식의 양이 적기도 하고 그에 수반하는 금액대도 적다는 점과, 오래 보관하면 고유의 맛과 풍미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제한된 배달 조건 속에서 완제품을 다량으로 시켜서 쟁여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에게 공연을 보러가는 것은 서울의 베이글 맛집을 탐방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MBTI가 과연 P가 맞나 싶게) 공연장 근처의 베이글 맛집을 찾아보고 공연장으로 가는 시간을 계산해서 세세한 계획을 짰다. 공연이 시작되기 2시간 전 베이글을 먹고 공연 시작 40분 전쯤 공연장에 도착하게 설계하면 적정한 시간대가 되었다. 베이글을 먹고 공연 보러가면 만족스러운 하루로 통하는 날이었다. 공연뿐만 아니라 지역을 오갈 때도 역이나 터미널 근처의 베이글 맛집을 찾아 2개 넘게 사들고 1개 정도 먹고 나머지는 포장해서 가져갔다. 베이글 맛집이 편재하는 상황 속에서 다음날까지 맛있는 베이글을 즐기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것
맛있는 음식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비평의 문법에 익숙한 내가 절대 못하는 것은 소위 ‘감각적’이고 섬세한 어휘나 ‘주접’을 떨지 못하는 성향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굶주린 상태에서 베이글 맛집을 찾아가서 베이글을 먹었을 때 나는 내가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감탄과 찬사의 어휘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음식이 정말 말 그대로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정말 맛있는 베이글을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곁들이면 정말 이 상태에서 생을 마감해도 행복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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