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회복의 공동체 - 진실과 회복 [도서]

글 입력 2024.03.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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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만큼 명료하면서도 무거운 단어가 있을까. 오로지 “팩트”만이 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실은 도달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진실은 종종 은폐된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거짓말부터 국가 단위로 일어난 사건조차 말이다. 그리고 은폐된 진실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고, 이 부조리를 알리기 위해, 즉 진실을 알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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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왜 진실을 알아야 하는가. 이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모든 사건의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거짓 없는 사실”을 알아야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사건이 일어났고, 누군가가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과정이 있어야 우리는 애도나 치유와 같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정신의학과 의사인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신간의 제목이 『진실과 회복』인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부제에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언급된 것처럼 트라우마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진실을 “어떻게 올바르게” 타인에게 밝힐 수 있는지 말이다.

 

허먼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 관한 책을 쓴 것은 『진실과 회복』이 처음이 아니다. 허먼은 왜, 세 번째 트라우마 도서 집필을 결심했을까. 이는 허먼의 전작 『트라우마』로부터 시작한다.

 

『트라우마』는 트라우마 회복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첫 번째로는 생존자가 더 이상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한 환경을 확보하는 것, 그다음으로는 생존자가 과거를 “트라우마를 애도하고 의미화한다는 목적하에” 다시 마주하는 것, 마지막으로 생존자가 “현재와 미래에 재집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허먼은 자신이 구분한 트라우마 회복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허먼은 마지막 단계가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계란 “정의”였다. “모두를 위한 정의”가 『진실과 회복』이 집필된 계기이다. 그리고 그 방법의 토대는 생존자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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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회복』의 목차를 들여다보면, 글의 구조 자체가 학술적인 글쓰기에 가깝다. 문제 제기 및 방법론을 설명하고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결론에 도달하는 서술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존자의 증언을 사용하는 방법 역시 정신의학과 의사로서 직업윤리에 근거한 임상을 제시한 것이지 감정에 기대어 호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책 전체가 치밀한 리포트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진실과 회복』을 읽고 치유 받았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트라우마 장애를 오랫동안 앓고 있었다는 것과는 크게 관련 없다. 트라우마 관련 도서를 읽은 경험은 이미 있었다. 다만 “나”는 “왜” “『진실과 회복』을 읽고” “치유 받았다고 느꼈는가?” 이 지점에서 할 이야기가 있을 듯하다.

 

이전까지 트라우마를 다룬 여러 도서를 읽었지만, 내가 치유 받았다는 인상을 받기 어려웠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문제가 있다”라는 걸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분명 트라우마 장애를 앓는 ‘나’는 외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결국 트라우마를 형상화하여 고통받는 주체는 ‘나’이다. 이 시작점부터 인정하기 어려웠기에 나는 지금까지 트라우마 관련 도서 읽기를 어려워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자면, 나는 『진실과 회복』을 읽고 치유 받았다. 이는 문제의 출발점이 ‘나’가 아닌, 진실에 있기 때문이다.

 

 

“생존자에게는 진실을 통과해 회복에 이르는 과정, 곧 윤리 공동체로부터 인정받고 옹호받고 사죄받고 보상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이 과정을 완수했을 때 비로소 공동체와 생존자 사이의 망가진 관계가 치유되고, 신뢰가 회복되고, 더 나은 종류의 정의가 이루어진다.” (281쪽)

 

 

『진실과 회복』은 생존자에게 “진실을 통과해 회복에 이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2부 “정의의 비전”은 생존자의 증언으로 채워져 “인정”, “사죄”, “책임지기”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정의의 출발점이 진실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의 인정이 있어야 가해자가 용서를 빌고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리고 가해자의 용서와는 별개로 그 책임을 지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여기에서 책임이란 단순히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처벌뿐만 아니라, “책임”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은 진실 밝히기가 되어야 한다.

 

 

트라우마의 원천에 있는 폭력은 지배와 탄압을 목적으로 삼는 폭력이라서, 애초에 그 폭력이 트라우마로 승인되고 트라우마라고 명명되려면, 세속적 민주주의 운동, 노예제 폐지 운동, 여성해방운동, 전쟁 종식 운동 같은 폭넓은 사회적 인권 운동의 역사적 맥락이 있어야 한다. (7쪽)


 

허먼의 논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단순히 ‘피해자-가해자’ 구도로 끝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허먼은 그 사이의 사회적 맥락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다. 이는 책 3부가 “치유”인 이유이기도 하다. 허먼은 3부에서 정의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사회 전반을 치유하는 가능성을 “배상”, “재활”, “예방” 총 3장으로 주목하고 있다. 허먼은 진실에서 회복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허먼의 건조하게까지 느껴지는 침착하고 치밀한 논의에서 ‘나’의 문제는 언급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가부장적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개인의 인터뷰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그러나 진실부터 회복까지의 공동체를, 「생존자 의제」의 논리와 같이 “공동체가 안전을 다루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상상”하고 “생존자 치유에 초점을 맞추는 제도”를 창안하자는 새로운 대안으로까지 가는 허먼의 치열한 글쓰기를 읽으며 치유 받고 있다는 감상과 함께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듯하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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