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보헤미안들이 부르는 '렌트'의 넘버들

글 입력 2023.12.3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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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뮤지컬렌트] 포스터.jpg

 

 

<렌트>만큼 연말 시즌에 잘 어울리는 뮤지컬이 있을까.

 

<렌트>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으며 보기 좋지만, 노래로만 구성된 송스루 뮤지컬이라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간략한 인물 소개나 유명한 넘버의 가사를 한 번만이라도 보고 간다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렌트>를 보러 갈 사람을 위해, 42곡의 넘버 중 다섯 곡을 소개한다. <렌트>의 정신이 잘 들어 있되, 알고 가면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곡들이다.


 

 

“갚지 않을 거야” - ‘Rent’



[2023뮤지컬렌트] Rent_로저(장지후), 마크(정원영) 외.jpg

 

 

본격적인 <렌트>의 시작을 알리는 넘버로,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신념에 따라 살아가려는 주요 인물들의 현재 상황이 간략하게 소개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는 마크는 집세 낼 돈도 없고, 음악을 만들려는 로저는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이들은 몸을 덥힐 난방조차 할 수가 없어서 자신이 쓴 대본과 악보를 태워야 하는 신세다. <렌트>의 인물들은 영혼을 배 불리기 위해서 예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예술을 하려니 육체를 배 불릴 수가 없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넘버에서 ‘집세’는 예술을 가로막는 현실의 장벽을 상징한다. 넘버 초반에서 이들은 집세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고민하는데, 끝으로 가면 집세를 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는 현실에 굴복하는 대신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의지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보다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어가겠다는 보헤미안적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1막의 마지막 넘버 ‘La Vie Boheme’에서도 반복된다.

 

 

 

“뭘 망설여, 불태워” - ‘Out Tonight’


 

[2023뮤지컬렌트] Another Day.jpg

 

 

미미가 로저를 만나러 가기 전 부르는 미미의 단독 넘버다. 미미는 이미 한 차례 로저의 집에 불을 빌리러 찾아갔다가 대차게 거절당한 적이 있지만, 거기에 굴하는 인물이 아니다. 가운을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린 모습으로 무대 구조물 2층에서 등장하는 미미는 노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운을 벗어 던지고 머리도 풀어헤친다. 난간에서 묘기를 부리듯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안무와 함께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고음은 미미의 적극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이 넘버 바로 전에 나오는 ‘Life Support’는 에이즈 환우들이 함께하는 모임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넘버로, ‘no day but today(내일은 없어 오직 오늘뿐)’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에이즈 환자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오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사다. 미미 역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걸 고려하면, ‘Out Tonight’은 앞선 넘버와 분위기도 템포도 다르지만 미미의 방식대로 외치는 ‘no day but today’다.

 

오늘의 사랑, 오늘의 감정,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기 위해, 미미는 로저에게로 간다.

 

 

 

“넌 나의 인생이야” - I’ll Cover You


 

[2023뮤지컬렌트] 엔젤(조권), 콜린(임정모).jpeg

 


로저와 미미, 조앤과 모린, 엔젤과 콜린까지 <렌트>에는 총 세 커플이 나온다. 다가가는 미미와 밀어내는 로저의 사랑 이야기가 ‘Light My Candle’로 대표되고, 서로 티격태격하며 질투하는 조앤과 모린의 사랑 이야기가 ‘Take Me or Leave Me’로 대표된다면, 따뜻하고 헌신적인 엔젤과 콜린의 사랑 이야기는 ‘I’ll Cover You’로 대표된다. <렌트>를 통틀어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이 넘버에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마음만이 오롯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조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천 번의 키스로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다짐은 엔젤이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인지 보여준다. 이는 엔젤이 뮤지컬 초반 강도를 당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콜린을 아무 대가 없이 도와준 것과도 연결된다. 이 넘버는 2부에서 엔젤의 죽음 이후 콜린이 혼자 부르는 버전으로 리프라이즈되기도 하는데, 그 결말을 알고 있다면 마냥 행복한 마음으로만 듣기 어려운 넘버이기도 하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창조!” - ‘La Vie Boheme’


 

[2023뮤지컬렌트] La Vie Boheme.jpg

 

 

1막 마지막 곡인 ‘La Vie Boheme’은 <렌트>의 뿌리와도 같은 넘버다. 재개발 반대를 위한 모린의 공연이 끝난 후 마크 일행은 뒤풀이를 위해 펍으로 이동하고, 여기서 베니와 마주친다. 한때는 뜻을 같이했지만 이제 집세 받는 입장이 된 베니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 그에게 ‘보헤미안 정신’은 한때의 치기에 불과하다. 보헤미안은 이미 죽었다는 베니에 말에 그럼 보헤미안 장례식을 하자며 마크가 노래를 시작한다.


장례식으로 시작된 노래는 화려한 축제로 만개한다. 긴 테이블에 일렬로 앉은 이들의 군무와 파격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가사는 중독성이 있다. 가사를 뜯어볼수록 빠져들게 되는 넘버이므로 가사를 알고 가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인상적인 가사 중에서도 이 넘버를 관통하는 가사는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창조’가 아닐까. 기존의 것을 의심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틀을 깨부술 때 창조가 일어난다. 마크와 친구들은 기어코 창조하는 삶을 살려는 이들이다.

 

 

 

“어떻게 재요 1년의 시간” - ‘Seasons of Love’


 

[2023뮤지컬렌트] Seasons of Love.jpg

 

 

2막을 시작하는 넘버이자 <렌트>의 가장 유명한 넘버다. <렌트>는 몰라도 이 넘버는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든 출연진이 무대에 일렬로 서서 52만 5600분으로 구성된 1년이라는 시간을 무엇으로 잴 수 있을지 합창하는데,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걸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벅차오른다. 극장에서 직접 보면 2막 시작 직후 산만하던 사람들이 이 넘버가 시작되면서 무대에 빠르게 몰입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1년을 재는 수많은 방법 중 <렌트>는 사랑을 제안한다. 작품에 나오는 세 커플의 사랑은 물론이고 친구들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더 나아가 예술과 이 세상을 향한 사랑까지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 가난과 질병, 추위에 시달리는 <렌트>의 인물들은 얼마든지 냉소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쉼 없이 사랑을 선택한다.

 

사랑이 없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소용 없다는 듯이.

 

*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는 <렌트>의 인물들을 보고 나면 자연스레 나의 한 해도 돌아보게 된다. 유독 연말이면 후회되는 게 많고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도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는 <렌트>를 보는 시간만큼은 후회도 걱정도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이 작품과 함께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는 작년과는 다르지 않을까. 지금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 중인 <렌트>는 2024년 2월 25일까지 계속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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