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모두 다 다르고, 아름답다 - 그림책 숲속을 거닐다

숲해설가의 눈으로 읽은 그림책 속 꽃과 나무 이야기
글 입력 2023.04.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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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숲속을 거닐다』

_곽영미

 

 

표지_그림책 숲속을 거닐다.jpg

 

 

[PRESS]

모두 다 다르고, 아름답다.


 

겨울 동안 희끄무레하고 누랬던 풍경이 무어라 형언하려니 망설여질 만큼 어여쁜 빛깔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난생처음으로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꾸준히 목도했다. 이곳저곳에 난 풀들과 꽃망울을 볼 적마다 봄은 분명 신비로운 계절이라고 홀린 듯이 읊조렸다. 

 

2월 즈음부터 일하는 사이에 틈을 내어 인근 수변 공원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물가에는 메마른 흙뿐이고, 풀들은 누렇게 말라 쓰러져 있고, 나뭇가지들은 잎 하나 없이 앙상했다. 황량한 풍경이었다. 참 볼품없다고 생각했다. 곧 시간이 흘러 봄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꿈도 꾸지 못했던 말간 연둣빛이 고갤 내밀기 시작했다. 다 죽은 줄 알았던 나뭇가지와 땅 위에 반짝이는 잎들이 올라왔다. 생기 어린 꽃과 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말라비틀어진 잎들을 밀어내고 물가를 뒤덮기 시작하더니, 금세 공원을 아름답게 채워 놓았다. 그 느리고도 선명한 변화의 시간 동안, 나는 정말 새삼스럽게도 매일매일 놀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얘네들,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었구나.

 

봄이 완연해지는 동안 식물에게 은은한 관심을 갖고 있던 내 마음도 더 완연해져 갔다. 식물을 닮고 싶다, 식물처럼 살아가고 싶다. 그런 마음.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찾지 못해 막연하기만 했던 마음이 선명해지고 싶어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닮고픈 마음과 더불어 식물들이 사는 세계를 바라보다 보면 내 주변에선 느껴보지 못한 안온함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 이번 봄에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선명해진 건 식물을 마주한 내 마음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림책 숲속을 거닐다』를 만났다. 숲해설가인 저자와 함께 숲속에 사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읽으며 삶에 관한 통찰과 일상 속의 사색을 함께할 수 있는 책. 삶에 관한 통찰을 담은 그림책과 함께 나의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산책길을 열어준 책과의 만남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그 산책길 위에서 '식물을 닮고픈 마음', '식물 앞에서 느낀 막연한 안온함'의 이유를 차근차근 생각해나가던 시간을 함께 기록해보고 싶다.

 

*

 

『그림책 숲속을 거닐다』는 숲속의 이야기를 그려낸 그림책을 읽는 저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꼭 숲이 아니더라도 길 가다 보곤 했던 존재들이 그 주인공이 된다. 벚나무, 민들레, 느티나무, 선인장 등등. 겉모습은 익숙하지만 그 속내는 정작 알 수 없었던 숲속 생명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펼쳐진다. 자신만의 생애를 살아가는 식물의 관점, 그 식물을 바라보던 저자의 시선, 그리고 식물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발견하고 이야기한 그림책이 전하는 메시지까지. 한 존재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들이 글마다 모여 있다. 


 

『벚꽃 한 송이』 는 단순히 꽃이 피고 지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노년의 삶을 사는 주인공을 통해서 삶과 죽음은 하나이고, 과거와 현재가 함께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지는 꽃 안에도 꽃이 피었던 모습이 다 담겨 있는 것처럼, 노년의 삶에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

 

- '당신 안의 눈부신 내면아이 『벚꽃 한 송이』 ' 중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숲속의 숨겨진 이야기들. 숲해설가인 저자는 그림책 속에서 만개한 후에 지는 꽃에서 삶의 찬란함을 발견하기도 하고, 마른 가지만 남긴 겨울나무로부터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의 본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독자는 숲해설가인 저자의 숲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책 속 다채로운 존재들로부터 얻은 삶에 관한 통찰을 마주하게 된다. 숲과 그 속의 생명들을 깊이 이해할 때에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자연 앞에서 만나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나를 향한 사색의 순간들. 『그림책 숲속을 거닐다』는 숲을 덩그러니 지켜보기만 했던 독자에게 자연 속에서 산책하듯 누릴 수 있는 사색의 첫걸음을 안내해 준다. 

 

 

꽃들이 꽃받침을 키워 꽃잎을 흉내 낸 것도, 수술대를 꽃잎처럼 보이게 한 이유는 모두 수정을 잘 하기 위해서다. 식물은 자신의 모든 전략을 씨앗을 만드는 것, 즉 후대를 위해 쏟는다. 꽃의 구성요소만 보아도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갖추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운다. 무언가 하나 모자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누군가와 함께 채우면서 살아갈 수 있다.

 

-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품은 꽃 『꽃밥』' 중에서

 

 

책에서 여러 식물을 만나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풍경들과 저자의 통찰을 읽으면서 글에 서두에 언급했던 안온함을 다시금 느꼈다. 씨앗이 떨어진 곳에서 싹을 틔우면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식물들. 주어진 장소와 주어진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계절과 스쳐 지나가는 사건들을 견뎌내야 하는 식물들만큼 가장 고요하고 부단하게 살아가는 존재도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얼핏 보면 문제없어 보여도 완벽한 환경과 완벽한 조건을 가진 식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를 불완전하다 여길 수는 없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숲에선 각자가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모습들이었다. 대단하지 않은 충분함들이 모여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도 '불완전함'도 정의될 필요 없는 세계가 바로 숲에 있었다. 

 

나 있는 그대로 존재해도 괜찮은 삶. 나 있는 그대로 존재해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는 세상. 각자의 삶의 자리를 무던히 지키면서, 때론 서로의 부족함을 묵묵히 채워줄 수 있는 고요한 협력. 바로 그것이었다. 식물을 닮고팠던 마음의 이유, 식물 앞에서 느끼던 평안함의 이유가. 나도 식물처럼 그렇게 존재하고 또 살아가고 싶었다. '남들보다'라는 타인을 중심에 둔 잣대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어서, 그래서 모두가 달라도 괜찮은 세상이 생각보다 나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책의 서두에서 대단하지 않아도 주인공이 되는 삶을 말한 저자의 말이 그제야 분명하게 이해됐다. 현실에선 허울뿐인 것만 같았던 그 말이, 숲속에선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 모든 그림책에는 '모두 다 다르고 아름답다'라는 공통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한 종의 나무나 풀로 이뤄진 숲보다 다양한 종의 나무와 여러 생명들이 공존하는 숲이 더 건강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비단 숲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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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숲속을 거닐다』를 읽으며 무던히 흘러가는 만큼 아픔이 힐끔힐끔 고개를 내밀곤 하는 일상 속에서 잔잔한 위로가 되어줄 이야기들을 많이 만났다. 미처 들여다보고 알아볼 기회가 없었을 뿐, 숲에는 보고 들을 수 있는 낯설고 새로운 삶의 풍경들이 머물고 있었다.

 

내 자리에서 나의 모습으로 호흡하는 일. 따스한 때가 오면 주어진 삶을 위해 고요한 몸부림으로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영글게 하다가도, 힘을 낼 수 없을 때에는 숨죽여 머무를 수 있는 무던함. 살아있다면 그 모든 순간들에 의미가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도, 그리고 꽤나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식물처럼 규칙적인 계절을 맞이하는 삶은 될 수 없더라도, 주어진 순간들을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기도 하며, 때론 나의 것을 품 안에 가두고서 숨죽여 기다릴 수 있는 나만의 계절을 살아가고 싶다. 이번 도서와의 만남, 그 끝에선 그런 마음을 얻어 간다.

 

더 나은 삶을 조금이라도 바라는 이들에게 삶의 통찰을 얻는 일은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분명한 떨림으로 다가온다. 시선을 돌리면 익숙하게 만나는 생명들로부터 삶에 관한 사색을 길어올리는 『그림책 숲속을 거닐다』는 거창하지 않게, 그리고 다정하게 그런 잔잔한 떨림을 선사해 주는 책이었다.

 

필자처럼 고요한 삶의 모습을 바라면서도, 머무르기보다는 힘을 내어 나로서의 삶을 꾸준히 살아가고픈 이라면 『그림책 숲속을 거닐다』를 추천하고 싶다. 이 도서와 함께라면 아마 당신도 숲속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로부터 삶을 향한 다채로운 사색의 시간을 선물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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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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