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유의 여신상은 이대로 무너지는가 - 장벽의 시대 [도서]

글 입력 2020.04.1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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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사회 문제를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가령 기후문제에 대한 의식이 비교적 고양된 현재, 이젠 우리가 기후문제를 두고 공통의 위기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해도, 여전히 그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는 쉽지 않다.


이는 곧, 기후 위기를 기후만의 위기로 보는 시각에 의한 것이다. 기후 위기가 언제나 정치적 차원의 문제나 사회경제적인 체제 같은 다양한 요소들과 맞닿아있듯, 하나의 문제를 이루는 데는 매번 많은 것이 얽혀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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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마샬의 「장벽의 시대」는 물리적인 장벽 하나에 엉켜 있는 수많은 분쟁과 분열, 갈등을 논한다. 세계의 장벽들이 함의하는 다양한 정치적·사회경제적인 문제들, 그리고 그 배경과 역사까지를 찬찬히 짚어가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세계의 장벽을 중심으로, 저자의 시선을 따라서 지구 한 바퀴를 다 돌고 오면, 우리는 앞으로 뉴스를 통해 스쳐가듯 보게 될 여러 장벽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질 것이다. 장벽에 깃든 수많은 역사와 아픔,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분쟁과 갈등의 이야기는, 높게 세워진 장벽이란 그저 벽이기만 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열흘 만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무슬림 7개국의 국민들이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발동시켰다. 이는 행정명령이라는 독단적인 형태였으며 동시에 극단적인 조치였기에, 행정명령의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찬반여론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또 이와 더불어 그가 대선후보일 때부터 주장해왔던 ‘국경장벽 건설’에 대한 계획을 함께 발표했는데, 이는 무려 3000km의 길이에 높이는 12m며 폭은 3m인 장벽을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 건설하겠다는 엄청난 규모의 계획이었다. 반이민 행정명령부터 국경장벽 건설까지, 트럼프 취임 후 극단적인 변화를 맞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 그런 미국이 폐쇄의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닌지 전 세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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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장벽 건설로 가장 곤란해진 나라는 다름 아닌 멕시코였다. 막무가내로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일방적 통보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트럼프는 국경장벽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을 멕시코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물론 멕시코 대통령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지만, 트럼프는 멕시코 제품의 수입 관세를 20퍼센트 부과하는 것으로 이에 대응했다. 그런 연유로 한때 멕시코에서는 미국의 제품을 보이콧하는 ‘#AdiósStarbucks’ ‘#AdiósCocaCola’ 등의 해시태그 운동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상 이 싸움은 철저히 멕시코에 손해가 막대할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약 2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강대국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설령 세계 무역 전쟁으로 큰 손실을 입더라도, 그 손실에 바로 좌절되지 않고 당장은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었다. 그렇기에 미국이 멕시코에 무리한 요구를 지속하는 건, 강자가 약자를 대상으로 협박을 부리는 행동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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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불법 이민자가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한 것이면서, 나아가 테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주장한 대로 이 장벽건설이 순전히 방법상의 문제로써 제기된 것이라 하여도 이는 과분히 구시대적인 발상이었다.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 궁극적으로 뚫을 수 없는 장벽은 별로 없다. 즉 불법 이민자든 테러리스트든 들어가려는 마음만 있다면 장벽의 위나 아래로,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서구 세계에서의 테러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추세로 미루어 보았을 때, 테러 사건 예방을 이유로 든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의문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가령 2001년 뉴욕에서 발생했던 9·11테러에 미국은 전례 없던 완전한 국경 요새화 프로그램을 개시했었지만, 트럼프가 취임 후 내렸던 반이민 행정명령의 경우엔 정작 9·11 테러와 관련되었던 국가들이 해당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9·11 사태 이후 테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80퍼센트는 미국 시민이거나 합법적인 거주자였으며, 반이민 행정명령에 입국 금지 조치를 당한 국가들에서 40년 동안 미국의 테러 사건과 관련해 처벌받은 사람은 17명뿐이었다.


다른 대통령들은 멕시코와의 국경을 요새화했지만, 트럼프의 장벽은 특별히 분리적이다. 미국 역사에서 특정한 순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장벽 건설의 정치는 단지 멕시코인들을 배척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경은 한 국가를 규정하며, 트럼프의 장벽은 물리적, 이데올로기적으로 무엇이 미국인지를 규정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국경장벽 건설은 물리적인 의미를 넘어 상징적인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다. 반이민 행정명령이 발동했던 당시, 미국 내에서는 자주 반대 시위가 진행됐고 미국의 16개주 법무장관들은 이 행정명령의 위법성을 강조하며 이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이에 트럼프는 입국 금지 조치를 시킨 해당 국가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칭하며 SNS에 글을 게시한 바 있다.

트럼프는 외부국가의 ‘타자성’에 주목하여, 외부인들로부터 ‘미국적’인 문화와 언어, 유산을 지켜내기 위한 결의의 상징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 장벽을 건설한다. 다시 말해 미국인과 비미국인을 분리하겠다는 결의다. 그렇다면 ‘미국적’이라는 건 무엇인가. 미국은 노예제와 같은 시련의 역사 이후 헌법적이고 법률적인 용어로, 시민의 권리와 평등을 보호하고 내적인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 ‘인종의 용광로’와 같은 수식어를 지닌 자유와 민주주의 그 자체인 나라다. 이는 많은 기업과 CEO들이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유, 해방, 평등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완전히 대립되어 건설되는 장벽 앞에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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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만리장성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 북아일랜드-아일랜드공화국 장벽, 미국-멕시코 장벽까지. 언젠가 한 번쯤 국제면 뉴스를 통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피상적인 이해에 그쳤던 이슈들이었다.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를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인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앞서 말했듯 ‘장벽’은 국경선을 가로막는 물리적인 벽 그뿐이 아니다. 벽이 함의하는 바와 그로 파생되는 여러 정치적, 경제적, 계급적 장벽이 우리 사이를 실시간으로 가로막고 있고, 그 주변으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장벽을 부수려는 사람과 막고 지키려는 사람, 그리고 무지의 장막으로 눈과 귀를 가리고 안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제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해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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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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