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영화 「보이 인 더 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을 시작으로 제24회 사오슝영화제 초청, 제2회 오키나와범태평양국제영화제 경쟁, 제17회 헝가리한국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보이 인 더 풀」이 오는 5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보이 인 더 풀」은 수영을 좋아하는 소녀 석영과 물갈퀴를 가진 소년 우주가 만나며,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 멜로 영화다. 「보이 인 더 풀」로 첫 장편 데뷔를 한 류연수 감독은 연출 의도에 대해 “어쩌면 놓쳐버린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도 찬란히 빛났던, 그 시절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첫사랑처럼”이라고 밝혔다.
또한 「보이 인 더 풀」을 통해 댄스 크루 ‘훅’의 멤버 효우가 배우로 변신해 19살 석영 역을 맡았으며, 차세대 배우로 주목받는 이민재가 18살 우주 역으로 첫 스크린 주연을 맡았다. 배우 이예원과 양희원은 각각 2007년의 어린 석영과 우주를 연기하며 극의 감수성을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어디로든 흐르고, 진동하고, 번지는 청춘
석영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엄마를 따라 먼 동네로 이사하게 된다. 석영은 친구들과의 이별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동네도 싫기만 한 사춘기 13살이다. 수영을 좋아하지만 새로 이사 온 동네에 큰 바다가 딸려 있대도 전혀 반갑지 않다. 그러던 중 석영은 새로 등록하러 간 수영장에서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은 작은 남자아이, 우주를 만나게 된다. 석영보다 한 살 어린 12살의 우주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고, 어딘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석영은 바다에서 우주의 도움을 받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그리고 석영은 우주의 발가락 사이에 투명한 막처럼 생긴 물갈퀴가 있다는 비밀을 아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과 수영은 영화의 주요한 소재다. 석영과 우주는 바다에서 결정적으로 서로의 눈에 띄며, 물갈퀴를 감추기 위해 수영장에서도 양말을 신고 다니던 우주는 석영을 통해서 수영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비밀을 공유한 두 사람은 함께 수영 수업을 받거나 수영장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점점 유대감을 쌓아간다.
하지만 두 인물을 특별한 관계로 맺어준 수영은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2007년의 석영과 우주는 함께 수영선수라는 목표를 좇는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현실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은 덜 진지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라지만,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꿈의 좌절에는 면역력이 없다. 한 사람은 주변의 기대 속에서 꿈에 가까워지고, 다른 한 사람은 상실감과 열등감을 겪는다. 그렇게 석영과 우주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GV에서 류연수 감독은 “잔잔한 수면에 물방울이 툭 하고 튀었을 때 일렁이는 파동이 예민한 청소년기와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청소년기는 가장 생생하면서도 가장 연약한 시기다. 물도 그렇다. 어디로든 흘러가고 어떤 형태에도 담길 수 있는 무형의 원소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그만큼 쉽게 진동하고 번져나가는 유약함을 지닌다. 「보이 인 더 풀」은 그 나이대의 미묘한 정서를 물에 빗대어 섬세히 표현해낸다.
재능도 저주일 수 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이루는 두 축은 2007년 여름과 2013년 여름이다. 석영과 우주는 2007년 여름에 만나 짧은 시절을 함께한 뒤, 2013년 여름 고등학생이 된 우주가 석영을 찾아가며 또 한 번의 여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어릴 때의 재능이란 섬광 같은 것,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주 짧은 순간 번쩍이고는 찰나에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게 재능이라는 말이었다. 몇몇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부여되는 특별한 능력과 소질을 재능이라고 부른다는 걸 생각하면, 꽤 일리 있는 말이다. 재능은 선택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재능은 부여받는 양이나 형태, 혹은 그것이 펼쳐지는 상황에 따라서도 언제나 박수받을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족쇄일 수도, 차라리 떼어내고 싶은 무언가일 수도 있다. GV에서 류연수 감독이 언급한 ‘재능의 저주’라는 표현이 유독 오래 머릿속에 맴돈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보이 인 더 풀」은 물갈퀴라는 판타지적 상징을 이 주제를 섬세히 풀어낸다. 석영과 멀어진 뒤,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순탄히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우주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물갈퀴가 옅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갈퀴를 가졌을 때처럼, 그것이 사라져가는 과정도 우주는 통제할 수 없다. 무력감과 혼란, 두려움 속에서 우주는 지역 축제 현수막에 이끌려 옛 동네에 무작정 찾아간다. 수영에 대한 첫 기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인 석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석영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영을 포기하고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석영은 우주의 괴로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흔히 말하는 어중간한 재능도, 한때 완성형처럼 보였던 재능도 결국은 같은 테마 안에서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주를 통해 깨닫는다.
영화의 끝에서 우주는 큰 결단을 한다. 결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나는 우주의 선택에 자신의 재능을 저주로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그 결정은 살을 자르는 듯한 아픔과 결연함이 수반되는 일일지는 몰라도, 그가 스스로를 저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
GV에서 류연수 감독은 매체를 통해 보아온 여러 여름의 환상들을 사랑한다고 밝히며, 청춘을 표현하기에 여름만 한 계절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이 인 더 풀」에는 그가 사랑하는 여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각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석영의 동생과 엄마를 매개로 흘러 들어오는 피아노 선율은 뜨거웠다가 식어버린 여름처럼 아련한 청소년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이 영화의 전체 색감을 결정했다면, 수영장과 물은 그 위에 푸른 필터를 덧입히듯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삶이 꺾였다는 마음에 좌절하고, 패배감을 삼키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혹은 그런 시간을 지나온 이들에게 다가오는 여름, 「보이 인 더 풀」이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시원한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