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는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계절 구분법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해를 24개의 절기로 나눈다. 농경 사회에서 중요한 생활 기준이 되었고, 그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201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25년 10월 18일부터 19일까지, 국립국악원에서는 홍콩무용단의 창작 무용극 「천상의 리듬을 담은 춤-24절기」가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24절기 중 아홉 개의 절기를 골라 그 흐름을 춤으로 표현했으며, 시간의 순환과 생명의 리듬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우리가 흔히 사주라고 부르는 사주명리 역시 24절기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주를 미래를 점치기 위한 수단으로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사주는 오행(목·화·토·금·수)과 음양의 순환, 그리고 계절의 흐름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통찰하는 고유한 사고 체계다. 이 글에서는 공연의 흐름을 따라 24절기의 장면마다 대응되는 사주의 시선을 함께 겹쳐보고자 한다. 이 관점이 「천상의 리듬을 담은 춤-24절기」를 더욱 깊이 있고 풍부하게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경칩(驚蟄) - 축토(丑土), 봄이 너무 먼 사람들
첫 번째 장면의 배경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驚蟄), 양력 3월 5일경이다. 무대 중앙엔 눈 덮인 침엽수처럼 커다란 흰 천을 몸에 감은 무용수 한 명이 서 있고, 네 명의 무용수는 씨앗이나 태아처럼 무대 앞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한 움직임으로 몸을 연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았다. 밤에서 아침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향하는 자연의 변화를 빨리감기하는 연출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지독한 추위 속에 있는 경칩의 장면에서, 나는 사주의 축토(丑土)를 떠올렸다.
축토의 시간대는 양력 1월경으로, 십이지 동물로는 소를, 오행으로는 흙(土)에 해당한다. 이를 하나의 풍경으로 그린다면, 경칩의 한 장면처럼 꽁꽁 언 겨울의 땅이 떠오른다. 생명이 자랄 수 없을 만큼 혹독한 추위와 삭막한 공기가 감도는 대지다. 그래서 축토는 언제나 갈 길이 먼 것 같은 기분이다. 그에게 봄과 여름은 아직 너무나도 먼 것, 하지만 그렇기에 소처럼 성실하고 끈기 있게 봄을 향해 나아가는 글자가 축토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다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발 아래에선 이미 땅을 뚫고 나아가려는 생명이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 성실함 끝에 다음 글자 인목(寅木), 봄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인(寅)월, 양력 2월경은 생동하는 기운과 호랑이처럼 강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누구에게나 봄은 온다. 그 길이 멀고 더뎌 보일지라도, 봄은 틀림없이 온다.
청명(淸明) - 묘목(卯木), 땅 가까이서 피어나는 유연함
그렇게 맞이한 다음 절기는 청명(淸明), 양력 4월 5~6일경이다. 한자의 의미 그대로 하늘이 맑고 밝아지는 시기다. 이 파트에서 무용수들은 완연한 봄의 풍경을 그려냈다. 투명한 소재와 흰 의상에서는 겨울을 벗은 생명들의 가뿐한 무게가 느껴졌고, 손에 들린 짙은 초록빛의 긴 천은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 흔들리는 푸른 잎을 연상케 했다. 사람의 생애 주기로 보자면 유년기 혹은 청소년기와 같은, 순수하고 경쾌한 에너지가 무대를 휘감았다.
사주에서 묘목(卯木)은 양력 3월경, 십이지 동물로는 토끼, 오행으로는 나무(木)에 해당한다. 앞선 인목이 위로 곧게 뻗는 양의 나무라면, 묘목은 옆으로 퍼지는 음의 나무다. 작은 꽃, 풀, 담쟁이넝쿨처럼 낮고 작으며, 장애물을 만나면 그걸 타고 넘어가버리는 유연함을 갖췄다. 수직적인 성장과 성공을 좇는 사회에서는 다소 미약해 보일 수 있지만, 묘목은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또 현대에는 사주에 묘목이 있으면 패션 감각이나 미적 센스가 좋다고 보기도 하는데, 세상의 모든 색을 끌어다 쓰듯 화사하게 반짝이는 이 시기의 자연을 떠올리면 그리 억지스러운 해석만은 아니다. 묘(卯)월을 지나 도달하는 진(辰)월, 즉 진토(辰土)는 생명이 자라기에 가장 좋은 비옥한 땅이다. 촉촉한 수분을 머금고 있어, 본격적인 생장의 계절로 이어지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청명의 무대를 보며, 역시 마음의 옷을 벗기는 데엔 찬바람보다는 따스한 햇살이라고, 금세 마음이 녹았다.
추분(秋分) - 유금(酉金), 비로소 내가 되는 계절

이어지는 여름의 절기는 망종(芒種)과 대서(大暑)였다. 이번 공연의 작곡을 맡은 김철환 작곡가는 인터뷰에서, 여름 파트에 자연재해와 기후 위기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일렉트릭 기타 등 전자 악기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사주에서 여름에 해당하는 오행은 화(火), 불이다. 불에 흔히 연상되는 난색 계열의 밝고 뜨거운 이미지의 연출을 예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짙게 깔린 어둠과 요동치는 바다는 인간이 만든 기후 위기의 결과가 결코 인간과 무관하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스크린 위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장면을 보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가을의 절기는 추분(秋分)과 한로(寒露), 각각 양력 9월 22일~23일경과 양력 10월 8일경이다.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다.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와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 그리고 추분처럼 낮과 밤의 길이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는 왜인지 나 역시 반환점을 도는 기분이 든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이러한 전환점은, 우리의 생 또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김 없이 이어지는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띠를 벗어나기 전까지 우리의 삶에도 하지와 동지, 그리고 추분이 어김없이 오고 또 갈 거라는 사실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무대 역시 가을에 접어들며 한층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앞면은 짙은 남색, 뒷면은 노란빛으로 나뉜 의상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을 직관적으로 표현했고, 계절이 흐름에 따라 의상에도 점점 무게와 부피가 더해졌다. 완연한 봄의 생기로 가득했던 청명과는 달리,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의 시기를 닮은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무대를 감쌌다.
사주에서 가을은 금(金)의 계절이다. 그중에서도 음의 금인 유금(酉金)은 가장 날카로운 기운을 가진 글자로, 아주 섬세하게 제련된 금속 혹은 보석에 비유된다. 깨끗하고 또렷한 아름다움을 갖춘, 마침내 형태를 갖춘 결정체다. 특히 유금이 아름다운 이유는, 한껏 팽창했던 여름의 기운을 수렴하고 다듬어낸 끝에 맺어진 열매이기 때문이다. 유금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나도 이렇게 거품을 걷어내고 밀도 높은 무언가를 맺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가을과 유금은 수렴하고 응축하는 힘의 가치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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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겨울이 온다. 새하얀 눈이 대지를 덮듯, 무대의 절반 이상을 감쌀 만큼 커다란 흰 천이 펼쳐진다. 그 천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듯 무용수의 몸에 감기며, 공연의 시작에서 마주했던 그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으니, 이 겨울은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새로운 겨울일 것이다. 그런데도 1시간 전 처음 마주했던 겨울의 침엽수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안을 준다. 이어서 사뿐히 내려앉았다가 녹아 사라지는 눈송이처럼, 무용수들이 시간차를 두고 무대에 등장하고,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원을 그리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눈이 땅에 닿는 순간을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듯 나 역시 그 장면에 집중하게 된다.
순환하는 24절기와 계절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 또한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은 자연 앞에 겸허해지게 하고, 그 여정 안에서 몇 번이고 틔워낼 싹과 그 열매들은 우리 안에 정말이지 무한한 시작이 잠재해 있음을 되뇌게 한다. 또 미래가 찬란하기만 할 거라는 기대와 바람은 어쩌면 어리석다. 대신 들쭉날쭉할 인생 곡선을 그릴 준비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내가 앞으로 그 곡선을 어떤 모양으로 그려갈 것인지에 집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