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직전, 과거의 수치스러운 기억이 불쑥 떠올라 이불을 걷어차는 이른바 '이불킥'은 현대인에게 일종의 서글픈 루틴이다. 분노나 슬픔 같은 수많은 부정적 감정 중에서도 유독 '굴욕'이 이토록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가장 취약한 '사회적 평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웨인 케스텐바움의 에세이 《굴욕》은 누구나 감추고 싶어 하는 이 은밀한 감정의 지하실을 기꺼이 활짝 열어젖힌다.
"굴욕이란 인격의 지하실인 것 같고 계단 밑에 쌓아둔 쓰레기 더미인 것 같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굴욕이란 '자아'의 자기인식을 위한 길을 내는 선행 사건이다."
작가의 이 선명한 선언처럼, 굴욕이 온전히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 주체가 요구되는데, 바로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목격자의 삼각관계가 그것이다. 타인의 굴욕은 언제나 구경거리가 될 준비를 마친 채 전시된다. 동경과 존경보다 시기와 질투가 훨씬 쉽고 빠른 오늘날, 타인의 부진과 추락은 그 어느 것보다 자극적인 오락거리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SNS나 연예 기사를 스크롤하며 누군가의 스캔들과 실패를 열광적으로 소비하고 목격자의 자리를 자처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나의 온전함을 타인의 굴욕을 통해 값싸게 확인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굴욕이 단순히 피하거나 조롱해야 할 오물이 아님을 집요하게 논증한다. 라틴어 어원에서 인간(humanus)과 굴욕(humiliatio)이 같은 접두사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곧 세상에 태어난 이상 굴욕을 겪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책은 어릴 적 학대를 당했던 마이클 잭슨의 모욕적인 몸수색부터,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알몸으로 피라미드를 쌓아야 했던 이라크 포로들, 그리고 출판사에서 원고를 거절당하거나 화장실에서 동료의 배설 소리를 엿듣게 된 작가 개인의 남사스러운 에피소드까지 그 스펙트럼을 종횡무진한다. 가벼운 일화와 역사적 비극을 병치하는 '푸가(Fugue)' 형식의 서술 앞에서 독자는 때로는 묘한 우월감을,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공감성 수치를 느끼며 당혹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수치스러운 감정이 활자 너머로 전염되는 것은, 지금 당장은 내가 안전한 목격자의 위치에 서 있을지라도 언제든 굴욕의 제단 위에 오를 수 있는 예비 피해자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굴욕을 그저 수치스러운 감정으로 은폐할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조건으로서 서늘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밑바닥의 감정인 굴욕은, 그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마주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적 연대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 작가가 자신이 겪은 흑역사를 낱낱이 고백함으로써 획득하는 이른바 '속 뚫림 작용'은, 숨길 것이 없어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처절하고도 자유로운 해방감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타인이 겪는—혹은 겪을지도 모르는—굴욕의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온전히 가닿을 수 있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것들 또는 느낄지도 모르는 것들을 상상함으로써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느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느낌—우리는 다 굴욕의 가장자리에 살고 있는 만큼 언제라도 그 모진 굴욕의 나라로 추방당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느낌—에 대해서 배운다." (30쪽)
책 속에서 작가가 식료품점에서 장애 여성을 보며 실제 발생하지도 않은 굴욕의 먹구름을 감지했던 것처럼, 타인의 취약성을 헤아리는 일은 우리의 시선을 한 차원 깊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바닥까지 곤두박질쳐 본 경험이 타인을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재료가 되는 셈이다. 상처 입은 자들만이 서로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듯, 굴욕을 경유하여 타인의 몰락에 함부로 돌을 던지지 않는 자비심이야말로 메마른 현대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일 필요가 있다.
책장을 덮으며 우리는 비판과 자조가 뒤섞인 무한한 굴욕의 사이클 속에서 하나의 결연한 다짐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굴욕을 방관하는 구경꾼이 되지 않겠다는, 나아가 누군가에게 고의로 굴욕을 가하는 가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엄숙한 맹세이다.
굴욕 없는 세상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불가능한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책의 말미, 공항에서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사춘기 소녀의 굴욕을 목격하며 작가가 느꼈던 참담함처럼 굴욕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불편하고 낯뜨거운 판도라의 상자를 기꺼이 열어보아야 하는 이유는, 타인의 수치심에 공명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 내면의 가장 고결한 인간성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타인의 몰락 앞에서 함부로 비웃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진흙탕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자들의 손을 맞잡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잔인한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끝끝내 지켜내야 할 가장 강력한 연대의 방식임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