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웨인 케스텐바움: 미국의 작가이자 문학, 예술, 음악 등 대중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동경과 존경보다 시기, 질투가 더 쉽고 빠르다. 타인의 부진과 실패, 추락과 몰락은 그 어느 것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이며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것에 은연중 가슴을 쓸어내리다 안심하게 되는 묘한 교훈과도 같은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 사람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남 잘돼서 배 아픈 건 절대 못 참는다고 할까.
그것만큼 못난 일도 없을 거다. 물론 나까지 포함한 얘기다. 비교가 만연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탓도 분명히 있다. 환경이 ‘굴욕감’ 느끼기 딱 좋게 세팅되어 있다. SNS는 본인의 변변찮음을 자꾸만 확인 받는 절망의 창구이기도 하다. ‘적당히’도 힘든데 다들 날라다닌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끊임없이 묻게 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수시로 쪼그라드는 내 모습은 어쩐지 굴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묘한 건 그 절망의 창구에서 가끔씩 희망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쇼츠나 개인 브이로그 영상을 통해 자신의 실패담 내지는 망한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거나 지지를 받는다. 나의 굴욕을 먼저 까 보이는 일로 순식간에 낯선 타인과 연결된다. 남 일 같지만 내 일 같기도 한 것. 너무 잘되면 보기 싫고, 망하는 건 또 위로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모순이 정녕 인간의 본성이란 말인가.
이쯤에서 든 생각 하나. 우리는 왜, 이토록 타인의 흥망성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왜 거기서 번번이 굴욕을 느끼고 살까?
이 질문에 적당한 답이 되어 줄 만한 책을 발견했다. 바로 <굴욕>이라는 에세이집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 <굴욕>은 미국 작가이자 문화비평의 대가인 ‘웨인 케스텐바움’의 굴욕 연구 결정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굴욕 사건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사회 고발 같고,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 같다. 배설, 인종차별, 체벌, 가정, 학교, 일터, 리얼리티 쇼 등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치욕스러운 일들을 예시로 들며 타인의 굴욕을 서슴없이 전시하고 소비하는 미국 대중 문화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마이클 잭슨 TV 인터뷰(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던 그는 아동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출두해 얼마나 모욕적인 몸수색을 당했는지에 대해 털어놓았다고)와 이라크인 포로들이 수용소에서 찍힌 사진(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알몸인 이라크인 포로들이 인간 피라미드를 쌓은, 그 옆에서 미군 병사들이 웃고 있는 사진이 보도됨) 이야기,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남사스러운 자신의 굴욕 경험을 저자는 독자에게 아주 세세하고 친절하게 공개하고 있다.
작품은 비교적 가볍고 익살스러운 해프닝과 실제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나란히 놓음으로써(*푸가 방식=대위법적 모방의 악곡 형식) 이들의 연결성을, 굴욕 안에 숨겨진 중요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별 거리낌없이 무감각하게 타인의 굴욕을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와 우리네 미디어 문화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구간은 굴욕이 성립되는 전제 조건이었다. 굴욕이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라는 세 사람의 관계로부터 정립된다는 점이 새로웠다. 삼각관계라는 단어는 사랑싸움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세 사람의 입장을 골고루 경험해보았던 과거를 떠오르게 해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타인에 대한 비밀스러운 정보를 혼자만 알게 됐다는 데서 느끼는 묘한 우월감, 메인 포털의 연예 기사를 대충 한번 훑어봄으로써 생기는 조회수 1 등 어쩌면 우리는 굴욕이 실현되는 과정에 알게 모르게 전부 동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꼭 물리적인 폭력을 뜻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의도가 없었더라도, 주의를 기울였다 할지라도 은연 중 내가 한 생각, 내가 준 시선이 굴욕을 가하는 데 동력이 되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이에 저자는 굴욕 없는 세상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개인적 성찰은 필요한 행위임을 아래와 같이 당부하고 있다.
p.28
우리가 윤리적 개개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굴욕을 최소화하고, 굴욕을 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제의 윤리를 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맹세하자. 남에게 일부러 굴욕을 주는 일은 삼가겠다고. 내가 그런 끔찍한 일에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 당장 그만두고 입장을 바꾸고 죄를 바로잡겠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굴욕 없는 세상이 가능해질까? 끔찍한 상황에 대해서 쓸 때는 환상이 깨진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나는 거창한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라틴어 어원에서 같은 접두사를 공유하는 굴욕(humiliation)과 인간(humanus). 마치 세상에 태어난 이상 굴욕을 겪는 건 피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가장 밑바닥의 감정이기에 가장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인 ‘굴욕’. 굴욕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안겨 주지만 제대로만 뒤집힌다면 인간적인 연대가 가능한 감정이다. 내가 바닥까지 겪어 보았기에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더 깊이 헤아리는 일에 나의 굴욕감들은 좋은 재료가 되어 준다. 지하실 계단 밑에 굴러다니는 골치 아픈 쓰레기 더미로만 취급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저자는 굴욕에 대해 끊임없이 계속 이야기한다. 그것이 곧 굴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거절 당하고, 어느 시인에게 선물한 서명본 책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게 되고, 화장실에서 동료가 큰 일 보는 소리를 엿듣게 되는 등 듣기만 해도 낯뜨거운 저자의 굴욕 목록이 책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공항에서 사춘기 여자애가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목격했던 심정도 함께 언급되었다. 그녀가 느꼈을 굴욕감에 대한 안타까움, 굴욕의 세상에 발을 들이고 만 소녀를 염려하는 의미로 저자는 자신의 책을 헌정한다.
굴욕의 면면을 들여다보다가 어지러워졌다. 비판과 자조와 성찰의 무한 사이클일뿐, 굴욕은 멈추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말 그대로 영원의 영역. 새로 써 내려갈 굴욕 앞에서 웃프고 힘 빠지고 찝찝한 기분을 느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굴욕에는 진정성이 있지 않냐는 아래의 문단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p.87
나는 굴욕이 중요하다는 것을, 굴욕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굴욕을 성찰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없다. 굴욕이 중요한 건 굴욕이 유익하거나 재미있거나 바람직하기 때문이 아니다. 굴욕에는 지긋지긋하고 참을 수 없는 없는 면이 있을 수 있지만, 거짓말로 꾸며낼 수 없는 면도 있다. 점점 가짜로 채워지는 듯한 세상에서 굴욕은 적어도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