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 한복판에 검은 구멍 하나가 뻥 뚫려 있다. 매끄럽게 잘 닦인 표면 위에서 유독 그 부분만 결이 다르다. 손을 대보면 반짝이던 매끄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종이 특유의 거칠거칠한 촉감이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그 구멍 속으로 눈을 바짝 들이대고 안을 좀 들여다보라고, 책이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굴욕’이라는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실 굴욕이라고 하면 일단 피하고만 싶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건 단순히 고개를 돌리고 싶은 부끄러움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곁눈질하고, 자극적으로 소비하며, 때로는 나도 모르게 그 흐름에 슬쩍 발을 담그기도 하는 묘한 감정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그 구멍 속을 함께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문장을 채워 나간 셈이다.
다양한 수식어로 꾸며내는 ‘굴욕’
미국의 문화비평가 웨인 케스텐바움은 이 책에서 굴욕을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틀로 바라본다. 굴욕은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피해를 본 사람, 상처를 준 사람,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피어나며, 언제나 ‘남에게 보이는 모습’과 깊이 관련된다. 즉 굴욕은 마음의 상태이기 이전에 하나의 장면이며, 그 장면은 누군가의 시선이 닿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굴욕은 침착되고, 축적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굴욕적인 사건들이 쌓일수록 굴욕감은 점점 심해진다. 굴욕은 나무처럼 자라고 꽃처럼 피어난다. 그렇게 쌓여서 썩어들어 간다. 무더기로.” (p20-21)
이 대목에서 책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과 맞닿는다. 우리는 타인의 실패나 실수, 몰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명인의 스캔들부터 누군가의 우스꽝스러운 실수까지, 굴욕은 이제 개인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즐기는 구경거리가 된다. 누군가의 무너짐이 하나의 즐길 거리가 되고, 우리는 어느새 이를 지켜보는 ‘목격자’가 된다. 문제는 그 목격자의 자리가 결코 공정하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케스텐바움은 이 불편한 부분을 끈질기게 붙잡는다. 우리는 타인의 굴욕을 보며 안쓰러움과 불편함을 느끼는 동시에, 묘한 흥미와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반복해서 보고 즐기며 더 단단해진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해진다. 우리는 왜 그토록 타인의 굴욕을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질문에 도덕적인 정답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굴욕이 일어나는 여러 장면을 나란히 보여주며 독자를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대중문화와 역사, 개인적인 기억이 뒤섞인 글쓰기는 마치 하나의 음악처럼 반복되고 변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세 가지 자리를 오간다. 때로는 피해자가 되고, 때로는 지켜보는 이가 되며, 때로는 자신이 이미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모두의 무너짐을 걱정하고 있다. 나눈 우리 모두의 자제심 상실을 걱정하고 있다. 문명인이라는 우리의 겉치장-우리가 점잖고 깨끗하다는 환상-은 언제라도 금이 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무너짐은 어느 쪽에서든 굴욕적일 것이다.” (p95)
굴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질문에 오래 붙잡혔다. 과연 나는 어떤 감정이나 단어, 혹은 사건 하나를 이토록 끝까지 밀어붙여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케스텐바움은 ‘굴욕’이라는 단어 하나를 붙잡고, 단어의 뿌리부터 철학적인 사유, 개인적인 기억과 예술적 장면들까지 끝없이 넓혀 나간다. 그 집요함은 단순한 분석을 넘어선다. 마치 하나의 감정을 조각조각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처럼, 굴욕은 이 책 안에서 끊임없이 얼굴을 바꾼다. 어쩌면 이 책은 굴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 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과정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 문장의 뜻을 따지는 게 아니라 감정의 결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작가의 굴욕이 그대로 나의 부끄러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편함은 책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솟아오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저자가 말한 굴욕의 구조를 몸소 느끼게 된다. 글 속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오지만, 읽는 이는 결코 안전한 울타리 밖에 머물 수 없다. 독자는 지켜보는 이가 된다. 하지만 그 시선은 결코 깨끗하지 않다. 때로는 피해자에게 마음이 쓰이고, 때로는 그 장면을 즐기는 순간 가해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이 복잡한 구조 안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셈이다.
푸가처럼 반복되는 감정
이런 경험은 이 책의 형식과도 닮아 있다. 이 책은 한 방향으로 쭉 뻗어 나가는 논리적인 글이라기보다, 같은 주제가 반복되고 변주되는 음악적 형식에 가깝다.
하나의 주제가 나오고, 그것이 다양한 목소리로 되풀이되며 조금씩 모양을 바꾼다. 굴욕이라는 감정 역시 그렇다. 같은 기분이지만 매번 다른 얼굴로 나타나고,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울려 퍼진다. 독자는 그 반복 속에서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간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수선하게 느껴지던 글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이 되풀이는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라 굴욕이라는 감정을 입체적으로 겪게 만드는 장치라는 것을.
다시, 그 검은 구멍으로
이런 독서 경험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책의 알맹이다. 굴욕은 단지 없애야 할 기분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조건이다. 저자가 말하듯, 굴욕은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는 첫 번째 사건’이기도 하다. 즉 굴욕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책에서 말하듯 우리는 기분이 개운치 않은 독자가 된다. 그렇게 ‘굴욕’을 읽는 독자가 된다.
여기서 다시 표지로 돌아가 보자.
검은 구멍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구멍을 통해 타인의 굴욕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결국 그 안에서 내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굴욕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코 남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기에 있다. 굴욕을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굴욕을 지켜보는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