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한참 지난 어느 삼월. 오랜만에 한강공원 벤치에 앉았다.
가방에서 살포시 매거진 타이핑을 꺼내든다. 그림자는 진 벤치 너머로 뜨거운 햇빛이 볼을 파고들었다. 이따금씩 자전거 페달 소리, 강아지들 발걸음 소리가 귓가에 스몄다. 실내에서만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야외로 나오니 생경한 기분이었다.
손끝으로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서른일곱 분의 글을 읽었다. 글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인 각자의 경험담들을 읽으며 ‘아 나도 이랬었지’ 고개를 끄덕이기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경험 조각들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는데 ‘다들 글을 정말 사랑하구나’ ‘쓰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느끼구나’ 각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거진 주제 ‘타이핑’이라는 소재가 마음에 들었다. 아트인사이트와 엘엠디엘프레스의 협업으로 창간된 매거진 타이핑은 역으로 내게 질문을 하게 했다.
‘나는 왜 쓰는가?’ ‘맨 처음 글을 쓸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 ‘글을 쓸 때 꼭 행복하기만 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나를 더 성찰하게 했다.
가끔 다른 에디터 분들의 글을 보며 저분들은 어떻게 글을 쓰셨을까? 다른 사람에게 글쓰기란? 내가 인터뷰어가 된다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이 몇 가지 있었다. 매거진 타이핑은 그에 대한 대답을 품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글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결정체 그 자체다. 생각하고 느끼기만 하면 의미 없이 지나가는데 글을 쓰게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다. 금방 날아가는 감정들을 메모해 두면 ‘아 내가 그랬었지’라고 회상할 수 있다. 그러니 글쓰기는 특별할 것도 거창할 것도 없었다.

매거진 타이핑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중간중간 브릿지 페이지에 적힌 조각 문장들이었다.
글쓰기의 출발점과 초안을 다루는 드래프트, 실수와 실패, 되돌림의 과정을 기록한 Ctrl+Z, 에피소드로 구성된 Margin note. 우리가 실제 타이핑을 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좋은 표현이나 생각은 다시 한번 읽기 위해 포스트잇으로 페이지를 따로 체크해뒀다.
단순한 글만 엮은 게 아니라 Typing이라는 콘셉트가 꽤나 재밌었다. 이 밖에도 에세이 외에 아트인사이트의 창립자 박형주 대표님의 인터뷰도 매우 흥미로웠다. 인터뷰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있는데 아트인사이트 탄생 배경과 운영 철학과 개인적 배경들을 읽으며 플랫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아트인사이트 라는 공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형식에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생각을 존중해 주는 곳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쓰는 글은 형식과 제약이 많이 따랐다. 사수가 해 온 방식대로 사수의 사수가 했던 일련의 순서와 규칙이 존재했다.
내가 생각하는 건 A인데 그게 아니라 B라고 못 박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 네 방법과 생각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큰 혼란을 겪었다.
물론 회사에서 하는 글쓰기는 자유와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진짜 내 글을 쓰려고 하면 업무용 글과 진짜 내 생각에 교란이 오며 혼란스러웠다. 그러니 아트인사이트 플랫폼은 진짜 나를 쓸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돼 주었다.
사르트르는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다. 고로 살아가면서 어떤 행위나 행동들을 통해 나를 빚어내고 있다. 그래서 나 또한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