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돋우는 향긋함에 반하다
추운 겨울이 눈 녹듯 사라지고 봄이 찾아왔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커튼을 걷자 따스한 햇살 들이 일렁이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나는 뭐든 계절을 타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그런데 유독 계절을 타면서 먹으면 더 흥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미나리다.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았을 때는 채소를 많이 먹지 않았다. 지금도 굳이 ‘먹는 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자’가 내 생각이지만. 한번 꽂힌 음식은 자주, 많이 먹는 편이다. 그 음식이 미나리다.
계절에 상관없이 먹지만 제철에 먹으면 풍미가 두 배다. 추운 겨울에는 미나리 샤브샤브, 수육 사리로 미나리를 올려 먹었다. 다른게 미나리 요리가 아니다. 찌개나 국, 육수에 미나리를 넣고 익히면 ‘미나리 샤브샤브’가 된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고기와 버섯도 같이 넣어 먹는다. 미나리를 좋아한 탓에 미나리 전문 식당도 찾아다녔을 정도다.
어렸을 때는 미나리, 쑥, 달래 등 산 나물이 입에 쓰기만 했던지. 외할머니가 한 입 맛보라 하면 얼굴을 찌푸리며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강산이 변하고 입맛이 바뀌었는지 없어서 못 먹는다. 미나리 샤브샤브, 미나리 전, 미나리 삼겹살… 한 입 베어 물 때 나오는 코와 입을 웃도는 향긋함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
특히 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 미나리를 같이 먹으면 느끼한 맛이 마법처럼 사라진다. 미나리 대를 씹을 때 아삭아삭한 소리가 경쾌하다.
물에서 나는 산삼
해독과 혈액 정화에 좋은 미나리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언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는지,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눈여겨보게 된다. 미나리는 동의보감에서 말하길 해독작용을 돕고 몸을 맑게 하는 식재료다. 예로부터 피를 맑게 해줘 귀하게 여겨 궁중에 진상했다고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성균관 주변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먹을 미나리를 많이 재배했다고 한다.
미나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알고 보면 재밌다.
「미나리」는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나물을 뜻하는 ‘나리’란 말이 합쳐진 단어다. 그럼 미나리가 물에서 자란다는 것인가?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그렇다. 미나리가 물을 좋아하는 습지식물이란 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깨끗한 물에서 자라는 미나리는 ‘물에서 자라는 산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운을 복 돋우는 채소다. 깨끗한 물에서 자라면 자연스럽게 영양분과 미네랄을 흡수한다. 술 마시고 붓고 속이 아프다면 해장국, 해장라면 대신 된장에 미나리 팍팍 넣은 미나리 된장국을 추천한다. 간 해독과 피로 회복성분이 있으니 몸을 맑게 해 줄 것이다.
생명력 甲 미나리
미나리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없을까 검색하던 중 영화 ‘미나리’ 내용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유독 눈에 띄는 글귀가 들어왔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다” 미나리는 줄기를 잘라 밭에 던져 놓으면 자리를 잡아 바로 자라난다고 한다. ‘생명력’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만든 미나리라는 영화는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미나리에 빗대어 표현했다고 한다. 미나리의 어원부터, 이야기, 끈질긴 생명력까지 맛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어떠한가?
맛도 있지만 멋있는 음식 미나리. 제철에 먹으면 맛도 풍미도 배가 될 미나리의 향연. 오늘은 봄을 느끼러 미나리국을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