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쓰기 어려운 글은, 글에 대한 글이다. 그중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글이다. 글을 글감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텍스트가 다시 다루어질 만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고, 그것이 내가 작성하는 2차 텍스트보다 우등함을 확인하는 행위다. 뒤집어 말하면 나의 글이 그 텍스트보다 열등함을 마주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훤한 필력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글쓰기에 진지하다. 그렇기 때문에 잘 읽히는, 또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써내게 된 것임을 안다. 따라서 글쓰기에 대한 글은 최강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의 활자들을 보고 있을 때 한없이 위축되는 마음은 몇십 번의 기고를 거듭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아트인사이트와 엘엠디엘프레스의 협업으로 탄생한 매거진 <타이핑> 1호는 그런 의미에서 펼쳐보기 두려운 글 뭉치였다. 또 어떤 문장들이 나를 짓누를까. 그러나 막상 내가 본 것은 글감을 고심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던 내 모습, 잘 쓰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던 내 모습, 쓰기의 문제를 마주한 내 마음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Draft
초고, 글쓰기 실험
글이 시작되던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에디터들은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겠느냔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섹션인데, 정혜린 에디터의 <내향인의 글쓰기>가 참 와닿았다. 내게 글은 말로 미처 하지 못하는 잉여 감정의 표현과 같다. 말로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면 말로 했을 것이다. 숫기가 없다던 이 내향인 에디터는 ‘보편화된 혼잣말의 방식’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마음껏 제 얘기를’하고, ‘생김새 없는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 글에서만큼은 솔직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또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글에서조차 완전히 솔직해지지 못해 부끄러운 내 양가감정을 이 에디터의 글에게 정확히 들킨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여전히 옆에 두는 마음도 나의 것과 비슷해 애정을 담아 읽게 되었다.
또 ‘글쓰기가 내게 소중했던 만큼 내가 쓴 글이 성에 차지 않을 때면 미치도록 괴로웠다’는 백소현 에디터의 문장도 낯선 감정이 아니다. 이 꼭지에서는 쓰는 이들의 초고에 담긴 노고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단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Ctrl + Z
회고, 실수와 실패에 관한 기록
타이핑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축키인 Ctrl + Z를 통해 잘못 쓴 문장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의 실행 취소는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실수를 어떻게 지울지, 또는 지울지 말지를 머뭇거리는 순간, 지워버렸어야 하는 문장, 수정과 글쓰기의 관계 등등을 통해 결국 쓰는 행위가 내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도달하고 있다.
Margin Note
바깥의 이야기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글쓰기 바깥의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일화들을 모아두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심심치 않다. 메모장 대신 연필로 글쓰기 시작한 사람, 단어 하나로 글이 채워지기 시작한 사람, 글태기를 겪은 사람, 글쓰기에 대한 사랑의 역사를 말하는 사람 등이 모여있다. 다른 에디터들이 글을 쓰며 어떤 일들을 경험해 왔는지 엿볼 수 있다.
글쓰기의 과정과 각 단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의 순서대로 구성된 타이핑 1호는 쓰는 사람이라면 백번 공감할 매거진이다.
결국 글을 좋아해서 글 때문에 괴로운 이들이 곳곳에 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묘한 연대감과 위안이 든다. 모두의 글에서 내 모습의 부분 부분을 조금씩 발견한다.
쓰는 괴로움보다 쓰지 않는 괴로움이 더 큰 사람이 작가가 된다고 했다. 쓰는 괴로움을 선택한 모든 글쓴이들은 또 다른 나다. 우리는 각자 글을 써내지만 실은 모두가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