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글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나지만, 어쩌면 내 글을 가장 많이 읽게 될 사람도 역시 나라는 생각. 글을 세상에 내보내는 이유야 물론 더 많은 독자에게 닿고 싶어서겠지만, 그에 앞서 반드시 환심을 사야 할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내 글을 질릴 만큼 반복해서 읽고, 집요할 만큼 깐깐하게 읽을 독자인 나 자신이다.

   

글은 퇴고 과정에서 이미 몇 번이나 읽는다.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고치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같은 글을 여러 번 읽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출력된 글이 제대로 들어갔나 다시 읽고, 며칠이 지난 뒤에는 마치 남의 글을 처음 읽듯 거리를 두고 읽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도 참 마음에 든다 싶은 문단이 생기는데 대개는 형태 없이 떠다니던 무언의 감각이 활자로 실체를 얻을 때가 그렇다. 막연히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고만 생각했던 감정이 비로소 온전한 내 것이 될 때. 가끔은 너무 많이 읽은 탓인지 원래부터 이렇게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생각이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이 생각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아래는 그런 순간에 쓰인 글의 문단을 발췌했다. 어떤 생각의 경로를 지나왔는지, 그때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를 다시 따라가 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아래의 글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도 물론 있지만, 나를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Opinion] 여행을 완성하는 건 - 한 달 간의 프랑스 [여행]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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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Travel’이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날의 감정이 휘발되지 않도록 매일 짧게 기록한 일기들이 그 제목 아래 묶여 있다.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보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더 많이 등장한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다정함이 문장 안에 살아있다. 지명이나 랜드마크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은 감정과 온기는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는다. 낯선 도시의 작은 꽃 한 송이가 그러했듯, 여행이란 결국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여행을 완성하는 건 - 한 달 간의 프랑스」 중

 

 

이 글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지내던 날들의 끝자락에서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기록을 다듬어 엮은 것이다. 하루 단위의 일들은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나지만 막상 여행이 끝난 뒤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가물가물했다. 그 탓에 글을 쓸 적에도 본문을 거의 다 써놓고도 결론을 맺지 못해 한참을 붙들었다.

 

괜히 결론을 짜내기보다 마지막에 넣을 사진부터 고르자는 마음으로 갤러리를 보다가 가장 아끼는 사진 한 장을 다시 보게 됐다. 프랑스 어느 소도시 정원에서 건네받은 들꽃 몇 송이가 담긴 사진. 프랑스어로 적힌 쪽지가 함께 적혀 있지 않았다면 이곳이 프랑스인지 한국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평범한 사진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사진이 좋다. 꽃이 특별해서는 아니다. 사진을 보고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 때문이다. 꽃을 주저 없이 꺾어 건네주던 아주머니와 기쁘게 받아 들던 나. 원활한 소통도 어려운 타지에서 이방인에게 자신의 정원에 핀 꽃을 선뜻 꺾어줄 수 있었던 마음과 행여나 꽃 이름을 궁금해할까 싶어 종이에 적어 함께 쥐여주던 세심함.

 

그제야 여행의 끝에 당연하듯 따라온 따뜻한 감정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에피소드의 내용도, 마지막에 고른 한 장의 사진도 결국은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흩어져 있던 문장이 하나로 정리되었고 결론을 쉽게 낼 수 있었다. 글을 쓰다 답이 불쑥 찾아온 듯한 이 문단을 여전히 가장 아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Opinion] 어떤 카페를 좋아하세요? [공간]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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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간이라면 어떨까. 공간이야말로 그 사람과 어느 정도의 친밀함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다.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간 이가 어떤 감각과 분위기를 지닌 공간을 좋아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렇기에 공간은 누군가의 삶 속의 깊숙한 부분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건은 경제적 여유나 현실적 제약에 따라 차선책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사람의 취향을 100%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공간 역시 돈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야외의 개방된 공간이나 부담 없이 가는 카페와 도서관만 보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감도나 취향을 짐작하기란 제품보다 훨씬 정확한 편에 속할 것이다.

 

- 「어떤 카페를 좋아하세요?」 중

 

 

이 글을 블로그에 옮기면서 조그맣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처음엔 카페 소재로 긴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적다 보니 할 말도 많고 내 생각보다 훨씬 확고한 기준이 있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평소에 쓰는 글이 아닌지라 더 즐겁게 썼다. 역시 글이라는 건 적어보기 전에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나는 이 소재로 이렇게까지 길게 쓸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카페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에게 그건 어디까지나 ‘좋아한다’는 감각의 영역이지 길게 논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취향이라고 적어놓은 기준들이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건 아닐까, 막연한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은 가벼웠다. 좋아하는 공간 몇 군데를 언급하고 내가 선호하는 분위기를 정리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문장을 이어가다 보니 예상외로 할 말이 많았고, 무엇보다 쓰는 동안 재미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 공간은 왜 좋았고, 어떤 공간은 왜 다시 찾지 않게 되었는지,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편안함을 느끼는지… 자주 간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던 취향에 나름의 철칙과 원칙이 있다는 사실도 퍽 우스웠다. 나조차 모르고 있던 나를 따라가서일까. 이 글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가장 남의 글처럼 읽히는 글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내 글 중에서도 가장 잘 읽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 역시 유독 재미있게 읽어주었다. 일상에 맞닿은 소재 덕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유난히 덜 꾸몄고, 덜 망설였다. 생각나는 대로, 다만 솔직하게 적었다. 쓰는 사람이 힘을 빼니 읽은 사람도 힘을 빼고 읽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쓰는 사람이 덜 망설인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도 덜 버겁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배웠고 그 이후로는 글 앞에서 최대한 솔직해지고자 했다.

 

 

 

[Opinion] 한 편의 글을 쓰기까지 [사람]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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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교 멘토 선배님이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가장 힘들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기일수록 아주 작은 목표라도 세우고 그것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활동 하나쯤은 꼭 가지고 있으라고. 그게 요즘의 나에게는 글쓰기였다. 글을 쓰는 일은 분명 괴롭지만,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괴로웠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든, 해야만 하는 말이든. 수많은 단어를 백지 위에 쏟아내며 내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꺼내 놓을 수 있었으니까.


- 「한 편의 글을 쓰기까지」 중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보낸 첫 4개월은 유난히 정신이 없었다. 일에 적응하랴, 평소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도전하랴… 바쁘다는 말로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마감일이 성큼 다가오면 목을 조여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산더미 같은 할 일을 잠시 미뤄두고 시간을 쪼개가며 원고를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글쓰기가 그 시기의 나에겐 유일한 숨구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디터 활동의 마지막 글을 준비하며 ‘글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정보를 전하는 글이나 무언가를 분석하는 글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글을 대하는지, 실제로 쓰는 과정은 어땠는지, 그럼에도 왜 계속 쓰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지금 보면 가장 사적인 영역을 꺼내놓은 글이라 조금은 날 것이다. 예쁘게 포장하기보다 그때의 마음을 최대한 담으려고 했다. 그래서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괜히 민망한 구석도 있다. 굳이 여기까지 말해야 하나 싶은 문장도 있기도 하고.

 

하지만 더욱이 그 이유 때문에 이 글을 마지막으로 선정했다. 가장 잘 다듬은 글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솔직한 글이라서. 그리고 그 시기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문장이라서. 이토록 서툴고 고집스러운 과정을 나는 꽤나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고, 고쳐야 할 것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책상 앞에 앉아 백지가 까만 글자들로 화면에 빼곡히 채워질 때까지. 그렇게 오늘의 글을 쓰고 다음의 글을 쓴다.


- 「한 편의 글을 쓰기까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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