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스타그램이 ‘2년 전 오늘’이라며 나에게 스토리 하나를 보여줬다. 이코노미석의 조그마한 창문 사이로 보이는 저녁노을 사진 한 장. 사진 위에는 ‘KR → FR’이라는 조그만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간을 되감듯 스크롤을 쭉 올리다 멈춘 곳은 2023년 7월. 족히 50장쯤 되어 보이는 한 달간의 사진 속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근심도, 걱정도 없어 보이는 얼굴. 웃을 일보다 무표정한 날이 많은 요즘의 나로서는 그 표정들이 참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불과 2년 전인데도 사진 속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2023년 6월 27일, 부모님 곁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떠난 날이다. 그전까지 나는 한 달 이상 집을 비워 본 적이 없었다. 늘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춰주셨던 부모님 덕에 자취나 기숙사 생활을 할 필요가 없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도 집에서 충분히 통학이 가능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교는 왕복 3시간이 넘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됐지만. 인생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내는 경기도민에게 그 정도는 악으로 깡으로 버틸 만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국내 여행을 가기 위해 일주일쯤 집을 비운 적을 제외하면, 낯선 곳에서 한 달간 홀로 지내는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는 한 달 가지고 유난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나름 빅이슈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때 다녀온 프랑스 어학연수는 지금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던 한국 사회를 잠시 떠나 처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의 간섭도, 평가도 없는 곳. 학업도, 인간관계도,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잠시 내려놓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들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때때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에서 더 깊은 위로를 받기도 했던 시기.
2023년 프랑스의 그 뜨거웠던 여름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랑으로 가득 찬 계절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좋을 수밖에 없었던 그 여행을 더 좋게 만들어주었던 순간들을 회고하려고 한다. 그저 옛 추억 하나로 흘려보내지 않도록, 찰나의 아름다웠던 순간에 지나지 않도록 그날의 시간을 글로나마 붙잡아 두려고 한다.
인연의 시작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장소나 날씨보다도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 당장 프랑스로 다시 간다고 해도 그때만큼의 친절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마주친 사람들―그들이 현지인이든 관광객이든 상관없이―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고, 덕분에 하루하루가 인류애 충전의 연속이었다.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거라는 기운은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 경유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복도부터 창가까지 순서대로 한국인 남성, 친구, 그리고 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필이면 여행 며칠 전 팔을 다친 친구와 옆에서 돕던 나, 우리 둘 다 물통 하나 열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을 때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자리 남성분이 조용히 뚜껑을 열어주셨고, 그 작은 소동을 계기로 스몰톡이 시작되었다.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그분이 우리보다 두 살 많으시다는 것,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목적지, 다른 경로, 다른 이유로 떠나는 세 사람이 한 비행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는 남성분과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다 문득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 순간이 많이 기억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좋은 인연이 시작된 걸까?
첫인상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 30kg짜리 캐리어를 끌며 지하철로 향하던 길이었다. 플랫폼과 열차 사이에는 제법 큰 간격이 있었고, 캐리어를 들지 못하면 그대로 문이 닫힐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긴 경유 시간에 지친 탓이었는지, 한 달 치 짐을 한 캐리어에 눌러 담은 욕심 때문이었는지 혼자 캐리어를 옮기기에는 무리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서너 명의 사람들이 다가와 너도나도 캐리어를 들어주려 했다. 결국 문이 닫히기 전 무사히 캐리어를 열차 안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기야 하겠냐만. 적어도 이 일 이후로 프랑스는 내게 좋은 첫인상을 남긴 나라로 각인되었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다고들 하지 않나.
이 좋은 첫인상은 여행의 첫날에도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짐을 풀고 몽마르트 언덕을 가기 전 사랑의 벽을 찾았다. ‘사랑해’라고 적힌 한국어 문구 아래에서 친구들과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던 중이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외국인 관광객 두 명이 다가와 자신들이 가져온 폴라로이드로 우리를 찍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단체 사진을 남기지 못하고 각자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걸까. 사진을 찍는 내내 연신 귀엽다며 웃어주던 그들은 방금 인화된 따뜻한 온기가 담긴 사진 한 장을 선물로 건넸다.
그 밖에도, 튈르리 정원 잔디밭에서 촬영하는 나를 향해 깜찍한 포즈를 취해주던 커플, 한국어로 “예쁘다!”며 다가와 가방을 앞으로 메라고 조언해 준 그림 그리던 할아버지, 아파트 주민도 아닌 우리에게 먼저 “Bonsoir” 인사를 건네던 동네 주민, 프랑스어로 주문하는 우리에게 프랑스 사람이냐고 장난스럽게 묻던 카페 사장님까지. 여행의 시작이었던 파리에서 보낸 나흘 동안 모두가 이방인인 우리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서점 주인 아저씨
좋은 인연의 기운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라로셸에서도 이어졌다. 라로셸 시내의 골목 끝에는 우리가 자주 드나들던 작은 서점이자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라로셸에서의 추억을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종종 발걸음을 옮기던 우리의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라로셸에서의 마지막 날, 친구가 서점 주인 아저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동행했다. 며칠 전 서점을 찾은 친구에게 책도 골라주고 결제까지 친절하게 도와주신 일이 있어서였다.
몇 번의 짧은 방문뿐이었지만 서점에 들어서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자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시며, “너를 만나게 되어서 좋았어. 언젠가 네가 여기 라로셸을 다시 오는 날, 서점을 찾아온다면 난 널 기억할 거야. 만나서 반가웠고, 한국으로 조심히 돌아가.”라며 떠나보내기 아쉬우셨는지 비슷한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작별 인사를 하러 온 친구도 안 울었는데 그 말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무거운 캐리어에 이리저리 치이며 피멍 범벅이 된 다리에도, 폭염 속 선풍기 하나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씩씩하게 버틴 나였는데. 몇 번 본 아저씨의 그 짧은 말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오렌지 멜론
나는 한 달간의 여행 중 딱 두 번 울었다. 첫 번째는 라로셸 서점이었고, 두 번째는 연수를 마친 뒤 일주일간 들른 영국에서였다. 프롬히즈 공원을 가던 길에 무인 아마존 식료품점을 발견해 오렌지 멜론 하나를 사려던 참이었다. 아마존을 이용해 본 적이 없던 우리는 앱에 등록된 카드가 없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굳게 닫힌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던 우리에게 경비 아저씨가 다가왔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니, 너희는 똑똑하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며 계정 만들기를 도와주셨다. 처음에는 혹시 필요도 없는 앱을 억지로 가입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 하고 경계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저씨는 나의 의심과 다르게 친절하셨다. 목마르지 않냐며 물도 떠다 주시고, 로딩 중에는 핸드폰 배경화면에 있는 딸 사진을 보여주며 딸바보 모먼트를 보여주시기도 했다.
20분이 넘게 도와주셨지만, 결국 한국 카드는 등록 자체가 되지 않아 계정을 만들지 못했다. 실망한 얼굴로 가게를 나가려던 찰나 아저씨는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우셨다. 무엇을 사려던 거냐고 물으시기에 그냥 과일 하나 사러 왔다고 대답했다. 잠시 고민하시더니 자신의 카드로 문을 열고는 얼른 들어가서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오면서 아저씨 카드로 자동 결제가 되었고, 내가 현금으로 드리겠다고 해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받을 생각이 없으니 대신 비밀로 하라며 등을 떠밀며 “Just go”만 연신 외치셨다.
감사한 마음에 인근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사 들고 다시 아저씨를 찾아갔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시던 아저씨는 내 고집에 못 이겨 결국 커피를 받으셨다. 손키스를 날리며 우리를 배웅한 뒤,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노년의 할아버지에게 “Have a good day!” 인사와 함께 커피를 건넸지만, 퇴짜를 맞고는 머쓱하게 다시 들고 가셨다. 우리를 본인의 딸처럼 느끼셨던 걸까. 그리고 아저씨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오렌지 멜론은 정말이지 천국의 맛이었다.
프랑스의 어느 소도시,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집 앞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었다. 낯선 꽃이었지만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다. 마침 그 집에 살고 있던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꽃 한 송이를 꺾으셨다. 그러고는 프랑스어로 꽃 이름을 적은 쪽지와 함께 내 손에 쥐여주셨다. 예상대로 꽃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시들었다. 하지만 그날 아주머니가 아무 망설임 없이 꽃을 꺾어 쥐여주시던 순간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연수를 떠나기 전, 내가 기대했던 건 전부 장소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요컨대 파리의 화이트 에펠은 실물로 보면 얼마나 예쁠까, 런던의 타워 브리지는 얼마나 웅장할까 같은 것들.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Travel’이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날의 감정이 휘발되지 않도록 매일 짧게 기록한 일기들이 그 제목 아래 묶여 있다.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보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더 많이 등장한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다정함이 문장 안에 살아있다. 지명이나 랜드마크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사람으로부터 받은 감정과 온기는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는다. 낯선 도시의 작은 꽃 한 송이가 그러했듯, 여행이란 결국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