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한 지도 어느새 석 달이 흘렀다. 지원서를 앞에 두고 어떻게 써야 뽑힐 수 있을지 고민하던 게 불과 넉 달 전의 일이다. 최근 새 기수 모집 공지가 올라오면서 블로그에 에디터 모집 안내 글을 올렸다. 검색창에 ‘에디터 합격’을 입력하고는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글을 읽던 나는 이제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글과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일을 말해준다면 아마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활자보단 움직이는 화면과 더 친한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시기의 나 역시 글과 전혀 무관한 아이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일기나 독후감은 종종 반 친구들 앞에서 읽혔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글과 그림 중 택하라면 늘 그림을 골랐음에도 선생님들은 내 글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셨다. 대학교에 들어와 영화 감상을 기록하려 만든 SNS 계정은 예상보다 많은 팔로워를 모아 어느새 그들과 글로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에디터라는 이름을 달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의 글쓰기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어진 것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서 자원한 활동이었다. 글을 잘 쓰니까, 보다는 정말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합격 문자를 받았을 때는 그동안 품었던 반문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2주간의 수습 기간을 마치고 받은 에디터 명함 앞에서는 작은 자긍심을 느꼈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흘러 글을 쓰는 일상이 점차 익숙해진 지금. 그토록 바라던 에디터 활동에 대한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 현재 글을 작성하는 시점 총 18편의 글을 썼지만, 애석하게도 그중 정말 마음에 드는 글은 다섯 편도 채 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재를 억지로 붙잡고 끙끙댄 적도 있었고, 마감에 쫓겨 퇴고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맞춤법 오류를 남긴 적도 있었다. 쓸 때는 괜찮다고 여겼던 문장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어딘가 엉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강제로 시작한 활동이 아닌 이상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는 탓도 분명 있었을 테다. 애정을 느끼는 만큼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까.
이번 글에서는 에디터 활동의 막바지가 다가오는 만큼 그동안 글을 어떻게 써왔는지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글을 놓지 않을 것이라면 되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롯이 나의 의지로 시작한 글쓰기이기에 더더욱 필요한 작업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다시 읽게 될 미래의 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단단하고 깊은 문장을 쓰고 있기를 바라며.
소재
글을 쓸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언제나 소재였다. 하얀 화면을 켜둔 채 깜빡이는 커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몇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어떤 사람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메모장에 주제 리스트를 따로 적어둔다는데, 반대로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괴로운 편에 속했다. 이유라면 요즘 들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다. 학부 시절에는 한 해에 백 편이 넘어가는 영화를 보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것저것 시작한 일이 많아지면서 영화를 볼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물론 공연이나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우선순위에 밀려 다음을 기약하는 말로 미루기에 바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아니라면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 그때부터 의도적으로라도 다른 주제의 글을 쓰려고 했다. 아트인사이트에는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었고, 그중 내가 쓸 수 있는 한에서는 최대한 많은 카테고리의 글을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음악적인 지식도, 미술적인 소양도, 독서량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독자가 어떤 배경과 관심을 가지고 내 글을 읽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자료조사 작업을 거쳤다. 이건 설령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글
소재가 정해지면 글은 한 번에 쭉 써 내려가는 편이다. 전체적인 흐름이나 구조는 머릿속에 있지만 문장을 어떻게 엮을지, 어떤 결말로 매듭을 지을지는 미리 정하지 않는다. 그저 생각의 방향을 따라 문장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 보면 막연하던 생각이 언어로 구체화하기도 하고, 하고 싶었던 말도 툭툭 내뱉게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보면 예상대로 흘러간 글도 있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글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괜찮다. 완성도가 높으면 다행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써내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나를 포함한 독자 모두가 보게 되는 건 결국 과정이 아닌 결과물로서의 글이 될 테니 말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된 글들은 어떠했는가. 서두에서도 말했듯, 마음에 드는 글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결국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 글이 많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유를 굳이 나누자면 둘 중 하나였다. 지나치게 솔직했거나 혹은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거나. 감정을 과하게 풀어내 공감을 놓친 글도 있었고, 반대로 생각을 끝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글도 있었다. 그 두 지점의 균형을 잡는 일은 지금도 어렵다. 다만 어렴풋이 느끼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솔직했던 글이 오히려 낫다는 사실이다. 좋은 글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글이 더 깊어지고 읽는 이의 마음에도 오래 남는다.
마감
매주 글을 기고한다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스스로를 성실한 편이라 여겨왔기에 마감에 쫓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마감에 쫓긴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이번에는 또 무슨 글을 써야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실 글을 쓰는 일의 절반 이상은 소재를 정하는 데 쓰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닷새는 소재를 고민하느라 흘러갔고, 남은 이틀 동안 글을 완성하느라 늘 시간에 쫓겼다. 그러다 보니 퇴고할 여유는 늘 턱없이 부족했다. 잠을 줄여 새벽까지 원고를 붙잡고 있다가 다음 날 일하러 가는 대중교통 안에서까지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적도 많았다. 어떤 날은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글의 방향을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쓴 적도 있었다. 그 결과 미완의 제목으로 남겨진 파일들이 지금도 몇 개 남아있다.
평생 남을 글이라면 적어도 내 마음에는 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독자를 의식하기 전에 글을 쓰는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라면 거의 완성된 원고라도 과감히 버렸다. 동일한 맥락에서 쓰던 글이 도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소재에 손을 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때로는 퇴고할 시간조차 부족해 찜찜한 마음으로 글을 기고할 때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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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글이 예상대로 반성문에 가까워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족스러웠던 순간들보다 그렇지 못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있다면 여전히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언제나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믿음만큼은 버릴 수 없다.
예전에 학교 멘토 선배님이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가장 힘들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기일수록 아주 작은 목표라도 세우고 그것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활동 하나쯤은 꼭 가지고 있으라고. 그게 요즘의 나에게는 글쓰기였다. 글을 쓰는 일은 분명 괴롭지만,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괴로웠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든, 해야만 하는 말이든. 수많은 단어를 백지 위에 쏟아내며 내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꺼내 놓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고 반응을 얻을 때는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준다.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볼 것, 헤드라인과 인기 글에 올라볼 것. 활동과 함께 세워두었던 작은 목표들을 하나씩 달성하며 느꼈던 성취감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고, 고쳐야 할 것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책상 앞에 앉아 백지가 까만 글자들로 화면에 빼곡히 채워질 때까지. 그렇게 오늘의 글을 쓰고 다음의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