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어릴 적에 제목이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의 장면을 스쳐가며 본 적이 있다. 폐쇄된 공간에 어떤 사람이 의사들 혹은 간호사들로부터 억압되어진 상태로 강제로 눕혀져있었고, 그 사람은 거세게 반항했지만 머리에 이상한 게 씌워지더니만 전기 충격을 받고 고통 받아하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이 한동안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아 문득 문득 소름끼쳐 했었다. 그리고 그게 과거 정신병원에서 이루어졌던 치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정신 병원이 일반 병원에 비해 인식이 안 좋은 것 같다.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나 미디어에서 다루는 정신병 환자들의 모습이 지극히 좋지 않으므로 정신병 자체에 대해서도 꺼려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본인의 마음이 힘들어도 언제 어떻게 그 이력이 부정적으로 적용될 지 몰라 정신과에 가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항상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 라고 하지만 실상은 환영받지 못하는 정신과. 그렇다보니 정신과에서 어떤 치료를 하는지, 정신 병동은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많이 알려진 바 없는 것 같다. 필자도 호기심에 정신 병동에 대해 알아보다가 전기 충격이 여전히 유효한 치료 방식이나 과거와 달리 국소적인 부분에만 환자 동의 하에 이루어지므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심지어 그게 안전한 방식이라 하니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트라우마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정신 병동에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 입원해있는 행위가 어떤 식으로 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지 궁금해졌다. 필자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은 아마 이 책으로 호기심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될 것이다.

 

 

의미들_앞표지_띠지.jpg

 

 

<의미들: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은 작가 수잰 스캔런의 회고록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에 의한 상실감으로 자살 시도를 했고, 그 이후 3년 간 정신 병동에 입원하였다. 그녀는 그 경험과 경험 속 문학과 광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를 정의한다. 그녀가 정신 병원에 입원하며 받은 치료는 기억을 되찾는 것에 중점이 되어있었다. 이 '되찾은 기억'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방법론으로 실제 존재했던 것이지만 그것이 그녀에게도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이 '기억 만들기'를 통해 산출된 '화학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들은 다양한 약물을 처방했지만 저자는 우울과 양극성장애 등에 대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환자 위주가 아닌 의학의 연구, 병원의 경영에 초점을 맞춘 치료는 그녀에게 치료가 아닌 억압을 선물해주었고, 자아를 이해받는 게 아닌 진단받고 규정짓는 듯한 행위에 대해 저항하게끔 만들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살기 위해 병원에 갔지만 병원은 그녀를 더욱 병들게 만들었다. 그저 '미친 여자'가 된 것이다.


저자는 이 '미친 여자'에 대해 문학적인 해답을 찾았다. 그녀와 같은 '미친 여자'가 만들어낸 문학 작품들을 통해 그녀가 가진 광기가 문학과 어떻게 결합이 되고, 어떻게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그녀는 문학이 광기를 담아내어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무엇'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직조해내는 그릇으로 이해하였다. 저자는 특히 샬롯 퍼킨스 길먼,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등 과거를 살았던 여성 작가들을 인용하며 본인을 그 광기의 연장선으로 이해하였다.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들이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을 '히스테리'로 진단해 억압하는 시대에 살았던 여성 작가들은 그 광기라는 언어를 문학으로 표현해냈다. 예를 들어 울프가 당시 '이상함'으로 낙인 찍힌 정신과 공간에 대한 독립에 대해 거론한 것은 히스테리가 아닌 여성의 자유에 대한 문학적 외침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잰 스캔런은 정신병을 앓고 정신병동의 경험을 가진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언어 삼아 문학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곧 자기 치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미친 것이 아니라, 표현할 언어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수잰 스캔런은 또한, 정신병원에서의 '치료'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회복하는 것은 정신병을 극복하여 본래의 자아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치료는 단순히 진단과 처방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환자였던 시절 그녀는 안전하고도 억압된 병원에서 자아를 잃고 오직 '사회로의 복귀'를 강요받았다. 그녀는 회복하고 싶었지만 침묵을 강요받고, 특히 여성 환자라면 순응하고 차분해야 한다는 관행이 있었음을 밝힌다. 과연 정신병원에서의 치료가 효과적이었을까? 그녀는 문학을 통한 이야기, 글을 통한 자신의 서사화가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치료이자 회복이었다고 밝힌다. 글쓰기와 글을 통한 성찰은 결국, 본인을 글로써 재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서사화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녀는 글을 통해 광기를 써내려갔고, 그것으로 자기 자신과 다시 마주하고 해석하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 곧,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진 것이다.


수잰 스캔런이 남들에 비해 특별한 경험을 해서 정신병을 앓게 된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상실을 상당히 일찍 겪게 되었을 뿐이며 비슷한 경험을 했음에도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사람들은 훨씬 많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 지 모르는 '광기'가 사람의 삶을 파고 들 때, 치료가 아닌 회복을 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고, 그 근거로 여성 작가들을 인용하였다. 그녀의 생각이 답이 아닐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판과 의견은 각자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답이 되고, 본인이 어느 때라도 광기를 갖추게 될 경우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필자는 따라서, 이 <의미들>이라는 책이 가진 의의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통해 자기 성찰을 수행하고 정신적 건강을 추구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당신의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주변인이 있을 수 있다. 필사적으로 숨기거나 혹은 말하면서 덤덤해하는 그들도 그 광기에 대한 제어를 할 방법을 몰라 고민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 의지가 되고 싶으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글쓰기를 추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적어도 이 책을 추천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으로 그들에게 진정한 의미로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명함_컬쳐리스트.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