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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상자를 쥐고 남겨진 사람들 - 상자 속의 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by 황수빈 에디터
2026.08.14 14:26

상자 속의 양


 

죽은 사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와 그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그리고 그 경계에서 파생되는 철학적 고민. 사실 『상자 속의 양』이 다루는 문제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질문들은 오래전부터 SF 장르에서 숱하게 다루어져 왔으니까. 하지만 이번 각본집을 읽으며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과거의 SF가 주로 가정법에 기반한 사고실험으로 제시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점점 경험적인 차원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올지도 모를 미래를 막연히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그 시급성이 더해지는 요즘이라면 고전적인 질문일지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혹은 독자)의 태도 역시 이전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감독은 죽은 사람을 생성형 AI로 되살리는 한 프로젝트에서 이번 작품을 착안했다고 했다. 자연스레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떤 가수의 목소리로 만든 AI 커버 음원을 처음 들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음색과 창법, 발음과 습관까지 정교하게 재현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것이 '진짜' 같을수록 반사적인 경탄과 동시에 무력감이 따라왔다. 분명 그 사람의 목소리인데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이제는 기술을 통해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충돌했다. 존엄에 대한 고민이 따라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일상적으로 AI를 활용하곤 한다. 기술을 접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처음의 거부감은 조금씩 옅어지고, 이제는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보다, 막을 수 없는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덮어두고 거부하기보다는 결국 그 흐름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이다. 『상자 속의 양』 속 휴머노이드 역시 그런 시대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다만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결국 더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라는 소재를 매개로 ‘남겨진 사람들’, 다시 말해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감상이 무엇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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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쥐고 남겨진 사람들


 

우선, 완성된 영화에 앞서 각본집의 형식으로 먼저 작품을 접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경험이었음을 밝혀둔다. 영화가 주로 ‘보여주기’의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각본에는 인물이 어떤 심정으로, 어떤 톤으로 대사를 뱉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비교적 명확한 지침이 있다. 영화에서는 배우의 표정이나 목소리, 카메라의 움직임과 공간의 이미지가 대신 전달했을 감정을 각본에서는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러한 완결성이 오히려 감상의 여지를 해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같은 이야기라도 각본집과 영화는 완전히 같은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체가 달라지고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필연적으로 다른 경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자 속의 양』처럼 시각적인 상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에서는, 각본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려낸 장면과 실제 영화가 구현한 이미지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건축 아틀리에와 인물들이 살아가는 집, 휴머노이드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려낸 꿈의 집처럼 공간 자체가 이야기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감독이 직접 그린 콘티와 인물 설정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로웠다. 촬영과 편집을 거치며 인물 설정이 추가되는 등 결정고의 내용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는 대목까지 읽고 나니, 글로 쓰인 이야기가 배우와 공간, 이미지와 만나 하나의 영화가 되어가는 과정의 한 단면을 들여다본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각본집을 통해 인물들의 마음을 꼼꼼히 들여다본 뒤, 이야기를 재차 곱씹어 보았다. 부부인 오토네와 켄스케는 전차 사고로 일곱 살 아들 카케루를 잃었다. 하지만 같은 죽음을 마주한 두 사람이 카케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같지 않다. 오토네가 그것을 사고라고 생각한다면 켄스케에게 그것은 사건에 가깝다. 그리고 카케루의 모습과 기억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그들의 삶에 들어온다. 같은 사람의 죽음을 두고도 각자가 바라보는 카케루의 모습이 달랐듯, 같은 휴머노이드의 행동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카케루의 부재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카케루의 환생을 본다.

 

작품은 이처럼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휴머노이드 카케루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라, 카케루를 기억하는 이들이 각자의 마음속에서 그를 어떤 존재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곱씹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상실을 이야기하는 여러 작품들이 밀도 있게 담아내던 이야기를 『상자 속의 양』은 약간의 환상적인 색채와 아련함, 잔잔함 속에서 그리고 있다. 특히 가족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섬세한 시선이 더해지면서, 휴머노이드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결국 시선이 향하는 곳은 인간의 삶과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삶은 그 자체로 애도의 과정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잃은 뒤에도 남겨진 사람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이 작품에서 휴머노이드는 그 삶에 끼어든 낯선 존재이면서 동시에,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작품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제목의 ‘상자’의 의미였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흡족해한 것은 솜씨 좋게 묘사해낸 여러 장의 양이 아니라, 결국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 속의 양이었다. 카케루와 카케루의 기억과 모습을 가진 휴머노이드, 그리고 그 휴머노이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관계 역시 상자 속의 양과 맞닿아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언제나 실제의 그 사람과 완전히 같을 수 없다. 내가 그 사람과 어떤 관계였는지, 어떤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에 따라 기억 속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진다. 카케루와 휴머노이드. 둘 중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가려내기에 앞서, 오토네와 켄스케에게는 결국 카케루가 그들 각자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곱씹는 과정이 필요했다. 누군가를 보내주기 위해서는 결국 무엇을 보내주어야 하는지가 확실해야 하니까.

 

생전의 카케루와 똑같이 전차의 역 이름을 외는 휴머노이드의 모습이 켄스케에게는 카케루의 부재를, 오토네에게는 카케루의 환생을 연상시킨 것처럼, 같은 존재를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무엇을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죽은 카케루였다면 ‘내가 없는 편이 행복해?’와 같은 잔혹한 말을 내뱉지 않았을 것이라는 오토네의 말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 말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보다 오토네가 기억하고 있던 카케루의 모습이 어땠는지다. 휴머노이드 카케루는 결국 각자가 기억하는 카케루를 '제대로' 마주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곱씹음의 과정에 결국 휴머노이드 카케루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을 보면, 우리는 여전히 그런 선명한 계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마음속에서 시작된 애도일지라도, 그것을 밖으로 끌어내어 마주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다만 지금의 시대에는 그 상자를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와 얼굴뿐 아니라 말투와 습관까지 재현할 수 있고,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사람의 모습을 다시 현실에 불러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기묘했던 것들이 어느새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태초에 상자 속의 무엇을 볼 것인지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보다 선명하게, 혹은 희미하게 하는 것들까지 우리의 손에 더욱 단단히 쥐어진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상자 속의 양』은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얼마나 닮을 수 있는지를 묻는 이야기라기보다, 그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사랑하며 무엇을 보내줄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로 오래 남았다.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끝내 확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자 속의 정답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를 가늠하는 마음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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