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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행동과 일상 그리고 책임 [도서/문학]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무심코'의 일들을 저질러왔는가

by 최승윤 에디터
2026.09.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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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일이 생각지도 못한 파장을 몰고 올 때가 있다. 눈앞의 일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에 몰두해 진정한 본질은 잃어버린 채 말이다. 그 순간은 우리 모두의 처음에 있다. 김세희 소설가의 「가만한 나날」은 주인공 경진이 광고대행사의 첫 출근을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블로그 후기 마케팅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회사에서 후기 전용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면서 경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재화 언니가 경진에게 해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진은 회사 첫 출근 전날에 우연히 회사원인 재화 언니를 만나고 조언을 듣는다. “너 자신을 프로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도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난 도움이 됐거든. 신입이어도 난 아무것도 몰라, 난 초짜야,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프로야, 나는 프로페셔널해 마음가짐을 그렇게 갖는 거지. 난 이 일을 프로답게 해낸다, 그런 자세로다가.” 그리고 경진은 실행했다. 일하는 동안 프로의 자세를 유지했다. 의욕적이고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어째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을까. 문제는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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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진은 리뷰 광고를 올리기 위한 블로그 주인을 설정해야 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실재하는 인물인 것으로 설정해 다양한 상품과 공간에 대한 후기를 올리고 업체로부터 수익을 얻는 구조로 일을 굴러간다. 경진은 그 인물을 ‘채털리 부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채털리 부인은 D.H. 로런스의 소설 「채털리부인의 연인」 속 주인공이다. 사냥터지기와 불륜을 나누는 내용을 통해 단순히 잘못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을 자신의 선택을 통해 구성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경진은 자신이 만든 인물(채털리 부인)로서 블로그에 후기를 작성하며 활동의 힘과 폭을 넓혔다. (채털리 부인의 상징성을 대입시켜보자면 여기까지는 경진이 선택을 시작하기 위한 시야의 성장이 이뤄지기 전이라고 볼 수 있다.)

       

      경진은 입사 동기 두 명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 그 중 한 명은 중간에 그만두었다. 그러나 경진만은 상사에게 ‘경진을 보고 배우라’는 칭찬을 들을만큼 일에 있어 뛰어난 결과물을 낸다. 재화 언니가 말했던 것처럼 어느새 경진은 프로의 단계에 도달해 최선을 다해 임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문제의 베일은 벗겨진다. 채털리 부인, 즉 경진이 몇 년 전 올렸던 광고 게시물 속 뿌리는 살균제에 심각한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이었다. 채털리 부인에게 메일을 보내온 인물은 살균제 속에 포함된 독성 물질로 인해 갓난 아기를 잃었고 다섯 살 아이는 평생 산소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하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경진은 자신이 그 물건을 광고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이 남긴 후기를 가장한 광고 문구 ‘아기 있는 집이라면 무조건 추천이에요.’ 역시 기억하지 못한다.

       

      경진은 일 처리능력이 좋았고 회사내에서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일을 잘 끝마친다는 것, 그 단순하고 명료한 일이 진실을 위배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일을 수행하는 성취감에 취해 그 일이 추후에 요구할 책임감에 대해서는 헤아려보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메일을 보낸 이는 경진을 질책하기 위해서 연락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채털리 부인을 완전한 실존 인물로 믿었고, 따라서 질책의 의도가 아닌 같은 피해자로서 진실을 알고 있는지 물어오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경진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가져야 했던 책임감과 더불어 죄책감까지 배로 가해졌을 것이다.

       

      일을 겪고 난 경진의 세상은 이제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을까. 나중에 우연히 일을 그만두었던 입사동기를 만나게 된 경진은 그에게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했던 과거의 말을 정정하고 싶은 마음에 휩싸인다. 생각없이 저지른 행동에 따른 책임감을 깨닫게 된 경진의 세계는 변화했다. 이제 그는 과거 자신이 회사에서 했던 업무를 당당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경진은 후회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경진이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에서, 자신의 행동에 큰 책임과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계기가 된다. 나무를 보던 시야에서 숲을 보는 시야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을 지나는 우리의 모습과 닿아있다. 미숙한 내가 당장 눈 앞의 일을 잘 해내는 것에 우선하다가 본질을 잃게 되는 것, 그리고 나의 부족했던 생각 탓에 일어난 문제들을 바라보며 책임과 본질을 깨닫는 것. 이 과정이 모두의 초년생 모습 안에 존재한다.

       

      이 소설은 우리의 처음, 그리고 책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책임은 생각지도 못한, 지나치게 사소하고 별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것에서 불씨가 옮겨붙을 수 있다. 제목에서 ‘가만하다’는 뜻을 헤아려본다.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는, 손을 쓰지 않는 상태다. 가만하지만 가만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면서부터 우리는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행동과 일상과 책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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