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dore Chasseriau, Macbeth and three Witches(1855, 90x72cm, 오르세미술관)
제1막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Macbeth)》는 세 마녀의 등장으로 막을 올린다. 마녀들은 천둥과 번개 속에서 비밀스러운 계략을 꾸미고, ‘맥베스가 코더 경이 될 것’이라는 첫 번째 예언을 실행시킨다.
[맥베스]
두 개의 진실이 말해졌다. 제왕을 소재로 한 연극 전개의 행복한 프롤로그로.
이 초자연적인 유혹은 나쁠 수가 없어, 좋을 수도 없어.
나쁘다면, 왜 주겠는가, 진실로 시작되는 성공의 보장을?
맥베스는 주변으로부터 ‘용감하며 운명을 경멸하는 자’라는 평판을 듣는 인물이었으나, 이 강력한 예언은 어느새 그의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온화하고 흠결이 없는 덩컨의 친척이자 총애를 받는 신하로서 현재의 위치에 만족할 것인가? 예언이 불을 붙여놓은 욕망의 뜻에 따를 것인가?
맥베스의 마음은 이미 야망으로 가득 차올랐지만, 그럼에도 그는 주저한다. 맥베스 부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위대함과 야심에 따라붙어야 할 사악함’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맥베스 부인]
두려운가요, 당신,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욕망과 같아지는 일이?
당신은 그것을 원하고 그것을 삶의 장식물이라 평가하시면서도,
당신 자신의 평가로는 겁쟁이로 살 건가요,
‘난 감히 못해’가 ‘나는 하겠어’를 시중들게 하면서,
물고기를 원했으나 발을 적시기 싫은 소심한 고양이처럼?
높아지길 바라면서 또한 성스러워지길 바라는 마음. 맥베스는 바로 이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그에게 맥베스 부인은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욕망과 같아지는 일'이 두렵냐며 겁쟁이로 살 것이냐고 꾸짖고, 맥베스는 마침내 덩컨을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제2막
Henry Fuseli, Lady Macbeth Seizing the Daggers(1812, 127x102cm,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맥베스]
거대한 넵튠의 온갖 대양이라면 씻어낼 수 있을까, 이 피를 내 손에서 깨끗이?
아닐걸, 이 손이 오히려 광대한 바다를 물들일 거다,
붉게, 푸른색을 온통 붉게.
2막에서는 드디어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공모한 ‘덩컨 왕 암살’이 실행된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이 함께 저지른 것이지만, 맥베스와 그의 부인이 보이는 태도는 매우 상반된다. 맥베스는 살인이 일어나기 전인 2막 1장에서부터 ‘돌들이 나의 행방을 수다 떨까 봐 두렵다’라고 말하며 강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살인을 저지른 이후에는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며 ‘딱한 꼴’이라며 탄식한다.
맥베스 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맥베스의 손은 ‘붉게’ 물들었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있던 것이다.
하지만 맥베스 부인은 달랐다. 그녀는 살인이라는 행위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이 실행되지 못해 의도가 우리를 파멸시키는’ 상황을 우려한다. 그녀에게 이 살인의 목적은 분명하기에, 살인은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며 살인 그 자체에 대한 상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온갖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맥베스에게 바보 같은 생각 말라며, 물로 이 더러운 증거를 씻어내라고 다그친다.
[맥베스 부인]
비수는 왜 가져왔어요, 거기서? 거기 뒀어야죠, 가요, 가져가세요,
그리고 피칠하세요. 잠든 그 시종들을 피 칠갑하세요.
[맥베스]
더는 안 갈 거야. 한 짓을 생각하는 것조차 겁나는데, 그걸 다시 보다니 난 못 해.
[맥베스 부인]
그렇게 의지가 박약해서야! 비수를 내게 주세요,
잠든 자와 죽은 자들은 그림에 불과해요.
이 살인의 시작은 맥베스의 편지였지만, 그 과정은 모두 맥베스 부인에 의해 주도된다. 맥베스는 이 살인으로 인해 자신의 ‘잠’이 살해되었다며 온갖 죄의식에 사로잡히지만, 맥베스 부인은 ‘이런 일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간 미쳐 버릴 것’이라며 살인은 그저 대의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준다.
만약 부인이 없었다면 맥베스가 이 모든 일을 실행할 수 있었을까? 나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붉은 손과 심장’을 모두 가진 것은 맥베스 부인이며,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붉은 야망과 대담함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제3막
Theodore Chasseriau, The Ghost of Banquo, Le Spectre de Banquo(1854-55, 65x54cm, 랭스 미술관)
[첫 번째 자객]
우리는 사냅니다. 나리.
[맥베스]
그래, 서류상으로는 남자지. (중략)
이제, 자네들이 사내 리스트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최악이 아니라면, 말하게.
그러면 내가 그 일을 털어놓겠네.
맥베스 3막에서는 유독 성별에 대한 지칭이 많이 등장한다. 맥베스는 자객들에게 왜 불운한 일을 당하고도 참고만 있느냐고 종용하며, ‘서류상’ 남자가 아닌 ‘진짜’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사내 리스트’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내다움이 곧 용감함의 기준이며, 탁월함의 척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맥베스 역시 맥베스 부인에게 당신이 진짜 사내가 맞냐는 질책을 듣고, 누구보다 비겁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용감한 사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영을 보고 벌벌 떨면서도, 사내대장부가 하는 일은 나도 다 할 줄 안다면서 으름장만 놓고 있는 모습은 맥베스가 가진 모순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맥베스]
사내대장부가 하는 일은, 나도 다 할 수 있어.
그때도 내가 벌벌 떨며 주저한다면, 나를 계집애 인형이라 불러도 좋다.
꺼져라, 끔찍한 그림자, 비현실적인 조롱이로다.
(유령 퇴장) 그렇군, 가 버리니까, 난 다시 사내가 되었어.
이 작품에서 ‘여성성’은 사내다움과 대조되는 비유로, ‘약하고 겁이 많으며 용감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여성성은 사내다움과 달리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으며, ‘사내다움의 결여’로서 모든 부정적인 속성을 떠맡는다. 하지만 이 모든 이분법들은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관계성에 의해 스스로 전복되며, 오히려 사내다움에 집착하는 맥베스의 유약함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제4-5막
Alexandre Gabriel Decamps, The Witches in Macbeth(1841-42, 40x29cm, 월리스 컬렉션)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으로 인해 온갖 살인을 저지르고 왕위에 올랐음에도, 또다시 마녀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물으며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마녀들은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는 맥베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버냄 숲이 던시네인 언덕에 오를 때까지'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맥베스는 이를 ‘달콤한 예언’으로 여기며 과신한다.
자신의 죄악이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던 맥베스는 사라지고, 자신의 운명을 ‘이미 완결된 것’으로 여기며 마녀들의 놀잇감이 되길 자처한 것이다.
[의사]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야. 잠의 은혜를 받는 동시에 깨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니.
[맥베스 부인]
지워져라, 저주받은 얼룩, 지워지라니까, 명령이다.
(중략) 이런, 이 손은 결코 깨끗해질 수 없는 걸까?
(중략) 손에서 피 냄새가 나 아직도.
이 지점부터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과도한 확신과 단정으로 겁을 상실한 맥베스와 달리, 맥베스 부인은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에 사로잡혀 몽유병과 결벽증을 호소한다. 아이처럼 순진하게 굴지 말라며 맥베스를 다그치던 악독한 부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살인 현장의 트라우마에 갇혀 두려움에 벌벌 떠는 병든 왕비만 남게 된 것이다.
[맥베스]
이런 간이 백합 같은 놈. 어디 병사더냐. 멍청아?
영혼이 뒈져 버릴 놈, 리넨처럼 허연 네 뺨이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르치는 거야.
그러나 맥베스는 4막 1장을 전후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모한다. 이전까지 맥베스의 대사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맥베스를 가로막지 못하고, 공포를 망각한 맥베스는 신하들에게까지 막말을 퍼부으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두려움이라는 동전의 앞면이 뒤집히며 나타난 만용이라는 뒷면은 맥베스를 또 다른 극단으로 이끌었다.
[맥베스]
두려움의 맛을 내가 거의 잊어버렸구나. 나는 공포를 포식했다.
무서움은, 살육을 즐기는 내 생각에 낯익으므로, 한 번도 나를 깜짝 놀래킬 수가 없어.
맥베스는 자신의 운명을 믿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결말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예언이라는 확신을 통해 두려움을 봉쇄하며 마녀가 제시한 ‘운명’이라는 하나의 가설을 온 세상의 진리로 만들었다.
두려움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확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 그것이 맥베스가 가진 비극적 결함이며, 죽을 때까지 마녀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족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