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도서/문학]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글 입력 2022.07.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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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는 『모비딕』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의 단편 소설이다. 제목처럼 작품은 페이지의 대부분을 필경사라는 직업을 가진 ‘바틀비’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에 소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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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젊을 때부터 줄곧 편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는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 나는 배심원단 앞에서 열변을 토하거나 대중의 갈채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일절 하지 않고 … 수지맞는 일을 하는, 그런 야심 없는 변호사 중 하나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더없이 안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월 가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바틀비는 뉴욕의 증권가,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는 필경사이다. 소설 속 화자는 변호사이자 바틀비의 고용주이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결코 소개되지 않는다. 독자는 그저 ‘나’가 대립, 긴장, 갈등보다 평화와 안전과 체계를 추구하는 월가의 야심 없는 변호사이며, 형평법 법원의 주사를 지냈고, 바틀비를 고용했다는 정도의 정보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는 어디인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곳이 바로 미국의 근대사회와 그 중심이 되는 뉴욕의 자본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바쁜 대도시’의 일상을 대변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변호사에 의하면 변호사를 비롯한 바틀비와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은 생기가 결여되어 활력이 없고, 창문 밖으로는 거무칙칙하고 높은 벽돌 벽이 위치한 곳이다.

 

 
“그러나 내가 보거나 들은 중에 가장 이상한 필경사인 바틀비의 생애에 관한 몇몇 구절만 남기고 다른 모든 필경사들의 전기는 포기하고자 한다. 다른 필경사에 대해서라면 일생을 다루는 전기를 쓸 수도 있지만 바틀비에 대해서는 그런 종류의 글을 전혀 쓸 수 없다.”
 

 

이야기는 ‘나’가 과거에 고용했던 바틀비라는 인물을 회고함으로 시작된다. 변호사는 일이 바빠짐에 따라 기존의 직원인 터키, 니퍼즈, 진저 넛 세 사람 이외의 필경사를 한 명 더 고용해야 했는데, 그렇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바틀비이다. 때때로 성가시지만 자신에게 유용하다고 여겨 곁에 두었던 터키, 니퍼즈, 진저 넛과 달리, 조용하고 성실해 보였던 바틀비는 변호사의 가장 가까운 자리 한켠에 자신의 책상을 갖게 된다.

 

바쁜 업무를 쳇바퀴처럼 반복하는 모습은 월가의 어디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바틀비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사무실에 들어온 바틀비는 법률 서류를 베끼는 일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쉬지도 않고 엄청난 양의 서류를 처리하더니, 이내 모든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법률 서류 검토를 함께할 것을 요구하는 변호사와 직원들에게 바틀비는 말한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나는 앉은 채로 그를 부르면서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 즉 분량이 얼마 안 되는 서류를 나와 함께 검토하는 일을 – 신속하게 말했다. 바틀비가 자신의 구석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을 때 나의 놀라움, 아니 대경실색을 상상해 보라.”
 

 

바틀비의 이런 태도는 ‘나’를 당혹시키고, 놀라게 한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유용성을 상기하며, 이 모든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해 보려 하지만, 사회적 위계와 일반적 질서에 도전하는 듯한 바틀비의 태도는 변호사를 불편하게 만든다. 변호사는 이제 자신의 법률 문서를 베껴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부탁과 요구에도 ‘하지 않음’으로 대응하는, 자신의 사무실의 필경사’였던’ 바틀비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한다.

 

변호사는 그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가 하면, 공포와 반발을 느끼기도 하고, 갈 곳 없어 보이는 바틀비에게 자신이 연정을 베풀고 있는 것이라 위안하며 자기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무실 한켠에 자리 잡고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은 채 창밖만을 바라보는 유령적인 존재의 공포는 결국 변호사 사무실의 이전으로 이어지고 만다.

 

변호사가 사무실을 이전한 이후에도 바틀비는 이전 사무실에 남아 같은 자리를 지킨다. 사무실의 새로운 주인과 더불어 ‘나’의 부탁을 포함한 모든 요구 사항에 대해 ‘하지 않음’으로 대응하던 바틀비는 결국 부랑자로 교도소에 수감되기에 이르고, 모든 음식을 거부한 끝에 아사한다.

 

바틀비의 죽음 이후 변호사는 바틀비가 워싱턴의 배달 불능 우편물을 취급하는 부서의 말단 직원이었다는 과거 행적을 전해 듣고, 그제서야 바틀비를 이해한다. 바틀비에 대한 1차 정보는 죽은 우편물을 다루던 바틀비가 그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되었다는 화자의 해석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독자는 알고 있다. 바틀비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결국 배달 불능 우편물을 다루는 직원이었다는 정보 역시 변호사의 해석을 통해 전달된, 확실하지 않은 정보인 셈이다. 과연 바틀비에 대한 변호사의 이해는 진정 이해라고 할 수 있을까?

 

*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물음표와 당혹감으로 가득 찼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화자를 따라가며 공감하기도 했지만, 끝에 남는 것은 의문뿐이었다. 바틀비에 대해 읽었음이 분명한데, 그에 대한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정보는 그저 바틀비가 규범화된 보편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그 안정과 조화, 균형을 깨뜨리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의 중심 이념은 생산과 이윤, 사유재산을 근거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였다. 소설 속 화자인 변호사 또한 이러한 보편적인 규율 사회에 편입되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변호사’이다. 이러한 배경과 현대산업사회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라는 공간적 특수성 속에서 '하지 않음'을 고수하는 바틀비의 태도는 더욱 눈에 띄게 작용한다.

 

더불어 1인칭 화자의 변화하는 감정과 신뢰할 수 없는 애매한 서술, 어떠한 정보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바틀비라는 인물은 독자들을 당혹시킴과 동시에 바틀비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인물에 대해 많은 이론가와 평론가들이 주목했으며, 혁명적 힘의 소유자, 비실천적인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인물, 근원으로 존재하는 인물, No의 세계, 자본주의 사회의 순응주의를 거부하는 예술가 등 다양한 해석과 평론이 이루지기도 했다.

 

바틀비가 변호사의 말처럼 삶의 이유를 상실한 불운한 인물이었을 뿐인지, 죽음과 기원으로의 회귀를 원했던 것인지, 획일적이고 순응적인 근대사회의 구조와 가치체계에 반발하는 혁명적 인물이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것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바틀비에 대해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분명 그가 우리를 사고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와 그 안에서의 하지 않음, 그의 삶의 방식, 그의 선택에 대해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필경사 바틀비』가 오늘날에 이르러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제적 인물이라는 바틀비의 수식어 또한 자본주의에 굴복한 현대사회의 시선으로만 평가된 것은 아닐까?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궁금한 인물, 바틀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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