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관계와 성장에 대한 깊은 고찰, '쇼코의 미소' [도서/문학]

단정할 수 없는 관계라는 선
글 입력 2024.05.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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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쇼코의 미소」를 읽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릿하고 달큰한 감정이 피어오르던 그때는 단절된 시절 인연들을 불러 모았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적절히 풀어놓은 이야기를 통해 나는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우정이란 관계 속에서 느꼈던 모든 소용돌이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책은 「쇼코의 미소」 외에도 「씬짜오, 씬자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까지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화자들은 관계 속에서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직시하려 노력하는 등 맑고 투명한 분투를 보여준다. 그들이 가진 상처는 내가 비슷하게 경험해 본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감정과 상황을 묘사한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았다.

 

「쇼코의 미소」의 소유와 쇼코는 '나는 영화감독이 될 거야', '도쿄 대학을 갈 거야'라며 찬란한 미래를 그리던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둘의 상황은 미묘히 변한다. 소유가 쇼코를 찾아 일본에 갔을 땐, 지방 대학에 다니며 우울증에 걸린 여린 모습이었고, 반면 쇼코가 소유를 찾아왔을 땐, 자신에게 예술적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동시에 그동안 한 게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 모습이었다. 모두 알을 비집고 태어나려다만 작은 새 같았달까.

 

쇼코를 대하는 소유의 모습에 공감이 됐다. 친구보다 잘났다는 착각 속에서 드는 묘한 우월감, 잘살고 있는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실망스러운 모습에 다시 보기 싫으면서도 친구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 등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관계의 양면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관계를 저울질할 수 없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크기에는 차이가 있다. 나 역시 그 차이 때문에 멀어진 관계들이 수두룩하다. 의구심이 드는 순간에 그들로부터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는 소유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쇼코의 미소」가 애매한 감정을 내보인다면, 「한지와 영주」는 이유 없는 단절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만난 '한지와 영주'는 '소유와 쇼코' 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타국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로 발전하고 자연스레 연인으로 향하는 듯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피하기 시작한다. 영주는 한지가 자신을 일부러 피한다고 여기고, 자신이 잘못한 말이 있는지 곱씹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반면 한지는 영주가 자신을 멀리한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이해는 가장 큰 오해로 쌓여간다.

 

고백하면 끝날 것 같은 답답한 상황은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는 상황 앞에서 더욱 어긋난다. 물리적 거리를 심리적 거리로 좁힐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것일까. 영주는 침묵의 시간을 가지며 한지에 대한 좋은 감정만 남기려 노력하고, 그 시간 속에서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 이해하고 싶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보고 싶다는 마음을 똑바로 마주한다. 이 감정은 현재 자신이 없앨 수 없단 걸 알고 정성을 다해 한지를 향한 편지를 쓴다. 하지만 한지가 편지를 받지 않고 본국으로 돌아가자, 결핍감은 단절로 그리고 상처로 번진다. 사랑하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결국 아픔을 주고받은 것이다.

 

소유와 쇼코, 한지와 영주는 좋아함의 대가를 치른다. 그 궤도는 다르지만, 기반에 깔린 감정은 같다고 생각한다. 호감이 있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며, 인정받고 눈에 띄고 싶은 일방적 감정이다. 쌍방향이 되기까지의 노력과 시간은 한순간에 미련과 후회로 남겨진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었다. (p. 89~90)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끝난 사이'가 아닐까. 시간이 해결해 준다지만 상처가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상처는 상처일 뿐이다. 다시 같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감정을 저울의 평형을 맞추기 위한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상처받을 것을 잠시 망각한 채 관계를 맺은 자의 주어진 과제다.

 

'나중에 밥 한번 먹자' 만큼 끝맺음 하기 좋은 말도 없다.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이 말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게 해주고, 여전히 그 사람과 난 이어져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아마 전화번호를 지울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우린 남겨진 사람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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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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